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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대 신부 제공 |
시간과 공간은 이를 파헤쳐 규명하고자 하는 많은 이에게 늘 신비로운 대상이다. 손에 쥔 듯하지만 어느새 손아귀를 벗어나 저 멀리 떠나 있는 그런 존재다. 시간도 공간도 그저 처음부터 있었던 존재는 아니다. 우리는 통상 시간이 '흐른다' 또는 '지났다'고 하니 분명 그 시작이 있을 것이다. 이는 현시점에서 과거의 시간으로 끝없이 걸어가 본다면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시작이라는 벽을 만난다는 말이다. 그 시작의 벽을 성경은 '한 처음'(창세 1,1)이라 한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으나,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다고 하니,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모양과 질서를 갖추고 제대로 존재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창조의 첫째 날에 '빛'을 만드시고 빛을 낯이라 하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신다. 여기서 빛은 무엇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말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창세 1,5)는 말씀에서 '지났다'는 표현이 바로 시간이 시작돼 흘렀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첫째 날에 시간이 창조되었으니, 그다음에 필요한 것이 바로 공간이다. 하느님께서는 물과 물 사이를 갈라 궁창을 만드시고 이를 '하늘'이라 부르셨으니, 공간이 창조되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창세 1,8)고 하니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그다음으로 천체, 자연, 식물, 동물, 사람이 창조되어 시간과 공간 안에 자리를 잡게 되니, 모든 것이 모양과 질서를 가지게 된다. 아울러 하느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고 좋아하시며 그들 위해 축복을 내리시어 거룩하게 하셨으니, 모든 존재는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창조주 하느님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서게 된 셈이다.
생명을 지니고 세상에 사는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모든 시간과 공간을 자기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자기 것이 아닌데 주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는 창세기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매일 매일 첫날과 같은 '하루'가 주어지는 것이다.
누구든지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리맡에 밤새 배달된 소포 하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소포 겉면에 수신자는 자신이며, 발신자는 천국우체국이고, 내용물은 '하루'라고 적혀있을 것이다. 소포를 열어보면 어제 받은 것과 비슷한 하루 분량의 24시간과 각자에게 알맞은 달란트와 하루를 움직일 수 있는 건강이 들어 있다.
신기한 것은 매일 아침 배달되는 이 선물이 그 옛날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실 때 제자들이 배달했던 바구니처럼 축복과 감사의 뜻으로 사용하면 끝없이 그 내용물이 늘어나고,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로 변했던 물 항아리처럼 순종과 섬김의 뜻으로 사용하면 그 내용물의 재질이 갈수록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선물을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다른 이들이 상상도 못 한 것들을 만들어낸다. 허나 어떤 이들은 이 선물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누가 보낸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없이 시들시들 말려버린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 먹는 만나를 지겨워했던 것처럼 살아온 날 동안 그토록 많이 배달된 이 선물을 하루도 감사와 기쁨으로 꽃피우지 못하고, 불만과 짜증과 원망과 한숨으로 썩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똑같은 선물을 가지고 어떤 이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누리고, 어떤 이는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다. 살아있는 동안 이 선물상자는 계속 배달될 것이다. 모여서 인생을 만드는 하루라는 시간과 공간은 영원으로부터 오는 귀한 선물이며, 인생을 마치는 날 영원한 나라와 연결되는 코드가 될 것이라 믿는다.
천주교 몰운대 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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