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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금정구 남산동에 자리잡은 요산문학관과 요산 김정한의 생가. 요산문학관은 2006년 11월 문을 열었다. 문재원 제공 |
본지는 12일부터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인문한국 문재원 교수의 '문학관에서 지역을 읽다' 시리즈를 4회에 걸쳐 매주 연재한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부산의 문학관을 재조명하며 지역발 문화 소통과 확장의 가능성을 짚어보고 문학관을 활용한 부산 문화지도를 구상한다.
- 문학관 들고 나는 길은
- 문학세계 탐미보다
- 세상 살아가는 길 관해
- 묻고 응답하는 통로
- 생가 옆에 있어 특색
- 전시관에 있는 유품
- 직접 쓴 식물도감 눈길
- 미발표 소설도 반가워
- 여기저기 창을 내
- 안과 밖을 연결
- 문학과 삶 분리 않는
- 작가의식 외현인가
- 문학제 매년 열리지만
- 대문 문턱이 닳고
- 두런두런 사람 이야기
- 담장 넘어가야 한다
지역 문학관은 문학(작가), 지역이 만나면서 새롭게 탄생하는 문화공간이다. 부산을 대표하는 문학관은 세 곳이다. 해운대 추리문학관(1992), 동래 온천장 이주홍문학관(2002), 범어사 밑 요산문학관(2006). 말해 놓고 나니, 나의 무의식이 드러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 장소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더 잘 찾아올 수 있을까에 방점을 두었다. 또한, 문학관을 기어이 찾게 하여야겠다는 욕망도 들켜버렸다. 사실, 이렇게 문학관을 해운대, 범어사, 온천장 등 부산의 관광지와 연결하지 않으면 이들의 실존을 드러내는 일이 참 궁색하다. 어쩌면 이것이 문학관이 부산 지역에 들앉아 있는 현주소이다. 지역 문학관의 빈곤함은 곧 지역의 문화적 상상력의 빈곤함의 바로미터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에 곧잘 환호한다. 2006년 요산문학관이 들어섰을 때 부산은 '이로써' 문화도시가 된 듯했다. 개관식은 매스컴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문학인들은 부산이 낳은 작가 요산 김정한을 기념하는 문학관이 왜 이제야 생겼느냐며 '지역 문화의 요람'에 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부산시는 문화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걷어내는 하드웨어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의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요산문학관을 인근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찾아가는 데 꽤 애를 먹었다.
■사람답게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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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산문학관 입구의 요산 김정한 사진과 '사람답게 살아가라' 글귀. |
요산문학관이 문을 열던 날 어느 시인은 '남산동에 새 길이 났다. 그 길은 요산 가는 길이다'라고 노래했다. 이 새 길을 따라가면 우리는 부산의 작가 요산 김정한을 만난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입구의 붉은 글귀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사람답게 살아가라."
요산의 소설 '산거족' 주인공인 황거칠의 좌우명이다. 작가의 목소리와 내내 겹쳐진다.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에 타협한다든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이 아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요산의 얼굴은 촌로의 소탈한 웃음이지만, 그 웃음 너머로 여전히 부릅뜬 성난 눈으로 문학관을 찾는 이들에게 단단히 다짐을 받는다. 이토록 강렬한 저항의 파토스가 요산문학관을 감싸고 있는 압축적인 이미지다. 2층 전시실을 둘러보고 내려가는 사람들의 등 뒤에다 대고 요산은 다시금 낮은 음성으로 말을 건넨다.
"무척 긴 어둠의 날들을 살아온 셈이지만 밝고 곧은 것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 본 적이 없다."
요산문학관을 들고 나는 길은 일상과 떨어진 문학의 세계를 탐미하는 장소라기보다 세상의 어지러움이나 일상의 팍팍함마저 내놓는, 그래서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길에 관해 묻고 응답하는 통로가 된다. 이렇게 보면 '요산 가는 남산동 새 길'이 어찌 지도 위에 번지로만 기재될 주소이겠는가.
'문학이 정치'라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준 작가의 기개로 이어질 문학의 길을 소망했을 터. 그 길이 일상이 되는, 그래서 우리 모두 안녕한 삶이 되기를 소망했을 터이다. 앞, 뒷문을 다 열어 놓고 이쪽과 저쪽 통로로 내어주고 있는 문학관 앞마당, 남산동 662번지 이웃 벽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요산문학관의 낮은 담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여기에 있을 터. 요산문학관에 들어서면서 다시 '요산의 정신'을 생각한다.
■문학과 삶이 일치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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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산문학관내에 전시된 요산 김정한의 미발표 소설. |
요산문학관은 무엇보다 부산에서 유일하게 작가의 생가(生家) 바로 옆에 있다는 점이 남다르다. 생가 옆에 문학관을 건립할 때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접근성 문제나, 문학관의 녹지 면적이 좁다는 점도 지적됐다. 그래서 을숙도나 범어사 인근 등 제3의 장소들이 후보군에 올랐지만, "떠벌이는 것보다 자그마하게 기념하는 것도 요산 정신을 제대로 기리는 일"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건립을 추진했다. 지하 1층은 다목적 강당, 1층은 북카페, 2층은 도서관과 기념관, 3층은 집필실 겸 게스트하우스로 꾸며졌다. 2002년 설립된 (사)요산기념사업회가 운영하고 있다.
문학관 내부는 일반적인 문학관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 연보와 유품 3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작가의 편지글, 안경, 만년필, 주민등록증 등 유품이 전시된 진열관을 확인한다. 특히 이 전시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가 직접 만들었다는 식물도감이다. 풀이나 꽃을 세밀하게 그려 넣고 설명을 꼼꼼하게 달았다. '이름없는 풀'이라는 표현에 "세상에 이름없는 것이 어디 있느냐"며 화를 냈다는 요산의 일화가 떠오른다.
오른쪽 벽면을 채운 '요산 김정한 소설과 부산의 도시 공간'이라는 주제의 화보가 눈길을 끈다. '사하촌'의 배경이 된 범어사, '모래톱 이야기'의 낙동강, '수라도'의 무대인 양산 원동면 화제리 모습을 담았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2층 전시실 가운데에 자리 잡은 '문학적 연대기 요산 김정한 미발표 소설 전시회'라는 기획 전시다. '난장판' '세월' '새앙쥐' 등 낯선 제목의 오래된 원고지 묶음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참을 굽혔던 허리를 펴자, 오른쪽 모퉁이에서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자리를 발견한다. 그곳엔 작가가 생전에 사용하던 작은 책상이 있다. 오후 햇살을 받으며 졸기 딱 행복한 자리. 그 창으로 작가의 생가를 볼 수 있다.
2층 한편에는 80석 규모의 도서관에 2만5000여 권의 도서가 있다. 자리 잡고 앉으면 도서관 왼쪽에 난 창으로 주택과 굽은 골목이 보인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 멀리 보면 어느새 저쪽 끝 금정산도 들앉아 있다. 여기저기 창을 내면서 안과 밖을 연결한 이 공간 구조는 참 특이하다. 문학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문학의 안과 밖을 잇고자 했던 요산 작가의식의 외현인가.
■대문 문턱이 닳고 담장 너머가 시끄러워야
김중하 초대 관장은 문학관 운영에 관해 이런 말을 했다. "요산 선생의 열린 문학 정신을 따라 이곳을 문학 공간뿐 아니라 지역 주민을 위한 열린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겠다."
(사)요산기념사업회의 중요 행사가 매년 10월 열리는 요산문학제다. 문학관의 역사보다 곱절 긴 요산문학제는 해마다 백일장, 심포지엄, 문학기행 등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역시 요산 정신을 기리면서 이를 사회 전반에 확장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축제가 끝나면 이 공간의 쓸쓸한 정적은 더욱 커진다. 물론 숫자로만 문학관의 존재 이유를 물을 수야 없겠지만, 문턱이 좀 닳아줘야 도심 주택가에 담을 맞대고 있는 요산문학관의 존재 이유가 이해될 것이다.
이 공간이 다만 작가를 기념하는 데서 그치는 자리가 아니라, 창발적인 지역 문화의 생산지가 되려면 두런두런 사람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 소리가 문학관 담장을 넘어야 한다. 하여,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문화판에 대항하고, 대안적인 문화 공간 역할을 기대하는 일, 이 또한 평생을 '낙동강의 파수꾼'을 자청하며 성난 눈으로 지역을 형상화한 작가의 손을 맞잡는 일이 아닐까.
※요산 김정한은
요산(樂山) 김정한(1908~1996)은 경남 동래군 북면 남산리(현 부산 금정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19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사하촌'이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과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초대 의장을 지냈으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특히 요산 소설의 주 무대는 부산·경남의 현장이다. 작가는 이 변방의 장소, 낙동강 하구의 버려진 이야기들에 주목하면서 리얼리즘 창작방법론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모래톱 이야기' '수라도' '뒷기미나루' '인간단지' '산거족' '사밧재' '산서동 뒷이야기' '오끼나와에서 온 편지' 등 50여 편의 작품이 있다.
문재원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인문한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