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표 감독이자 인권운동가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아랍의 봄'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살육과 폭력에 관해 근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당국의 탄압과 검열을 피해 해외에서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는 현재 상황보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독재자의 인권 말살, 부패 정부로 인한 실직, 가난한 민중의 삶이다.
조지아에서 촬영한 이 영화는 정확하게 명시되지 않은 한 국가의 독재자가 겪는 도피 과정을 다룬다. 영화가 시작되면 휘황찬란한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를 보여주면서 라디오 방송이 나온다. 이 목소리는 현재 국가를 해설하는 일종의 내레이터 기능을 한다. 독재자를 찬양하는 목소리에 이어, 궁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던 독재자가 어린 손자에게 명령하는 자의 즐거움을 가르친다. 말 한마디에 도시 전체가 암흑에 잠길 수 있게 하는 그의 절대권력은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끝나고, 밀항을 위해 바다에 도착할 때까지 기나긴 여정이 영화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가 목숨보다 사랑한 손자가 도피 노정에 동행하면서 일종의 '연극놀이'가 시작된다. 그는 돈 한 푼 없는 가난한 자들, 방치된 건물들, 성난 민중의 시위와 경찰 등 내란으로 고통을 겪는 국민 틈에 섞여 낮은 자로 위장한다. 자신을 도우려는 사람을 협박하고, 도둑질하면서 근근이 신분을 숨기던 그와 손자의 시간은 두 가지 방식으로 드러난다.
대통령이 회상하는 과거는 그가 미래를 염려하는 말을 하는 것으로 상기되는 것에 비해 손자의 회상은 이미지로 구체화한다. 그는 입으로 국민을 죽이는 삶을 산, 제대로 된 행동을 하지 못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반면 손자가 궁에서 함께 놀던 소녀 마리아와 행복했던 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대통령이 그에게 했던 '보지 말고 귀를 막아라'는 충고와 위배된다. 어린 소년은 위험천만한 할아버지와의 동행에서 삶과 죽음, 혁명과 테러, 복수와 용서, 폭력과 회복을 배워나간다.
마흐말바프가 선택한 계절은 봄이 오기 전의 겨울이다. 독재자는 피난길에 만난 사람들의 면면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만행 탓에 고통당한 사람들의 원성과 불평을 듣게 된다. 우화의 형식을 지니던 이 영화는 마지막을 향할수록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착시킬지, 대립된 이념의 틀을 깨는 것과 잘못의 원흉을 처단하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게 한다.
성난 민중이 그를 죽이려고 할 때 독재자와 동행했던 정치범의 말은 오랜 시간 고민했던 인류의 문제, 특히 아랍 민족이 자행하는 폭력의 시스템에 관한 마흐말바프의 제안이라고 느껴진다. 그는 인류가 인간됨을 회복하기 위해 악행의 고리를 끊어낼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길 것을 촉구한다. 영화 속 독재자 또한 말로 국민을 처단한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죽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온 몸으로 폭력을 막아서는 것만이 답이다. 그의 영화를 보면 아직 '아랍의 봄'은 완성되지 않은 것 같다.
박인호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