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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열린 안일웅 작곡가의 '731-마루타 진혼기도 Ⅱ' 초연 모습. 영화의전당 제공 |
- 향 냄새 그윽한 낯설은 무대
- 클래식 선율 사이 낭송·아리아
- 일제 생체실험 만행 알리고
- 희생자 넋 위로 관객에 숙제
지난 1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로비에 향냄새가 그윽했다. 그 공간에서 그 냄새는 어색했다. 향냄새의 진원지는 곧 밝혀졌다. 하늘연극장 무대에 누군가가 피워놓은 향이 열심히 자기 몸을 태웠다.
무대는 낯설었다. 먼저 무대 양쪽에 각각 하나씩 천으로 덮은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피아노가 한 대씩 자리 잡았다. 무대 가운데는 북과 징 등 다양한 타악기가 배치됐다.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 온 것인지, 퓨전 공연을 보러 온 것인지 헷갈렸다. 이윽고 시작을 알리는 음악과 함께 휴대전화를 끄라는 안내 대신 "본 공연은 음악극이 아니다"라는 친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해서 안일웅 작곡가의 '731-마루타 진혼기도 Ⅱ'가 관객에게 첫선을 보였다. 2015 두레라움 실내악 축제 프로그램 중 하나로 진행된 이 음악회는 일본 제국주의 731 생체실험부대의 만행을 알리고 희생자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지난 2월 독일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서 Ⅰ을 초연해 호평받았다. 이번 무대는 Ⅱ의 초연이다.
작품 메시지는 이미 제목에 담겨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연주 양식이다. 일반적인 클래식 연주회를 상상한다면 낭패다. 안일웅 작곡가는 오래전부터 그만의 표현 양식으로 무대를 꾸몄다. 그는 '직감적 사유유발 음악작품'이라고 표현한다. 악기 연주뿐만 아니라 무대 조형물과 조명 그리고 퍼포먼스를 총체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회인지 음악극인지 혼란스럽다. 다양한 장치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는 메시지 전달과 사유를 위해서다.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이 음으로 관념을 만들어내는 것에 비해 안일웅 작곡가는 음에 퍼포먼스를 곁들여 관객이 소리와 장면을 통해 '직감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음악회는 타악기로 시작해 피아노, 클라리넷으로 이어졌다. 클라리넷 선율 사이로 남자의 신음이 섞이는가 싶었는데 조금 뒤 무대 왼쪽 천 속에서 하얀색 한복을 입은 바리톤 박대용이 기어 나왔다. 바리톤 박대용은 "마루타"를 외쳤고 '마루타'를 노래했다.
이번 무대에는 큰 파도도, 잔잔한 물결도 없었다. 각 악기의 짧은 연주가 있는가 하면 박대용의 낭송과 간단한 아리아가 반복됐다.
음악회에 관한 상식은 깨졌다. 각각의 악기와 인간의 목소리가 모여 아름다운 선율을 빚어내는 방식은 이번 무대에서 찾기 어려웠다. 각 악기는 일정한 선율이 아니라 제각각 분절된 소리만 냈다. 그 소리와 퍼포먼스, 낭송에 담긴 각각의 의미를 조합해 사유하는 것은 객석에 앉은 관객의 몫. 작곡가는 관객에게 어려운 숙제를 던져주는 것 같았다.
공연 후반부. 박대용은 등을 들고나와 무대 위로 길게 늘어진 밧줄에 걸고 무대 오른편에 남아 있던 또 하나의 천을 젖혔다. 나무 막대기 위에 걸쳐 놓은 전투모.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관객을 열광에 빠뜨리는 클라이맥스가 있었는지 고민하는 사이 연주는 끝났다. 러닝타임 55분. 작곡가는 무대 위에 올라 인사만 했을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관객에게 숙제를 주려는 듯했다.
※작곡가 안일웅
1940년생 안일웅 작곡가는 국제적 명성의 현대음악가이다. 연세대 작곡과를 나와 부산에서 수십 년 활동하며 관현악곡과 무용음악 등을 왕성하게 작곡했다. 특히 세계적 권위의 독일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가 그를 주목해 1998년부터 꾸준히 초청하거나 작품을 소개해온 것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