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려보자. 1995년 이용관(당시 경성대 교수), 김지석(당시 부산예술대 강사), 전양준(당시 경성대 강사), 박광수(영화감독), 오석근(영화감독), 김동호(전 영화진흥공사 사장) 씨가 모여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열어보자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6년 9월 13일 부산 중구 남포동에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열렸고, 관객 18만 명이 몰리며 대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BIFF는 빛나는 순간과 동시에 무수한 위기 상황을 딛고 올해 20회를 맞았다. 그동안 수많은 영화인과 영화 인력을 배출했다. BIFF의 얼굴이었던 창립 멤버 6명의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갈수록, 그들과 동반 성장한 국내외 영화인 즉 'BIFF 키즈(KIDS)'가 생겨났다.
가장 대표적인 BIFF 키즈는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뛰어들어 영화제를 성공의 반열에 올린 '축제 주최자(Festival organizer)'인 영화제 프로그래머와 스태프들이다.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이제 어엿한 직업군으로 인정받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영화제 준비에 매달렸던 스태프들은 한국영화의 또 다른 현장인 영화제, 영화 촬영장, 영화 행정 등의 영역으로 진출해 제 몫을 해내고 있다.
세계 영화계의 변방이었던 아시아 각국에서 새로운 영화 물결 '뉴 웨이브'를 일으킨 감독도 BIFF 키즈다. BIFF는 아시아의 새로운 작가 감독을 발굴하고자 애썼다. 이런 노력 덕에 BIFF는 아시아 새로운 작가 감독들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고 아시아의 BIFF 키즈는 무럭무럭 자랐다. 데뷔작 '원더풀 타운'으로 12회 BIFF 뉴 커런츠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태국의 아딧야 아사랏 감독은 자국의 젊은 감독을 키우는 제작자로 활약하고 있다. 18회 BIFF 폐막작 '텔레비전'으로 인생 역전을 이룬 방글라데시 모스토파 파루키 감독도 자국 영화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 됐다.
한국영화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지렛대가 되어준 것도 BIFF였다. 김기덕 이창동 홍상수 등 국내 감독들도 BIFF와 함께 해외로 진출해 세계 영화계가 인정한 거장으로 떠올랐다. 뒤를 이어 박정범 양익준 이수진 등 젊은 BIFF 키즈도 꾸준히 성장 단계를 밟고 있다.
부산에서 BIFF를 통해 세계 영화에 눈을 뜬 부산 시민도 BIFF 키즈로 볼 수 있다. BIFF를 통해 또 다른 영화 세계와 마주한 시민들은 영화모임을 만들고, 영화를 공부하는 능동적인 관객이자 비평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부산 영화계에서는 아직 BIFF 키즈를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를 무대로 바라본 BIFF와 부산의 척박한 영화 현실 간 괴리가 컸기 때문이다.
이용관 BIFF 집행위원장은 "지난 20년간 BIFF는 한국과 아시아 영화인, 관객의 적극적인 지지와 격려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고, 이에 보답하기 위해 더 많은 BIFF 키즈 발굴에 애썼다"면서 "부산 출신 영화 인력이 속속 지역으로 회귀하며 새로운 영화 토양을 만들고 있는 만큼 부산의 영화계와 함께할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