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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BIFF 사무국. 김지석(오른쪽에서 세 번째) 현 BIFF 수석 프로그래머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BIFF 제공 |
- 축제 주최자 13명으로 출발
- 영화 고르는 프로그래머 등장
- 인력 적어 섭외·기획까지 맡아
- 지금은 전문직으로 전국 퍼져
- 초청 전담·자막기술자도 등장
- 단기 행사로 철새 스태프 생겨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국내 1호 영화제다. 몇몇 단편영화제가 열리긴 했지만 국제 영화제의 기틀을 갖춘 것은 BIFF가 최초다. 그래서 BIFF가 무엇이든 첫 모델이자 사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1회 BIFF를 준비하며 영화감독, 영화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등 국내 영화 전문가가 모여 영화제의 콘셉트와 기본 틀은 만들었지만 실제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할 인력이 필요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축제 주최자(Festival organizer)'다. 영화제 행사를 기획, 운영, 실행할 '축제 주최자'가 필요했고 각 분야에서 모인 영화제 스태프 13명이 역할을 맡았다. 또 영화를 선택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그래머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BIFF의 시작과 함께 탄생한 프로그래머와 축제 주최자(스태프)는 영화제와 함께 탄생하고 자란 'BIFF 키즈'다.
BIFF의 스태프는 부산을 비롯한 전국 문화예술 행사에도 영향을 끼쳤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이후 국내에서 국제 문화·스포츠 행사가 열리기 시작했으나,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그것도 부산 같은 지역에서 국제 예술행사를 여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BIFF의 성공 이후 '국제'라는 단어를 붙인 영화제를 비롯해 문화예술 행사 개최가 봇물이 터졌고, 이때 BIFF의 조직 운영과 행사의 틀, 인력까지 고스란히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BIFF 스태프가 영화제 전문가이자 축제 주최자로 전국으로 퍼졌다고 볼 수 있다.
■ 영화제 핵심 역할,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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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6월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열린 BIFF 조직위원회 현판식. |
1996년 4월 1회 BIFF를 열기 위해 국내 최초의 영화제 사무국이 꾸려졌다. 영화제 사무국은 크게 2개 그룹으로 나뉘었다. 영화제에 상영할 영화를 선택하는 프로그래머와 행사를 준비하는 스태프였다.
영화제의 핵심 키는 프로그래머가 쥐고 있었다. 영화제에 상영할 영화를 선택하고, 초청할 국내외 게스트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와 관련한 이벤트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도 프로그래머의 역할이었다. 1회 BIFF 프로그래머는 3명이었다. 김지석(아시아영화), 이용관(한국영화), 전양준(해외영화) 씨가 프로그래머로서 상영작 169편을 고르고 게스트 섭외와 행사 기획까지 도맡았다. 그 이후 상영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아시아 영화 2명, 해외 영화 3명 등 프로그래머가 7명(김지석 이수원 남동철 김영우 박진형 홍효숙 박도신)으로 늘었다.
지금은 국내 모든 영화제와 예술영화전용관의 영화를 고르는 역할을 하는 사람까지 지칭할 정도로 프로그래머가 전문 직업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프로그래머란 직업이 생소하다 보니 호기심과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게임 프로그래머냐'라는 웃지 못할 질문을 듣는 것은 예사였고, 해외에 나가서 편히 영화만 보고 돌아다닌다는 시기 어린 시선까지 감수했다. 현장 스태프가 부족한 탓에 프로그래머가 직접 게스트 항공과 배차 스케줄까지 맡았다. 김지석 BIFF 수석 프로그래머는 "초창기에는 영화제 자체가 생소했던 탓에 프로그래머, 스태프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이해가 부족했으나 지금은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분야의 일도 등장했다. 초청과 자막기술 담당이다. 국내외 게스트 초청을 전담하는 '초청' 담당은 게스트를 초대하기 위한 편지를 쓰는 일부터 항공, 숙박, 의전, 배차 등을 전체적으로 도맡아야 하므로 전문성과 특수성이 필요했다. 박가언 BIFF 프로그램실장 겸 초청팀장은 "초청 담당은 영화제를 찾는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서비스 마인드와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순발력, 영화와 영화인에 대한 배경 지식 등을 두루 갖춰야 해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국제행사가 늘면서 초청만 전문적으로 하는 인력도 생겼다"고 말했다.
자막기술 담당은 새로운 직업으로 자리 잡은 분야다. 일반 극장 상영본과 달리 영화제 상영작은 필름 상태 확인과 자막 작업을 새로 해야 한다. 1회 BIFF 때는 자막 전문인력이 없어 도쿄영화제 자막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 이후 자막 기술을 익힌 전문 인력이 생겼고, BIFF 외에도 다른 영화제가 열릴 때마다 BIFF 자막팀이 작업하면서 전문 분야로 인정받았다.
■ 국내 영화제 사무국 기틀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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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BIFF 행사에 몰린 인파. BIFF 제공 |
BIFF에서 경험을 쌓은 후 영화제 스태프들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등 국내 다른 영화제로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영화제의 기틀을 마련했다. BIFF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후발 영화제에서 인력 차출을 요청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1회 BIFF 자원봉사자 담당 양정화 씨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로 자리를 옮겨 사무국장을 맡으며 영화제의 기틀을 마련한 사례, 9회 BIFF 사무행정 담당 유현주 씨가 전주국제영화제 단기 스태프로 일하다가 2007년부터 홍보·마케팅을 전담하며 영화제의 외형을 키우는 데 공을 세우고 지난해부터 부산국제단편영화제 기획마케팅실장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영화제 사무국 재정 여건상 상근직을 두기보다 몇 개월 단위로 단기 스태프를 채용할 수밖에 없기에 여러 영화제를 옮겨 다니는 철새 스태프가 생기기도 했다. 7~10회 BIFF 사무국장을 맡은 이승진(영화의전당 영화기획팀장) 씨는 "영화제 행사 기간 집중적으로 인력이 필요하다 보니 단기 스태프를 채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이런 채용 패턴 탓에 스태프들이 영화제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문제점도 있지만 이런 구조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영화제 전문가가 생겼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부산시에도 BIFF 키즈 있다
부산시 안에도 BIFF 키즈가 있다. 1회부터 사무국과 긴밀히 협조하며 행정적인 부분을 지원하기 위해 시는 공무원을 사무국에 파견해 시와 BIFF 사이 매개자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 덕분에 영화제에 관해 이해도가 높은 공무원이 하나둘씩 생겼다. 1회부터 BIFF 행정 지원을 담당했고 8~10회 BIFF 사무국 파견 근무를 한 시 영상콘텐츠산업과 박종일 영상콘텐츠진흥팀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해 영화제 경험 경력을 인정받아 영상 분야 전문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박 팀장은 "BIFF의 성공 이후 시가 영화영상 분야를 10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다양한 영화 인프라를 조성하며 영화와 영상 분야에 이해도가 높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대두했다. 영화제를 경험하는 공무원이 늘면서 직·간접적으로 BIFF의 팬이 되는 이도 많다"고 말했다.
# 홍효숙 프로그래머
- "잠시 돕다 청춘 바쳐…올핸 강수연 위원장 수행 임무 맡았어요"
"부산국제영화제(BIFF) 초창기에는 프로그래머와 스태프 구분이 없었어요. 프로그래머가 영화 선택은 물론이고 배차, 항공권 예매까지 했거든요."
BIFF 홍효숙(48·사진) 프로그래머는 20년 BIFF 역사의 산증인이다.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그녀는 잠시 영화제 일을 도와주기 위해 발을 담갔다가 20년간 BIFF와 함께했다. 그녀의 표현대로 '청춘을 다 바친' BIFF에서 스페셜 이벤트, 한국영화회고전 등 행사 기획과 진행을 맡다가 2011년부터 와이드앵글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영화만 보는 사람이 아니에요. 많은 영화인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을 듣고 도울 방법을 생각하고, 관객에게 더 좋은 영화를 소개해줄 방법을 찾고…. 초창기에는 워낙 인력이 적었고 스태프들의 전문지식도 부족해 프로그래머가 영화를 고르는 일 외에도 게스트 초청, 이벤트 기획, 심지어 게스트 얼굴을 유일하게 안다는 이유로 배차까지 담당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동안 경험을 쌓은 영화제 스태프들이 실·국장이 되어 체계적으로 행사를 준비하게 됐고 그 대신 프로그래머는 해외 영화제 한국영화기획전 같은 외부 활동을 할 수 있게 됐죠."
홍 프로그래머는 매번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한국 독립영화와 BIFF의 연대를 이끌어간다는 책임감으로 견뎌왔다고 했다. "한국영화회고전을 준비하며 고전 영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아시아영화펀드를 기획하며 아시아 영화인에게 뭔가를 돌려줄 수 있다는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 더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올해요? 지난 15년간 김동호 집행위원장님 수행을 했는데 올해는 강수연 집행위원장님 수행을 하라네요. 늘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에요. 하하."
◇부산국제영화제(BIFF) 창설 연혁
1994년 2002년 AG 대비한 부산 영상문화 진흥 방안 세미나
1995년 김동호 전 영화진흥공사 사장 BIFF 집행위원장 수락
1996년 2월 사단법인 BIFF 조직위원회 창립총회 개최
1996년 4월 BIFF 사무국 출범
1996년 7월 부산, 8월 서울서 BIFF 설명회 개최
1996년 9월 13일 제1회 BIFF 개막식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