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G 대비 문화행사 차원서
- 1994년 BIFF 논의 시작
- 1회 사무국 급히 꾸리느라
- 읍소로 스태프 섭외 일쑤
- 경험 없어 진행도 우왕좌왕
- 이젠 제작자·행정 도우미로
- 영화계 현장 곳곳 종횡무진
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성공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한국에서 국제 영화제를, 그것도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BIFF의 성공이 가능했던 것은 '새로운 영화'에 목말랐던 국내외 영화인과 관객의 조건없는 성원과 지지 덕분이었다. BIFF가 성공한 이후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는 김동호 BIFF 집행위원장과 문정수 전 부산시장이었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묵묵히 해 낸 BIFF 사무국 1세대와 자원봉사자, 즉 'BIFF 키즈'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사무국 1세대 어떻게 모였나
1994년 부산에서 '2002년 아시안게임을 대비한 부산 영상문화 진흥 방안'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린 뒤 본격적으로 BIFF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고, 2년이 지난 1996년 1회 BIFF가 열렸다. 1996년 2월 BIFF 창립총회를 연 뒤 4월 사무국을 꾸렸고, BIFF 사무국 1세대를 차근차근 모았다.
1회 사무국을 총괄한 사무국장은 '101번째 프로포즈' '연애' 등의 영화를 만든 오석근 영화감독이 맡았다. 김지석 BIFF 프로그래머의 친구였던 그는 김 집행위원장을 차에 태우기 위해 마중 나갔다가 영화제에 합류했다. 이어 홍보, 페스티벌 코디네이터, 자막, 자원봉사, 스페셜 이벤트, 티켓 등으로 나눈 각 영역의 스태프 13명이 모였다.
스태프를 모집한 기준은 두 가지였다. 해외 영화인을 상대해야 하므로 간단한 영어 실력이 뒷받침돼야 했다. 또 영화제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적 식견을 갖춘 이를 선호했다. 영화촬영 스태프, 영화사 홍보팀, 영화 배급사 등에서 일했던 이들을 급하게 섭외하거나 무조건 읍소해서 데려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하게 사무국이 운영된 것은 아니다. 모두가 영화제를 처음 경험하다 보니 무엇이 필요한지 몰라 우왕좌왕하기 일쑤였다.
이때 김 집행위원장의 요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아메리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던 재미교포 폴 이가 조언자로 나서 사무국 운영 체계부터 영화제 준비 상황을 전반적으로 지도해준 덕분에 행사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 한국 영화 현장을 누비다
BIFF 사무국 1세대는 영화제가 끝난 뒤 각자 일하던 영화 현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다수였다. 그래서 지금도 영화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례가 많다. 1회 BIFF 홍보 담당 신다영 씨는 영화 '거울속으로'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 등의 라인 PD로 활동했다. 같은 업무를 맡은 최수영 씨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눈부신 날에' 등의 PD를, 1회 자원봉사자 담당 양정화 씨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무국장을 거쳐 영화 PD로 현장에 있다. 같은 팀에 있었던 김수훈 씨는 조금 다른 사례인데, 애니메이션 분야로 뛰어들어 현재 쌈지 애니메이션 대표로 활동 중이다. 페스티벌 코디네이터 현경림 씨는 '친구' '태풍' 등의 PD를 거친 뒤 현재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근무하며, 2회 티케팅 팀장 김홍백 씨는 '효자동 이발사' PD를 거쳐 홍필름 대표로 있다.
영화와 관련한 전문직의 위치에 오른 이도 많다. 1회 BIFF 스페셜 이벤트 담당 황동미 씨는 영화진흥위원회 다양성진흥팀 과장으로 근무하며, 2회 BIFF 필름트래픽 팀장 박상훈 씨는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촬영했고 현재 수중 촬영 전문 감독으로 이름이 높다. 2회 BIFF 초청 팀장 황혜정 씨는 CJ E&M 스타일콘텐트 운영국장으로 근무 중이다. 1회 BIFF 서울사무소 담당 남종석 씨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영화제 일을 계속하고 있다.
사무국 1세대는 아니지만 영화제 스태프 중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사례도 눈에 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퇴마:무녀굴'을 비롯해 '이웃사람'을 연출하고 '해운대' 각본을 쓴 김휘 감독은 3~8회 BIFF 홍보팀에서 일했다. 김 감독은 "부산의 영화인들도 영화제 초창기에 스태프로 많이 참여해 경험을 쌓았다"고 회상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과 '종로의 기적'의 이혁상 감독도 BIFF 스태프 출신이다.
■ 부산 영화행정 기틀 마련
BIFF의 성공 이후 부산시는 '영화도시 부산'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영화 관련 인프라를 만들었다.
1999년 부산영상위원회가 전국 최초로 생겼고 시네마테크 부산, 영화의전당, 부산영상후반작업시설 등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공간을 맡을 영화행정 인력도 생겼다.
BIFF 사무국 1세대는 영화제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부산 영화행정 인력으로 자연스레 편입됐다. 1회 BIFF 사무국장 오석근 씨가 부산영상위원장을 맡고 있고, 1회 BIFF 야외행사 담당이자 7~10회 BIFF 사무국장을 역임한 이승진 씨는 영화의전당 영화기획팀장으로 일하는 중이다. 1회 BIFF 아시아영화 담당 이소영 씨는 시네마테크 부산을 거쳐 영화의전당 영화운영팀장으로 있다. 이 씨는 "BIFF의 성공 이후 부산에 영화를 기반으로 한 기관이나 시설이 생겨나면서 영화제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스태프들이 자연스레 행정 인력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부산영상위원회 제작지원부장 배소현 씨의 사례는 좀 드라마틱하다. 배 씨는 1회 BIFF 자원봉사자로 영화제에 참여해 스페셜 이벤트, 아시아필름마켓 스태프 등 영화제에서 일했으며, 부산영상위원회 설립에도 참여했다. 서울의 영화사에서 일하다가 부산영상위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배 씨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으나 영화제 경험을 하고 난 뒤 열정적인 영화인의 모습에 매료돼 다시 영화를 전공하고 관련된 일을 계속하고 있다. BIFF가 인생을 바꾼 셈"이라고 말했다.
# 양정화 PD 의 추억
- "매뉴얼 만들며 행사준비, 1회 때 살 5㎏ 쏙 빠져"
"부산국제영화제(BIFF) 1회요? 정말 힘들었지만 추억도 많았어요."
메인타이틀픽쳐스 양정화(42·사진) PD는 초창기 BIFF에 관해 묻자 20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운을 뗐지만 당시 고생한 기억과 보람을 떠올리며 잠시 감회에 젖는 듯했다. 양 PD는 1회 BIFF 자원봉사자 담당이었고 홍보팀, 한국영화 스태프로 일하다가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 사무국장,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무국장,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운영본부장 등을 거친 영화제 전문가다. 들꽃영화상 등 크고 작은 영화제의 컨설팅과 함께 상업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부산에서 '시네마테크 1/24' 대표로 예술영화 운동을 펼쳤어요. 그때 오석근·이용관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고 자연스레 BIFF 스태프로 참여하게 됐죠. 하지만 당시에 '자원봉사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개념이 없던 터라 교육과 관리 매뉴얼을 만들어가며 행사를 준비했어요. 한 달 새 몸무게가 5㎏이나 빠질 정도로 고생했는데 그래도 1회 BIFF에서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커 보람도 느꼈어요."
그녀가 기억하는 BIFF 사무국 초창기는 아날로그 투성이였지만 영화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도 컸다.
"인터넷이 발달했던 시기가 아니라 해외 게스트를 초청할 때 팩스나 국제전화에만 의존했어요. 발을 동동 굴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하지만 당시에는 사무국 규모가 크지 않아 프로그래머와 스태프가 어울려 재미있게 일했던 것 같아요. 또 부산에서 국제행사가 열리는 것에 자부심을 품고 일부러 도와주신 시민이 많아 고마운 마음이 컸죠."
국내 여러 영화제를 경험한 그는 영화제 스태프에 관한 현실적인 얘기도 들려줬다.
"BIFF 초창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조직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아 성취감이 컸어요. 하지만 지금은 조직이 커지면서 스태프 개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돼 있는 것 같아요. 아직 한국영화 산업 전체에서 영화제는 일부에 불과한 부분도 있지만, 자신의 비전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