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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의 동반성장-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서 관객이 질문을 하고 있다. BIFF 제공 |
20년 전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기웃거리던 'BIFF 키즈'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 영화제를 찾던 열혈 관객 중 일부는 부산의 영화문화를 견인하고 있다. BIFF의 주요 스태프가 된 이도 있고, 예술영화전용관을 지키는 이도 있다. 독립영화감독이 되었거나, 영화평론을 하거나, 필자처럼 관객운동에 뛰어든 이도 있다. BIFF라는 큰 나무가 있었기에 그 그늘에서 우리의 꿈도 숨을 쉴 수 있었다. BIFF가 있었기에 '영화도시 부산'이란 이름도 가능했고, 적극적인 관객이 되는 것도 가능했다.
■ 관객문화 요람, 시네마테크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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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마테크 부산- 부산 해운대구 수영만요트경기장에 있었던 시네마테크 부산 전경. 국제신문 DB |
관객의 영화문화를 이야기할 때 BIFF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시네마테크 부산'의 존재일 것이다. BIFF는 그 이전과 이후로 가를 만큼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일 테지만 여기에 그 차원을 심화한 것은 시네마테크 부산의 설립이었다. 영화제의 열기에 부응해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워진 시네마테크 부산은 관객의 문화기지로 다양한 특별전, 회고전,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관객이 일상에서 영화제를 체험하도록 만든 공간이었다. 고전 영화, 예술영화 프로그램은 영화제의 수작들을 향유하려는 관객 수요를 만들어갔고, 각종 영화교육을 통해 준전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문화적으로 척박했던 부산에서 해외에서도 흔치 않은 규모의 영화제를 개최하고 시네마테크 부산을 누구나 상시로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관객은 다양한 영화의 스펙트럼 안에서 역량을 쌓아나갔다. 영화제를 드나드는 관객의 영화 안목과 관람 수준은 시네마테크라는 든든한 버팀목 속에서 성장해갔고, 영화제는 그러한 관객의 격(格)을 가늠하는 시험장 같은 곳이었다. 시네마테크 부산이 관객문화의 풍요로운 토양이었다면 영화제는 그 토양의 성과로서 거기서 쑥쑥 자라나는 큰 나무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부산의 영화 관객이 시네마테크 부산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공공연히 표명해 왔던 데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필자도 시네마테크에서 고전 영화를 배우고 BIFF에서 현재의 영화들에 눈뜨지 않았다면 모퉁이극장을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첫 프로그램을 놓칠까 조바심을 내며 한쪽 호주머니에는 붕어빵을, 다른 한쪽에는 우유를 넣고 도시철도 동백역에 내려 시네마테크를 향해 뛰던 필자의 모습은 지금 영화의전당을 찾는 젊은 시네필들의 모습이다.
■ 영화공간과 모임들 자생적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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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평론단- BIFF에서 시민평론단이 행사에 참여한 모습. 국제신문DB |
연이은 영화제의 성공적 개최와 긍정적 파장은 관객의 영화에 대한 애정과 영화문화의 향유 욕구를 시네마테크 바깥으로까지 확장했다. 부산의 이곳저곳에서 자생적인 영화모임과 영화공간들이 늘어났다. 시네마테크 부산을 드나드는 관객이 2002년 만든 '시네마테크 P.O.V'는 세미나를 병행하며 고전, 명작들을 지속해서 상영했다. 부산교대 근처에 터를 두었던 '공간초록'은 2007년부터 '초록영화제'를 열어 꾸준히 독립영화들을 소개했고, 경성대 근방에서는 '다락영화연구회'가 독립영화 제작, 세미나, 상영 활동을 해왔다. 부산대 인근에서는 2005년부터 연구공간 '장전' 멤버들이 '영화(들)'이라는 잡지를 발간했고 영화이론 세미나, 상영회를 지속했다. '영화예술포럼 플럭스'는 2008년부터 플럭스 일요상영회, 불면의 밤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원도심에 소재한 '영화공간 보기드문'은 요일별로 특화된 영화프로그램을 상영해왔다.
이러한 영화커뮤니티들은 부산의 영화문화를 다채롭게 하고 두꺼운 관객층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해왔다. 이들 중에는 현재 사라진 곳도, 위치가 바뀐 곳도 있고, 잠시 휴식기를 가지는 곳도 있다. 남아 있는 곳들은 여전히 부산의 소중한 영화모임으로 그 생명을 지켜가면서 관객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관객의 흐름 속에서 2012년 개소한 모퉁이극장은 그간 필자가 몸담았던 영화모임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견고한 관객들의 터를 고민하면서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한편 본격 영화공간과 모임을 표방하진 않지만 시민의 생활과 밀착한 형태의 친화적 상영방식과 프로그램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백년어서원' '카페 헤세이티'와 같은 인문학 공간에서도 독립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상영회를 간헐적으로 열고 있으며, 작은 대안공간들의 영화프로그램, 대학생과 직장인의 영화동아리 모임도 이어지고 있다. 청년단체 '동네백수'가 운영하는 이바구 목요영화관은 '달밤에 영화'라는 콘셉트로 골목의 한 공터 벽을 스크린으로 삼아 주민들이 돗자리를 깔고 영화를 볼 수 있다. 수영구의 주거공동체 '잘자리'에서 진행하는 '가정식 영화'는 같이 모여 저녁을 해먹고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보는 모임이다. 이런 움직임들은 영화문화라는 것이 특정 영화인만의 것이 아니라 부산 시민과 관객 누구나 향유하는 외연이 넓은 문화로 안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BIFF 20년의 꽃, 시민평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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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생적 영화 커뮤니티- BIFF를 토양으로 삼아 다양한 형태의 관객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 관객 응원 활동을 펼치는 모퉁이극장(위쪽)과 시민평론단이 영화 공부를 하고 있다. 국제신문DB |
BIFF 20년을 돌아보며 관객의 발자취를 더듬을 때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BIFF의 '시민평론단' 활동이다. BIFF는 영화제 기간 시민이 영화제에 참여하는 창구를 만들고자 2010년 시민평론단을 발족했다. 시민평론단은 시네마테크에서 시민평론교실을 수료한 시민에게 주는 일종의 명예자격으로 영화제 상영작에 대한 평론을 쓰고 온라인에 웹진 형식으로 공유한다. 그리고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 작품을 심사해 시민평론가상을 수여하는 권한을 가진다. 시민평론단과 시민평론가상 등의 기획은 BIFF에서 국내 최초로 시도한 특별한 시민협력프로젝트로 시민과 호흡하는 영화제를 실천한 좋은 선례라 할 만하다. 영화제와 영화를 향한 갈망에 매표소 앞에서 밤을 새우고, GV에서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열심히 노트에 메모하던 관객은 이제 작품을 비평하며 심사하는 관객으로까지 나아갔다. 시민평론가상 수상작들은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도 상을 받는 등 시민평론단의 영화적 안목과 공신력 또한 인정받고 있다. 시민평론단은 해외의 영화제들도 부러워하는 영화도시 부산의 큰 자산으로서 앞으로도 BIFF를 함께 만들어갈 것이다.
■ BIFF, 관객과 영화도시 숲 이뤄
영화제 안팎에서 이어지는 영상교육 환경과 자생적 영화모임들의 분투, 시민평론단의 활약상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용관 BIFF 집행위원장과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가 일찌감치 말했듯이 "영화제의 콘텐츠가 관객이다"라고 할 정도의 토대가 부산에 이미 갖추어져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영화제를 함께 만들고 변화시켜갈 미래의 주체는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영화의 관객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BIFF 20년을 바라보며 영화도시 부산만의 '적극적 관객문화'를 영화제 키워드의 하나로 내건다면 어떨까. 세계 최초로 BIFF에 관객부서가 생겨 관객이 주체가 되어 프로그램 섹션을 운영하고, BIFF의 유수한 영화 목록들을 공공재로 재배치해 일상에서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즐거운 일도 가능해질 것이다.
영화제 티켓을 한 장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품었던 관객들, 국내외 게스트와 영화인들을 맞는 친선대사가 돼 영화제를 지지해 온 관객들, 영사 사고에 따끔하게 항의하던 관객들, 다름 아닌 우리들의 초상이다. 우리 모두 20년간 함께 울고 웃으며 영화도시 부산이라는 숲을 이뤄낸 구성원으로서 함께 걸어온 동반자였다. 우리는 정말 순수하게 BIFF가 있음을 축복하고 좋아했다. 그러니 이번 20회 BIFF에서는 그 시간을 함께 통과한 우리들의 활약을 기억하고 만나며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현수·모퉁이극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