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원 앞에서 평화로운 표정으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청년이 보인다. 사원 안으로 들어간 청년은 악사들 틈에 앉아 연주를 즐긴다. 청년이 음악에 빠져있는 사이 악사들이 하나둘 사원을 빠져나가고 청년은 홀로 남게 된다. 평화로웠던 청년의 얼굴은 이제 완전히 굳어져 있다.
이 오프닝 시퀀스가 말해주듯 개막작 '주바안'은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청년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 딜셰르는 성공을 위해 대도시로 올라온 시골 출신 청년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뿐이지만 그에게는 큰 꿈이 있다. 그 꿈을 심어 준 사람은 대기업 KSIL을 이끄는 굴차란이다. 그는 맨주먹으로 그룹 총수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10여 년 전 어린 딜셰르에게 '남이 네 인생을 쓰게 하지 말고, 네 손으로 네 인생을 써나가라'는 조언을 남겼다. 그 말을 가슴에 새겼던 어린 딜셰르가 청년이 되어 자신의 우상을 찾아 나선 것이다.
시골뜨기 청년이 그룹 총수를 만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딜셰르는 편법과 계략을 동원해 기어이 목적을 달성한다. 겨우 굴차란의 신임을 얻게 된 딜셰르 앞에 또 다른 장애물이 등장한다. 굴차란의 아들 수리아다. 어머니의 위세를 등에 업은 수리아는 딜셰르에게 무차별적인 압박을 가한다. 심신을 갉아먹는 경쟁 속에서 살던 딜셰르는 아미라를 만나면서 위안을 얻는다. 가족을 잃은 상처를 노래로 달래며 살아가는 그녀와 만나 딜셰르는 잊고 살았던 소중한 가치를 깨닫는다.
이 영화를 연출한 모제즈 싱은 인도의 신인감독으로, '주바안'은 첫 장편영화다. 감독의 이름은 낯설지만, '주바안'은 매우 익숙한 영화다. 대부분 인도영화가 그렇듯 '주바안' 역시 춤과 노래로 많은 것을 표현한다. 거의 15분 간격으로 등장하는 춤과 노래는 서사의 빈자리를 메우기도 하고, 인물의 심리를 대변하기도 하며, 주제를 표현하기도 한다.
등장인물이나 줄거리 역시 익숙하다.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계략과 음모를 꾸미는 딜셰르의 모습은 '적과 흑'의 쥘리앙 소렐이나 '성공시대'의 김판촉 모습과 겹친다. 목적을 달성하려고 경쟁자에게 폭행을 가하는 모습에서는 수많은 조폭 영화 주인공이 떠오르기도 한다. 주인공과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여인, 주인공의 출세를 돕는 재벌, 무능력하지만 권력욕은 강한 재벌 아들, 거기에 남편을 우습게 여기는 교양 없는 재벌 부인 등 주변 인물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이 익숙한 흐름은 영화 종반부에 이르러 깨진다. 쥘리앙 소렐이나 김판촉이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진 것과는 달리, 딜셰르는 성공의 문턱에서 욕망을 접고 평화로운 음악의 세계로 귀의해 버린다. 일관성 있는 서사구조를 가진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이라면 딜셰르의 갑작스런 개과천선에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도 한국영화도 아닌 인도영화다. 리얼리티나 개연성 같은 것은 잠시 잊고 흥겨운 춤과 노래에 몸과 마음을 맡기면 인도영화의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김이석 동의대 영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