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누와르 장르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을 언급하라면 '조니 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은 누가 뭐라고 해도 '흑사회' '익사일' '참새' 등의 홍콩 누와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니 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가 상업과 예술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스타일이란 '규정될 수 없는 것'임을 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호접비'나 '단신남녀' 등을 통해 사랑 이야기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화려한 샐러리맨' 또한 이에 속하는 작품이다. 조니 토가 처음으로 뮤지컬 형식을 차용했다는 점, 사무실의 모든 문을 없애고 사방을 볼 수 있게 만든 영화 공간, 쟁쟁한 배우들의 등장까지. 영화는 보고 듣는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사유'하도록 만든다.
광고회사 '존스&선' 이곳은 누구나 선망하는 회사지만 이곳에 근무하는 샐러리맨들의 현실은 끔찍하다. 영화의 오프닝은 샐러리맨들의 삶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출근 시간 지하철에서 수백 명의 직장인이 쏟아져 나오고, 하나같이 검정 색깔의 정장을 입고 있고,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사무실에서 일하고 늦은 시간 퇴근한다.
첫 출근을 한 어수룩해 보이는 리샹과 회장 딸 치치도 마찬가지이다. 부회장 데이비드(진혁신)는 회계부 사원 소피(탕웨이)를 꼬시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호 회장(주윤발)은 그의 정부이기도 한 장 사장(실비아 창)에게 1대 주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지만 회계감사가 시작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보시다시피 영화를 끌어가는 주인공들이 많아 이야기가 분산될 거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회사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사건이 압축되기에 이야기에 집중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다. 또한,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샐러리맨들'이다. 상사에게 아부하고, 매일 야근해야 하며, 회식에 동원당하는,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도 늘 웃음으로 무장해야 하는 이 시대 '을'들 말이다.
영화는 샐러리맨의 일상을 다루는 것과 더불어 '사랑'이란 무엇인지 묻게 한다. 영화 속 사랑은 로맨틱과 거리가 멀다. 무서우리만치 정치적인 관계이다. 주인공들에게 관계란 욕망(돈, 직장, 명예)이 내재하여 있음을 뜻하고, 속내를 숨겨야만 관계가 지속할 수 있다. 오로지 사랑이 전부였던 소피와 삼각관계가 들통 난 데이비드가 자신들의 속내를 들켜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한 홍콩 직장인들의 불안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조니 토는 사랑 또한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재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러나 생활에 늘 불행만 있는 건 아니다. 비가 오고 나면 해가 뜨기 마련이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이 무료한 일상도, 날씨처럼 오락가락하는 것임을 고려한다면, 지금을 버텨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김필남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