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를 온통 휘감는 '물'로
- 서사 아닌 이미지 표현에 집중
마치 편집되기 전 영화의 제작 현장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남녀 배우는 슬로우모션으로 연기하고 두 배우 뒤에 쭈그려 앉은 이들이 무대에 깔린 얕은 물을 퍼 올려 물보라를 만든다. 바닥의 물을 휘저어 파도를 일으키고 온전히 몸을 던져 물의 '결'을 드러내는 것도 배우다. 아마 영화였으면 CG로 '추가'하거나 편집으로 '삭제'해 매끈하게 처리해야 할 잉여다.
배우가 대사하기 위해 허겁지겁 스탠딩 마이크로 달려오는 장면도 수차례.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너무도 간단한 일을 이들은 (의도든 의도가 아니든) 수고로운 땀이 깃든 노동으로 표현한다. 60분 동안 바닥을 뒹구느라 물에 빠진 생쥐가 된 배우의 모습에 바다를 비옥한 땅으로 만들려 애쓴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면이 겹쳐진다. 시시포스의 돌 같았던 연극을 마친 배우가 또 하나의 파우스트였다.
제13회 부산국제연극제 한국 극단 하땅세의 '파우스트'가 8~10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랐다. 괴테의 파우스트 2부를 중점으로 만들었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와 계약 후 고대 그리스 헬레나와 만나고, 전쟁에 승리한 공으로 황제에게 하사받은 해안 지대에 간척사업을 진행하는 장면 등을 그린다.
하땅세의 극에서 중요한 것은 물을 이용한 이미지의 구현이다. 8일 공연 뒤 열린 '아티스트 토크'에서 윤시중 연출은 "서사가 아니라 이미지와 감성으로 관객과 만나고 싶었다. 물을 이용하고 상황과 연극성으로 가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극장 1400여 객석을 포기했다. 무대 장막을 친 뒤 물을 깐 무대 주변에 'ㄷ'자 형태로 간이의자 300개를 놓았다. 윤 연출은 "관객과 더 가깝게 소통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극 후반부 무대 장막이 오르고 대극장 붉은 객석이 또 하나의 무대로 활용된 장면도 있었다. 젊은 여성 배우가 연기한 메피스토는 빨간 곱슬머리 가발을 쓰고 야광 조명 장치를 단 밴드와 함께 등장해 라이브 연주로 흥을 돋웠다. 배우는 "나이트클럽 '삐끼'같은 모습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했다. 연출자 역시 "파우스트 안에 이미 악마성이 있고 메피스토는 악마성을 발현시키는 촉매제 정도로 보고 친구처럼 편한 존재로 설정했다"고 했다.
관객의 반응은 엇갈렸다. "잘 봤다"는 관객도 있었지만 "엉터리"라고 혀를 차며 공연장을 빠져나간 노년 관객도 있었다. 국제연극제 관계자는 말했다. "세기를 초월해 계속 새로운 형태로 재현되는 것이 바로 근대 희곡의 힘인 만큼 이번 연극제의 취지를 오히려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박지현 기자 anywa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