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입부다. 한 무리의 젊은 남자 녀석들이 있다. 관심 있는 건 오로지 오늘 밤 어떤 파티에 가서 어떤 여자와 잘 것인가 하는 문제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애들이다. 세련된 여학생 둘이 보이자, 차를 세우고 예의 그 작업 멘트를 던진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비웃음 뿐. 아마도 이때 쯤 나왔던 대사인 것 같다. 이대로 물러 설 수는 없다며 한 번 더 시도하기 위해 차를 돌리려 하자 녀석들 중 누군가 이렇게 외친다. "타자기를 갖고 있잖아! 지적인 애들이라고!" 이 말이 별안간 나의 웃음보를 자극했다. 우린 쟤들을 상대하기에 너무 얼간이들이잖아, 라고 자기도 모르게 진실을 말해 버린 것처럼 보여서다.
때는 아직 컴퓨터가 일상화되지 않았던 1980년대이고 개강을 3일하고 15시간 남겨둔 어느 날이고 이 녀석들은 근방 대학의 야구 특기생들이다.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에브리바디 원츠 썸'의 한 장면이다.
어쩌면 이 녀석들 중 하나가 링클레이터였을지 모르겠다는 상상도 재미있다.'보이후드'나 '비포'시리즈처럼 예민한 감수성이나 지적인 감식안이 배어 있는 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의 젊은 날로는 잘 믿기지 않겠지만 링클레이터는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야구 특기생으로 대학 생활을 보냈다. 학문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는 뜻일 거다. 하지만 그는 점점 더 운동이 시들해지고 연극과 글쓰기 등에 관심이 높아졌다. 운동하는 시간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더 좋았다. 아마도 외야수였던 모양인데, 외야에 글러브를 끼고 서서는 "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졌다고 한다. 마침내 그는 운동을 그만두었고 다른 길을 갔고 유능한 영화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링클레이터가 야구 특기생으로 살았던 지난날을 특별히 후회한다거나 자신이 속했던 무리를 비아냥거리는 것 같진 않다. 사태는 그 반대다. 링클레이터는 그들의 멍청한 나날들을 약간의 유머와 함께 넉넉하게 바라본다. 링클레이터 영화에서 얼간이들은 그 존재감을 그 자체로 인정받곤 하는데 요컨대 그것이 인생 실패자에 대한 링클레이터의 세심한 배려심이 드러나는 영화들과 아예 연관 없진 않을 것이다. 우둔하고 무모한 나날들 속에서도 무언가는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거나 누군가는 무엇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걸 이 영화는 믿는 느낌이다.
이 영화가 오래 전에 만들어 졌던 링클레이터의 초기 대표작 그러니까 학기 마지막 날 고등학생과 중학생들의 그 엉망진창 신고식을 소재로 삼았던 영화 '멍하고 혼돈스러운'의 후속작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녀석들은 개강일이 다가올 때까지 밤마다 흥청망청이다. 디스코 클럽에서 컨트리 클럽으로 다시 펑크 록 공연장으로 그리고 마침내 공연예술 학생들의 파티장으로. 이 문화에서 저 문화의 장으로. 물론 이것이 깨달음이나 변화의 가장 좋은 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의 주인공들 중 한 명은 지금 막, 아주 서서히, 무언가 변화의 지점으로 향해 가고 있다. 다만 링클레이터의 단호함이란 그 변화가 아직 선명해지기 직전에 영화를 멈춰 세운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