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정한석의 리액션] 도덕과 살인- 우디 앨런의 '이레셔널 맨'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7-28 18:43:08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얼마 전에 영화의전당에서 강연 하나를 하다가 그만 칸트의 정언명령이라는 표현을 써버렸다. 사실 안 해도 될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한 뒤풀이 자리에서 농담 섞인 핀잔이 날아들었고 "그런 말은 왜 했냐"고 동료들은 킬킬댔다. 역시나 안 해도 될 말이었다.

우디 앨런의 영화 '이레셔널 맨'의 한 장면을 보다가 그 일이 생각났다. 주인공 에이브는 과격하면서도 진보적인 철학교수다. 그가 학생들에게 칸트의 정언명령에 대해 삐딱하게 가르치고 있다. 정언명령이라는 게 누구나 예외 없이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도덕 준칙이라면, 그러니까 조건이나 가정이나 목표 등이 전제된 가언명령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무엇이라면 다음과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묻는다. 나치가 우리들의 집을 찾아와 '유대인인 안나 프랭크의 가족을 다락방에 숨겨 놓았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도덕적 정언 명령을 따르기 위해 '그렇다. 그들이 저기 있다'고 말해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도덕은 엉터리라는 거다. 철학은 언어적 자위라고 그는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언어적 자위라고 멸시했던 도덕의 명령을 에이브 그 자신이 충실히 따른다는 데 있다. 부패하고 폭력적인 판사의 판결로 억울하게 아이들을 빼앗길 위험에 처한 한 여인을 위해 에이브는 그 판사를 살해할 결심을 하고 실제로 이행한다. 요컨대 '정의는 실현되어야 한다'는 그 보편타당한 도덕적 준칙을 위해 에이브는 살인을 불사한다. 더하여 그는 이 살인을 두고 "완전범죄라는 창조적 도전"이라며 흥분한다.

더 흥미로운 건 그 뒤부터다. 에이브의 행동은 그를 사랑한 여학생 질에게 들통난다. 하지만 그와 그녀의 관계는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와 소냐의 관계가 되지 못한다. 질은 에이브에게 자수를 권하며 그렇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에이브는 자신이 살기 위해 질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영화는 이때부터 갑자기 허술해지고 에이브가 질을 살해하려다 실패하는 장면은 허술하다 못해 우스꽝스럽게 보일 정도다. 도덕을 추구하다가 빗나가 버린 비극적 결과와 그 아이러니. 우린 이 영화를 그렇게 요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극히 자기 파괴적인데다 죽음과 겨루기 위해 러시안 룰렛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이 사내가 자신의 남은 생에 저토록 집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도덕의 아이러니만으로는 어딘지 설명이 잘 안된다 . 다른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둥거리다 죽어 가는 에이브를 보고 있노라면 다른 '절대'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에이브 자신이 실천할 수 있다고 믿은 건 형이상학적 도덕에의 의지이지만 정작 그를 지배하고 조종하는 것은 철저하게도 형이하학적인 사태들이다. 그가 무엇을 밟고 미끄러져 죽게 되는지 관객은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레이셔널 맨'은 허술하다. 그럼에도 우디 앨런은 칸트의 정언명령 같은 형이상학적인 말로 시작해 엘리베이터 앞의 허둥지둥 살인극과 같은 형이하학적인 참극으로 끝낼 줄 아는, 몇 안 되는 이야기꾼이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5. 5선박 2척 버티기…수영만요트장 재개발 착수 해 넘기나
  6. 6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7. 7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8. 8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9. 9[사설] 신세계타운, 센텀시티의 새 도약과 부산의 미래 이끌길
  10. 10“지광은 국제신문 떠나라” 직원 빗속 상경투쟁
  1. 1820조 예산전쟁 개막…여야 ‘3대 메가·미래기금’ 격돌 예고
  2. 2박수영 ‘국쫌만’ 300회…888건 민원 풀어
  3. 3주민자치회 정식 출범 원년…유럽 모범사례 현장을 가다
  4. 4‘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5. 5“7개 정당 19명 치열하게 토론…대화·설득으로 의견 일치 봐”
  6. 6민주, 조희대 ‘계엄 동조’ 여부 정조준
  7. 7서범수 의원, 농지 훼손·환경오염 막는 강화 법률 개정안 발의
  8. 8이 대통령 '순방 외교' 공방, '돼지 눈엔 돼지" 표현 논란도
  9. 9사천 공군기지 훈련기 공중 충돌 뒤늦게 알려져…부상자 없어
  10. 10北, 집속탄두 위력 과시…‘축구장 18개 면적’ 초토화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5. 5편의점 번진 요거트 인기…세븐일레븐 ‘요즘’과 맞손
  6. 6부산은행 김해공항점 계속 운영
  7. 7중산층 10명 중 4명 벌이 줄었다
  8. 8조선 빅3 공동납품망 완성…부산 기자재 플랫폼 안착(종합)
  9. 9롯백 편집숍 ‘시시호시’ 부산 감성 입었다
  10. 10캐릭터로 동심 공략하고, 어른 향수도 자극하고
  1. 1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2. 2선박 2척 버티기…수영만요트장 재개발 착수 해 넘기나
  3. 3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4. 4“지광은 국제신문 떠나라” 직원 빗속 상경투쟁
  5. 5“국제신문 위기는 민의 위기” 지역사회 잇단 지지
  6. 6경비·미화 넘어 AI·관광 전문가로…은퇴 뒤 더 빛나는 삶
  7. 7여전한 특수학교 님비 “주민체육시설 끼워 짓자” 고육책
  8. 8국힘 과반 양산시의회, 민감한 3개 안건 부결 왜?
  9. 9대학·마을에 스며든 이전 기관…지자체는 정주지원 화답
  10. 10“부산형 상병수당, 고령노동자도 줘야”
  1. 1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2. 2“좋은 젊은 피 많아…잠재력 극대화”
  3. 3“실책·기복 없어야 강팀…거인 맞춤 훈련 강화할 것”
  4. 4삼성, KIA 6-1 꺾고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
  5. 5BNK, 여자농구 개막전 ‘디펜딩챔프’ KB 완파
  6. 6‘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7. 7“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8. 8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9. 9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10. 10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배미정-나무에 기대어
송현화-Magic Airs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곰 두 마리 /황인숙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2일 (음 9월 23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9일 (음 9월 19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가 소쇄원 단풍을 읊은 시
이여가 가을 보름달을 바라보며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