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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석의 리액션] 이야기꾼의 영화 '마이 리틀 자이언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8-18 19:13:08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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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1박 2일 캠핑을 했다.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밤이었다. 시작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내가 친구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 하나를 해주고 있었다. 그땐 몰랐는데 나중에 떠올려 보니 애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였다. 원작은 아니고 어디서 요약본 같은 걸 읽었을 거다. 원래 이야기가 다 끝났는데도 친구들이 뭔가를 더 기대하자 나도 모르게 즉석에서 다른 이야기를 꾸며서 덧붙였던 것 같다. 내가 세상 하나를 만들고 있는 것 같은 흥분된 느낌이 기억난다. 하지만 모두의 주시를 받는 것에 대한 피로함도 기억난다. 그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훗날 종종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기본적으로 훌륭한 이야기꾼은 아닌 모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그가 연출한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내게 훌륭한 이야기꾼의 자의식을 지닌 영화처럼 보였다. 고아원의 어린 소녀가 거인나라의 꼬마 거인에게 납치되지만 그와 친구가 되고 둘이 합심하여 아이들을 잡아먹는 큰 덩치의 거인들을 혼내준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통하는 소설가 로알드 달의 원작이다. 그는 애드거 앨런 포우 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며 올해는 그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귀여운 상상력으로 넘쳐나는 이 이야기는 로알드 달이 예순을 훌쩍 넘은 나이에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다. 이 꼬마 거인의 특기는 잠자는 사람들에게 꿈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인데, 어린 소년 하나에게 그렇게 해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덕분에 소년은 대통령에게 전화를 받고 대통령의 중대한 결정에 영향력 있는 조언을 해주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되는 꿈을 꾸게 된다.

영화는 이 장면을 마치 그림자 이야기 극처럼 보여준다. 우리의 경험상 꿈에는 거의 말이 되는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로알드 달과 스필버그는 그걸 재치 있는 이야기로 바꾸어낸다. 거인들을 물리치기 위해 영국 여왕의 힘을 빌리려고 작정했을 때에도 소녀와 꼬마 거인은 여왕의 꿈속에 그럴듯한 이야기 하나를 심어준다.

소녀가 꼬마 거인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악몽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거인은 이렇게 말해준다. "네가 저지른 것을 보아라.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나는 이 표현이 흥미로웠다. 그는 가장 지독한 꿈의 어떤 이미지나 혹은 어떤 정의(가령 저 말을 압축하면 죄책감에 관한 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다)를 말해주는 대신 우리의 이야기적 상상을 자극하는 한 줄의 문장으로 말해준다. 우리는 무엇을 저질렀을 때 절대로 용서받지 못한다고 느낄까. 그 느낌은 각자의 이야기로 재생될 수밖에는 없는 것이라고 그는 말해주는 것 같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야기에 대한 이러한 풍요로운 단상 덕분으로 내게 이 영화는 어른들을 위한 안성맞춤의 영화인 것처럼 보였다.

*추신-이 말은 해야겠다. 상영관이 한정적인데다가 인근 상영관에서는 자막 버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기록적인 폭염을 뚫고 저 멀리 자막 버전 상영관을 찾아 헤맬 것인가 그냥 더빙 버전으로 볼 것인가 고민하다 어쩔 수 없이 후자를 택했다. 자막/더빙, 양자의 관람 기회를 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니까 이런 상영 방식은 상식 밖의 짓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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