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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석의 리액션] 사실은 그 블랙홀 속에…'크리피: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8-25 19:02:29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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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사이코패스가 평범한 이들의 삶을 참혹하게 앗아가는 내용을 담은 영화 '크리피: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을 보고 두어 시간도 채 되지 않았을 때다. 텔레비전을 잠시 켰을 때 공중파 2개 채널에서는 사건과 실화에 관한 프로그램이 동시에 방영되고 있었다. 한 쪽은 친구에게서 7년간이나 돈을 횡령당하고 노예 같은 삶을 살았다는 40대 여인의 사연이었고 또 한쪽은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 앞에 자전거 운전자가 갑자기 들이닥치는 화면을 상세하게 보여주며 이럴 때 과실은 어느 쪽에게 있느냐를 묻는 토론이었다.

이 프로그램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저 여인의 특정한 사건이 담보한 허구적 희소성이거나(믿기지 않아!), 저 끔찍한 사건이 유발한 특정한 시시비비(누구의 잘못이지?)의 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저 여인의 삶은 사실상 묘사하기 어려울 정도로 곤두박질쳤을테고 저 자전거의 운전자는 적어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의 구체의 삶을 희소성이라는 재미로 바라보고 한 사람의 살아 있는 생명을 재담의 재물로 바꾸는 저 미디어의 욕망이 내가 방금 보고 나온 장르적 공상의 세계와 다른 것은 무엇인가 싶어 잠시 섬뜩했다. 그 프로그램들은 동정과 시비를 앞세워 사실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려 하지만 정작 사실을 다루기는 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그렇다면 '크리피'라는 이 영화는 그 사실임 직한 것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역으로 잠시 또 생각했다.

'크리피'를 만든 일본의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는 호러나 미스터리의 영화를 만들 때 일본 사회 내에 잠복해 있을 법한 히스테리를 끌어내 불안의 형상으로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큐어' '회로' '절규' 같은 영화들이 그런 종류의 영화들이었다. 그에게 세상의 사실이란 그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진실을 알 수 없는 그런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크리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지적할 수 있을 만한 문제 한 가지가 있다. 서사의 비논리성 혹은 무개연성이라고 부를 만한 문제들이다. 그런데 이 실패는 실패라 해도 흥미로운 실패 또는 의도된 실패인 것처럼 느껴져서 매우 흥미로운 데가 있다. 도대체 이 영화에는 설명을 하지 않거나 설명이 안 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약간의 추임새만 있어도 그걸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영화는 그걸 무시하고 사태를 계속 눈덩이처럼 불려 간다. 그 과정에서 영화의 장면들이 이어지는 이음새는 매우 불연속적이고 불안정한데도 개별 장면들의 밀도는 현저히 높아서 괴상한 불균형으로 영화가 무장해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인물과 사건들의 사실성은 점점 더 어딘가로 숨겨지고 그 괴상한 분위기만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영화가 커다란 블랙홀을 만들어 품은 것처럼.

그러니까 저 미디어들이 어설프게 다루려 했거나 혹은 처음부터 다룰 수 없었던 세부적 사실에의 문제 자체를 이 영화는 커다란 블랙홀을 만들어 그 안에 놓아둔다. 서사적 구멍이라는 형식적 난감함은 그때 우리 앞에 와 있지만, 어쩌면 그러는 사이에 조장된 이 공포가 저 낯 뜨거운 미디어들이 강조하는 사실에의 동정이나 시비보다 훨씬 더 우리가 느껴야 할 진실 쪽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 싶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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