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의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조선 후기 지리학자 고산자 김정호의 삶과 그의 대동여지도 제작에 얽혀 있었을 법한 일화들을 상상한다. 대부분은 아마도 박범신의 원작 소설 '고산자'에 포함된 내용이거나 그것에 기초했겠지만 2시간 내외의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선별된 축약이나 보충이 불가피했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이 영화가 택한 방식은 지도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적 초점을 형성하고 그걸 중심 내용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도는 누가 소유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다.
당시까지도 지도는 평등한 물건이 아니었던가 보다. 여행을 가야하는 사람들이 지도가 필요해지면 관청에 가서 지도를 베끼는 대목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그런데 베껴 그리다보니 잘못 그리는 일이 다반사였던 모양이다. 그들은 결국 가야 할 곳을 가지 못하거나 어렵게 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서 나라의 권세를 쥐고 흔드는 흥선대원군은 지도란 당연히 나라에 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도란 평등하고 공정한 정보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일급 기밀이라는 뜻이다. 마치 이건 책이 모든 이에게 주어질 필요는 없다는 말과 유사해 보인다. 김정호의 생각은 다르다. 지도는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지도는 누가 갖고 싶어 하는가"하는 문제도 영화의 주요 대목이다. 그게 영화의 주요 갈등 국면을 조성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두 세력이 나선다. 흥선대원군과 그에 맞서는 세도가들이다. 그들에게 지도가 필요한 건 지도라는 정보가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정보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래야만 정치권력을 손에 쥘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문제의 세부적인 결론까지 다루진 않는다. 대동여지도는 결국 누구의 소유가 되었을까 사실관계가 궁금해질 즈음 다시 영화가 내놓는 제스처는 이런 것이다. 지도는 모든 이를 위하여!
"그 지도는 누가 만들고 싶어하는가"라는 대목도 빠지진 않는다. 영화 속 김정호는 왜 지도 만들기에 집착하느냐는 질문에 "가슴이 뛰어서!"라고 간단히 답한다. 남들도 그의 대답만큼이나 간단히 그를 명명한다. "(지도에) 미친놈."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길을 가는 어떤 과학자나 연구자들의 순수한 열정이 김정호에게도 있었음을 대변하려는 말들인 것 같다. 그런데 지도를 둘러싼 조선 후기의 이 상상적 문제들은 지도가 영화 속에서 당대의 가장 뜨거운 정치적 쟁점으로 가정된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것 같다. 핵에 관련해서라면 그런 것 같다. 모든 이에게 지도를, 이라고 영화가 말한 것처럼, 모든 이에게 핵을, 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기술의 탄생과 쓰임 사이에 놓인 간극에 대해 생각이 미쳤을 뿐이다. 핵 과학자는 가슴이 뛰어서 과학적 연구자로서 그것을 완성한 것일 테지만 그 결과물은 이미 과학자 자신의 통제를 넘어서 있는 것이다. 그 창조자와 창조자의 기술 사이에 놓인 아이러니함은 얼마나 지독한 것인가. 얼핏 이런 단상을 떠올리게 된 것은,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개인의 열망과 세계의 욕망 사이의 간극에 관한 영화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