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 '조영남 대작 사건'을 계기로 SNS상에서 논쟁을 펼치던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가 SNS 활동의 피로함을 호소하며 돌연 트위터 계정을 폐쇄한 것이 화제가 됐었다. 평소에 SNS 활동을 워낙 열심히 했던 터라 이목이 더 집중됐다.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 "SNS란 게 좋은 것도 있지만…대개는 진화론 세미나 하는 데에 난입해 '공룡은 허구다. 하나님이 창조하시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존재하느냐'고 외치는 창조론자들과 말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죠. 옛날엔 재밌었는데, 요즘은 짜증납니다". 주제와 맥락과 자리를 무시하고 오로지 자기 입장만 강요하는 사람들과 논쟁하는 것이 피곤해졌다는 말로 우선 읽힌다.
그런데 이 말은 흥미롭다. SNS의 효용 중 하나가 가령 진화론자와 창조론자처럼 웬만해서는 한 자리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이들이 주제와 맥락과 자리를 막론하고, 좋건 싫건, 옳건 그르건, 과격하건 공손하건, 똑똑하건 무식하건 간에, 그 의견을 피력하고 교환할 수 있는 평등과 공유의 장이라는 것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서로 연고가 없거나, 범주가 다르거나, 지향이 반대거나, 수준 차이가 나는 사람들끼리도 불현듯 관계가 성립되어 적 또는 친구가 될 수 있는 긍정적 가능성을 SNS 활동가들은 오히려 강조해왔다. 아마도 진중권 씨는 자신이 열중했고 SNS의 효용 중 하나로 꼽혔던 관계 형성의 그 방식에 무용함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이런 예도 있다. 이와이 슈운지의 최근 개봉작 '립반윙클의 신부'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주인공 나나미는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녀가 맺고 있는 사람 관계란 SNS상의 몇몇이 전부다. 그 중 ID 아무로가 도움을 주겠다고 선뜻 나선다. 아무로는 나나미에게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나의 친구인) ID 램버렐의 친구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ID 램버렐이 어떤 사람인지 나나미가 정작 만나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나미는 아무로에게 어떤 음모가 있는지도 모른 채 의지하게 되고 그녀의 삶은 기이한 쪽으로 흐르게 된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SNS의 기본적인 관계형성을 의심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렇다면'립반윙클의 신부'는 SNS 세계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인가. 아니, 비판보다는 근심인 것 같다. 나나미는 미처 파장을 예상 못한 실언을 SNS에 남기거나 SNS상의 관계를 너무 믿어버리거나 해서 괴상한 삶을 자초하게 되는데, 이때 감독 이와이가 나나미에게 제공하는 모험담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SNS상의 관계로 삶이 엉망이 된 나나미, 하지만 그녀는 그걸 계기로 오히려 자신이 피해왔던 관계방식, 사람들 사이의 '면대면'의 관계를 흥미롭게 겪게 된다.
이와이는 세상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관심이 많은 감독이다. '러브 레터'에서 핵심은 주인이 바뀌어서 잘못 전해진 '편지'였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에서는 발흥한지 얼마 되지 않는 인터넷 세계의 '채팅창'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SNS상의 커뮤니케이션을 근심한다. 진중권이 SNS의 효용을 무용으로 인식하고 자리를 떠났다면 이와이 슈운지는 SNS에서 느낀 현실적 근심을 상상의 모험담으로 바꿔 보려 한다. 어느 쪽의 방식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SNS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우려하는 특기할 만한 두 가지 사례라는 점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