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작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이하 '설리')에 담겨 있는 세 가지 이미지가 지금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첫째는 강 위에 떠 있는 항공기, 그 항공기의 날개 위에 늘어서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설리'는 알려진 것처럼 2009년 뉴욕에서 있었던 항공기 불시착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이륙한 지 몇 분 되지 않아 새떼에 충돌하여 엔진 모두를 잃자 기장이 인근 허드슨 강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했고 승객 155명이 24분 만에 전원 구조된 일이다. 이 항공기의 기장 이름이 설리다. '설리'를 보는 한국 관객이라면 세월호를 떠올릴 수밖에는 없다고 이 영화를 미리 본 사람들은 말했다. 하지만 영화평론가로서 이 영화를 보며 세월호를 떠올리고 말하게 되는 건 실패라고 영화를 보기 전 생각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미지의 연상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패했다. 이것은 적어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피해가려 해도 피해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이미지다.
둘째는 초고층 건물들 사이로 추락해 가는 항공기다. 이스트우드는 설리가 조종하는 항공기가 급강하며 추락하는 장면에서 도시의 빌딩 쪽에서 그걸 목격하는 사람들의 시점을 삽입한다. 심지어 설리의 상상 속에서는 항공기가 빌딩에 충돌하여 폭발하는 장면까지도 등장한다. 우리는 '설리'를 보며 우리 사회의 이미지(세월호)가 가장 크게 보이지만, 미국인들이라면 그들의 이미지(9·11 테러)가 훨씬 더 충격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물론 한국인인 내게도 9·11 테러를 연상시키는 이것은 무서운 이미지이지만 동시에 충격이 둔화되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테러는 이미지의 게임이다. 점점 더 그렇다. 테러범들이 테러의 방식을 바꾼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수용자가 무감해졌다면 다른 이미지를 부여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트럭으로 사람을 치고 식당에 들어가 총을 무차별 난사하는 것이 테러의 양상이 되었다. 나는 9·11 때문에 뉴욕에 가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을 해보진 못했는데 파리 테러를 보면서는 그곳에 가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니까 빌딩 사이로 추락하는 저 비행기를 보면서 21세기 인류의 무서운 이미지의 시초와 그런데도 둔해진 나의 반응과 때문에 더 악랄해진 테러의 이미지들의 상관관계를 잠시 떠올렸다.
셋째는, 설리의 표정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근 공항으로 착륙을 시도하라는 관제탑의 안내를 어기고 강에 불시착해야 한다고 기장 설리가 판단할 때의 그 짧은 몇 초 동안의 표정이다. 그 표정이 너무나 무덤덤한 것이 특히 인상적이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설리의 행동이 반박될 때에도, 설리의 판단이 옳은 것으로 판명 나는 순간에도 설리의 표정은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영화 속에는 고민하고 고뇌하는 설리의 표정들이 꽤 나오지만, 이상하게도 설리가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이 영화도 든든하다. 이 영화가 든든하게 느껴진다면 승객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사건의 결과 보다, 소영웅의 행동은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찬미보다 바로 이 덤덤한 이 표정의 굳건함에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스트우드가 원했고 우리가 희망을 걸고 싶은 그런 평범하면서도 강인한 이미지인지도 모르겠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