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타계 30주년이다. 영화의전당은 타르코프스키와 그의 계승자로 인정받는 또 다른 러시아의 거장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특별전을 열고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1986년 12월 29일 54세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에서 숨을 거뒀다. 일종의 예술적 망명 상태였으므로 자신의 조국인 러시아(당시 소련)에서 죽지 못했다.
문득 책장을 뒤져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두레)'라는 책을 오랜 만에 꺼냈다. 1970년 4월 30일부터 그가 마지막으로 쓴 1986년 12월 15일까지의 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누군가의 일기를 읽게 될 때는, 특히나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예술가의 일기를 읽게 될 때는 묘한 기분이 교차한다. 우선 궁금증이 가장 먼저지만 그 사람이 숨기고 싶었던 것까지 낱낱이 읽는 것이 그에 대한 나의 이해에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도 한편으로는 있다. 그래도 역시 읽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일기의 독자가 누리는 흥분이란 작가의 저 최종적 진실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한 치 정도는 모자란 서툰 표현과 날 선 사실들에 있을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일기에는 여러 내용이 거칠게 담겨 있다. 갚아야 할 빚 항목을 길게 적은 뒤 "정말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고 마무리한 대목도 있고, 당시 예술 검열의 칼을 휘두르던 소련 정권을 비판하면서 "소련 정권은 얼마나 원시적이고 몰염치한가! (…) 바보 천치 같은 자들이 결재를 하고 있는 판에 무슨 영화를 찍을 수 있단 말인가!"하는 한탄도 있다. 토마스 만,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 작품을 영화화하는 것에 대한 꾸준한 관심, 영화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베르나르도 베루톨리치 영화에 대한 짧은 혹평, 반면에 로베르 브레송에 대한 기나긴 찬사도 있다. "잠입자가 정말로 내 최고의 작품이 될 것처럼 여겨진다"거나"'희생'의 리듬에 관해 생각할 것. 이미 촬영한 장면들에 조종당하지 말 것. 촬영 전에 영화를 리듬감 있게 구성할 것. 그것이 바로 영화의 드라마투르기이다. 문학과 연극과는 달리"라는 단상도 있다.
가장 쓸쓸하면서도 숙연해지는 대목은 역시 후반부다. 마지막 일기에는 "나는 아주 약해져 있다. 나는 죽어 가는가?"라는 문장 뒤에 문득"햄릿…?"이라고 적혀 있다. '햄릿'은 타르코프스키가 그의 말년에 차기작으로 만들기 위해 집중했던 소재 중 하나다. 죽음이 임박한 병자가 여전히 자기의 차기작을 열망한다는 것은 감동적이다.
타르코프스키에 관한 다큐멘터리 '안드레이 아르세네비치의 어떤 하루'에서도 그와 유사한 느낌을 받게 된다. 침상에 누워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형편이지만, 마지막 영화 '희생'에 대해 이것저것 조율하고 지시하는 타르코프스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창작이란 혹은 예술이란, 누군가에게는 그럴듯한 말로써가 아니라 정말 저렇게까지나 끝까지 중대한 삶일 수 있는 것이구나 하고 언젠가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던 것 같다. 타르코프스키는 창작을 한다는 것을 산다는 것과 완벽히 등치시킨 소수의 위대한 예술가들 중 한 명인 것이다.
영화의전당에서 열리는 특별전에서는 타르코프스키가 남긴 장편 전작 7편이 전부 상영된다. 누군가 내게 만약 어떤 작품을 절대로 놓치면 안 되는가 한 두 작품만 골라 보라고 묻는다면, '잠입자'와 '거울'이라고 말할 것 같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