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리처:네버 고 백(이하 네버 고 백·사진)'을 맥쿼리가 아니라 에드워드 즈윅이 연출하게 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어느 날 나는 나도 모르게 '망했다'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느리고 집요한 것과 느리고 지루한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지난 6월 이 지면에 썼다.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영화가 너무나 흥미로운 나머지 이 말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되기를 내심 바랐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왜 매력을 잃었을까.
'네버 고 백'에서 잭 리처(톰 크루즈)는 군사 기밀 스파이 혐의로 감옥에 간 수잔 터너 소령을 구하려다 자신까지 위험에 처하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잭이 몰랐던 그의 딸로 추정되는 한 소녀까지 더해져 일행은 셋이 된다.
이 결합에 반대한다. 잭 리처는 단독자이므로 그는 혼자여야 한다. 그를 외롭게 그냥 두자. 들개는 들개로 어슬렁거리도록 놓아둬야 한다. 잭 리처의 육체적 광포함과 유능함도 오히려 그때만 매력적이다. 이것이 원작에도 있는 내용이라고 하지만 선택지에 있어 영화와 원작 소설의 입장은 엄연히 다르다. 원작은 수십 편 중 하나로서 이 이야기를 선택한 것이지만, 영화는 두 번째에 벌써 이 이야기를 선택해 버린다. 너무 이른 선택이다.
그러자 '네버 고 백'은 엉뚱한 길로 간다. 가족을 형성하고 각자의 자리를 만든다. 잭의 주요한 서사는 부성애 회복 드라마로 내내 전개된다. 아니 부성애 회복 드라마라는 표현도 정확하진 않은 것 같다. 이 영화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딸로 구성된 홈드라마다. 홈드라마, 그렇다면 그들의 홈은 어디일까.
도주하던 인물들, 잭과 수잔과 잭의 딸인 듯싶은 소녀가 오래 머무르는 곳이 어느 호텔의 스위트룸이다. 영화는 왜 인물들을 여기에 이토록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이곳이 이들의 집이며 가정이기 때문이다. 도주 중에 만들어진 이 임시적인 가족은 이곳에서 홈드라마를 펼친다. 아버지의 잔소리도 어머니의 애정도 딸의 반항도 여기에서 전개된다. 결국, 악당들도 이곳으로 침입해 들어온다.
감독은 아마도 '네버 고 백'을 관계의 영화로 설명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관계라는 부분이 오히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다. 이 영화는 관계의 묘사에 대해서 일말의 정성도 들이지 않는다. 잭이 수잔의 구출을 위해 저렇게나 목숨을 거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건 합당한 반문이다. 이 영화에는 인물들 관계의 외형적 설정만 있고 그 정작 필요한 관계의 밀도는 낮다 못해 부재하기 때문이다.
뛰어난 배우 톰 크루즈의 최근 출연작 중 가장 어색한 연기를 여기서 보게 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을 지녔다. 그는 온화한 부성애와 유능한 광폭함 양자 모두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접점을 끝내 찾아내지 못하고 어정쩡하다. 제목은 의도치 않게 이 영화의 상황을 반영하게 되었다. '네버 고 백'. 그러고 보면 이 영화는 1편의 매력적인 세계로 돌아갈 의지는 없어 보인다.
한국영화에서도 후속작 제작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후속작을 만들 때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일례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