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나의 한국영화 베스트 다섯 편을 꼽아 보니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우리 손자 베스트' '4등' '춘몽' '남과 여'다. 순위별이다. 올해만큼 수월하게 목록이 작성된 해는 없었던 것 같다. '남과 여'의 자리에 '아수라'를 놓고 다소 고민했는데 비교적 과소평가 받았기 때문인지 결국 '남과 여' 쪽으로 좀 더 끌렸다.
올해의 한국영화 중 홍상수의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 견줄만한 영화는 없다. 이 사실은 너무 확실한 나머지 나로서는 설득하기 위해 덧붙이고 싶은 말이 별로 없다. 다만 영화 자체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이라면 다른 지면(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이미 길게 썼다.
장률의 '춘몽'과 이윤기의 '남과 여'가 비평적으로나 흥행적으로 환대받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발 뒤로 물러나 생각해보면 이 점에 대해서는 얼마간 이해도 된다. 이 작품들은 어딘가 모르게 두 감독의 과도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장률과 이윤기라는 특별한 예술가들의 비범함이 여전히 반짝인다고 느꼈다. 나는 부디 그 예술적 비범함이 앞으로도 훼손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장률이 개념이 아니라 삶을 다루는 감독으로, 이윤기가 '룩'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감독으로 더 용기 있게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김수현의 '우리 손자 베스트'와 정지우의 '4등'은 경우가 다르다. 두 작품에 대한 외면은 완전히 부당하다. 흥행은 그렇다 치고 영화 담론의 역할을 묻자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난 이 두 편의 영화는 공히 인정받아야 할 역량에 비해 올해 영화담론의 장에서 지나치게 홀대받았다.
'4등'에 관해서는 맞춤형 공익영화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탓에 나 역시 늦게서야 보았고, 올해 상반기 최고작이라며 이 지면에 짧은 감상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전주국제영화제와 첫 번째 시사회에서 볼 기회가 있었지만 게으름 탓에 그러지 못했고, 변명하자면 개봉한 뒤로는 개봉관을 찾기 어려워 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야 허겁지겁 보고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직무유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단지 괴작이 아니라 괴력의 영화다. 김수현의 이런 영화를 기다렸다. 어버이연합과 일베라는 자칫 도식적으로 보일 수 있는 사회적 흉물을 주인공으로 초대해 놓고도 이 영화는 조금도 도식적이지가 않다. 영화는 비틀비틀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종횡무진함으로써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운 서사의 쾌를 안긴다. 엄청난 이야기꾼의 신공이다. 게다가 영화는 한순간도 속도를 늦춰 상투의 정거장에 적절하게 멈추는 법이 없다. 내내 과속의 괴력으로 흥청망청 질주한다. 이런 영화가 도대체 얼마 만인가. 괴력을 지닌 것인 양 소개됐으나 실은 치장과 허세에 가까웠던 올해의 몇몇 과대평가된 영화를 '우리 손자 베스트'는 저 멀리 밀어내 버린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한국사회에 대한 흔한 상징의 영화가 아니라 한국사회라는 그것의 육체성을 감지하게 해주는 희귀한 영화다. 나는 김수현의 영화를 언제나 기다렸고 '우리 손자 베스트'를 보고 마침내 그 기다림에 보상을 받은 것 같아서 뛸 듯이 좋았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