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우 감독과는 한 번도 대면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영화 저널리즘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할 무렵 그는 서서히 은퇴 절차를 밟고 있었다. 2002년 그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만들고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뼈아픈 실패를 겪어야 했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그는 세기가 바뀌자 함께 저물어갔다.
그가 '천 개의 고원'으로 복귀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제주도로 떠난 해가 2005년이다. 그 한 해 전 김수현 감독이 '귀여워'로 데뷔했다. 그러니까 장선우가 퇴장할 무렵 김수현이 등장했다. 김수현 영화가 장선우 영화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직감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감독 자신은 다르게 보기를 권했지만, 내게 '귀여워'는 장선우 감독이 연출한 '나쁜 영화'(1997)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돌아온 버전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의아하면서도 흥미로웠던 건 당시의 내가 '귀여워'에 무척이나 매료되었지만 '나쁜 영화'에는 거의 반대의 기억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김수현 감독은 '나쁜 영화'의 조감독으로 참여했고 일부는 연출도 담당했다). 그때 잠시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혹시 나는 '나쁜 영화'를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 옛날 자료를 뒤지다가 다음과 같은 글귀를 마주하고 그동안 잊었던 그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영화평론을 엮은 '새로운 영화를 위하여'에 1983년 젊은 장선우가 실은 글 '열려진 영화를 위하여' 중 일부분이다. "거기(열려진 공간-인용자)에 필요한 것은 춤추고 노래하며 웃고 떠들고 노는 그런 것들이다. 풍자와 해학, 비일상성과 즉흥성, 신명과 도약 그런 것들로 구성되어 무의미하며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며, 맺힌 현실을 푸는 것이며, 약동하는 생명에 휩싸이는 것이다."
이 글은 확실히 1980년대 초반 당대 학생 운동의 문화적 중심이었던 연희 예술에 지나치게 빚지고 쓰인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시간이 흘러 당대의 당위적 맥락과 무관하게 저 표현 자체로 다시 음미해도 될 만한하다. 즉, 장선우가 열망했던 열려진 영화란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두 개, '신명'과 '리얼리즘'을 묶어'신명의 리얼리즘'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장선우가 제기했고, 전성기의 장선우가 과격한 영화적 육체로 실현하려 했으며, 그래서 일부는 성공하고 일부는 실패한(장선우 자신이라면 언제나 '나쁜 영화'를 그 성공사례의 정점으로 꼽은), 그리고 장선우보다 더 한 과격함으로 김수현이 간헐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그 열림의 활력이 신명의 리얼리즘과 관계있을 것이다.
해가 바뀌었고 장선우 감독이 제주도로 떠난 지 12년째가 된다. 신명이라는 것에 대한 상세한 해명, 장선우와 김수현의 불가피한 창작성의 차이 등 가려내야 할 복잡한 사안이 다수 매설돼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무엇보다 장선우-김수현으로 이어지는 활력의 계보를 다시 의식하게 됐다. 그러니까 나는 오랜만에, 장선우의 '나쁜 영화'에 대한 신중한 재고의 시간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긍정의 조바심에 시달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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