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작 모차르트는 그의 고향을
- 못마땅해하는 쪽에 가까웠다
- 그의 명성을 빌려 키운 것은
- 후대 음악가들의 ‘노력과 센스’
- 어린이·청소년 음악교육으로
- 끝없는 관객층을 키워내고
- 삶이 음악과 하나가 되도록
- 백년 동안 공연환경을 조성했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여름 40여 일간 80여 나라에서 온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천국이 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덕분이다. 지난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측의 표본 조사를 보면 전체 관객 10명 중 8명이 이 페스티벌을 6회 이상 정기적으로 찾았다. 20번 이상 찾은 사람은 4.7명이었다. 이들은 일반 관광객의 평균 체류일 1.7일보다 훨씬 긴 6일 이상 잘츠부르크에 머물며 5회 이상 공연을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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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어린이 오페라 캠프 ‘아이다’에 참여한 어린이들. ⓒ Salzburger
Festspiele/Silvia Lelli |
지난 7월 26일 찾은 잘츠부르크는 알프스산맥을 따라 도시를 가로지르는 잘자흐 강이 감싸 안은 절경이 빛났다. 바로크 양식 성당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세계 대전 때도 폭격을 받지 않아 중세 건축물이 잘 보존된 덕분이다. 시내의 상가조차 ‘1300년 건립’ 등 오랜 건립 연도가 새겨져 있다.
유네스코가 잘츠부르크를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 전부터 잘츠부르크는 ‘음악 도시’로 유명했다. 명성대로 모차르트 생가, 기념품, 시설이 즐비했다. 처음부터 음악 도시였던 건 아니다. 심지어 모차르트는 생전 잘츠부르크를 못마땅해했다. 모차르트는 실로 대단한 오페라 작품을 쏟아냈지만, 당시 잘츠부르크에는 오페라를 올릴 공간이 모자랐고 모차르트에게 걸맞게 처우하는 이가 드물었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서 활동을 길게 하지 않았는데도 잘츠부르크가 음악 도시로 명성을 얻은 건 모차르트 사후 음악인들의 공헌이 컸다. 1917년 잘츠부르크 축제 기구 설립부터 거장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의 기여가 바탕이 됐다.
■어린이와 청년을 위한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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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탄생을 알린 잘츠부르크대성당 앞 광장.
ⓒTourismus Salzburg
GmbH/Gunter
Breitegger |
1920년 첫 공연 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종합 예술의 인큐베이터’를 자처하고 있다. 오페라와 예술을 바탕으로 세계 예술의 트랜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00년을 내다보는 전통, 꾸준히 찾아주는 많은 관객이 있음에도 여전히 관객에 목말라했다. 어린이, 청소년, 20대 관객 확보를 중시했다. 잘츠부르크 다음으로 방문한 이탈리아 베로나의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 길리아노 폴로 총감독 또한 “오페라 관객의 유일한 동력은 교육이다. 모든 것이 교육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일주일간 오페라에 출연하는 ‘어린이 오페라 캠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 ‘모차르트와 함께하는 소개 워크숍’은 물론 청년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젊은 성악가 프로젝트’ ‘젊은 지휘자 어워드’, 과학, 예술 분야 청년을 모아 탐구하는 ‘유스! 예술! 과학!’ 등을 포함한다.
■“극장은 우리 삶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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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호프슈탈가세 거리. ⓒSalzburger
Festspiele /Kolarik |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대학과 연계해 예술인 아카데미를 내놓는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민정기 교수 겸 지휘자는 “페스티벌과 연계해 여름 아카데미가 열리고 대가들이 수업하는데 우리 대학생뿐 아니라 러시아, 미국 등지의 음대 학생이 모인다”고 말했다.
독일의 뮌헨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도 특정 계층과 세대에 국한하지 않았다.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실시간으로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슈타츠오퍼 TV’를 구축하고, 티켓 가격을 최소 11유로(약 1만4000원)부터 최대 400유로(약 54만 원)까지 세분화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쿠션 콘서트’는 편안한 공간에서 무대 위 예술가와 교감할 수 있다.
공연 전에 마련하는 설명회에서는 제작자와 관객 간 질문이 자유롭게 오갔다. ‘오페라는 삶의 일부이고, 극장은 항상 옆에 숨 쉬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심었다. 오페라 주 관객의 중·장년층이지만, 돈이 없거나 나이가 어려서, 오페라가 낯설어서 오페라를 보지 못한다는 말은 하기 힘들었다.
부산시는 오페라 축제인 ‘오페라 위크’를 마련해 오페라단 3곳에 3000만~1억 원 제작비를 지원하고, 찾아가는 거리 음악회를 여는 등 저변 확대를 꾀하고 있지만 체감도는 낮다. 부산에 2015년 K.S.H ART(고성현 아트)를 설립하고 비전공자와 전공자를 위한 오페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홍지혜 음악감독은 “오페라 하면 여전히 ‘어렵다’고 느끼는 분위기다. 선진 유럽 시스템을 당장 적용하기보다 관련 전공 학생과 애호가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드는 것이 오페라하우스가 첫발을 내딛는 데 좋을 것 같다. 중요한 건 시민이 재미있다고 느껴야 관객이 된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잘츠부르크=최민정 기자 mj@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