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진다. 그런데 엄마를 닮은 나를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엄마로부터 분리되어 살 수 없음을 느낀다. 영화 ‘상애상친’의 딸과 엄마들도 그렇다. 딸은 엄마를 모르고, 엄마는 딸을 모르고, 할머니는 그녀들을 모른다. 딸과 엄마들은 서로의 세계를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아무것도 모른다.
 |
| 영화 ‘상애상친’의 한 장면. BIFF 제공 |
‘상애상친’의 난나는 남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남편은 두 번째 부인이자 후이잉의 엄마와 평생을 살았고, 죽고 나서야 난나의 곁으로 돌아왔다. 난나는 남편을 원망하는 대신 매일 남편의 산소를 살피고 돌본다. 두 번째 부인이었지만 자신의 엄마가 아버지와 사랑했음을 후이잉은 알고 있다. 그녀는 죽어서도 엄마와 아버지가 함께 있기를 바라며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 난나는 묘를 이장하는 데 반대한다. 두 사람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 후이잉의 딸, 웨이웨이는 두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새로운 세계는 항상 탄생한다. 물론 기존의 세계도 사라지지 않는다. ‘상애상친’의 그녀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잘 모른다. 세계를 안다는 것은 균열, 갈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살아온 인생이 틀렸음을 확인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웃 공동체가 파괴되지 않은 마을에 사는 난나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공동체와 함께 해결한다. 마을은 전통적 세계관을 중시하며, 서로를 의지하며 유지되어 왔다. 그런데 궁금하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린 것은 난나의 의지였을까? 열녀문이 세워져 있는 마을을 떠나는 일은 가능할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을 것이다.
후이잉의 세계는 다르다. 후이잉은 남편이 위층에 사는 여자와 바람이 날까 봐 걱정하고, 교사인 그녀는 학생에 대한 애정보다는 퇴직 이후 인생이 중요하다. 그녀가 관심 있는 일은 오로지 자신과 가족의 일이다. 후이잉은 새로운 질서에 잘 부합해 살고 있지만, 갈등이 생겼을 때는 다시 전통적 세계관으로 편입되고자 애쓴다. 엄마가 아버지의 두 번째 여자라는 사실을 지우고 싶었던 것일까? 후이잉은 부모의 결혼을 증명하기 위한 서류를 찾는 데 매진한다. 웨이웨이는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엄마를, 딸의 인생을 지나치게 간섭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또한 난나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자기 일을 위해 할머니를 이용하는 적당히 속물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녀들은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후이잉은 법으로 일을 처리하려 하고, 웨이웨이는 후이잉과 말이 통하지 않아 집을 나온다. 난나는 침묵을 택한다. 대화를 포기한 자리에는 분노와 오해가, 갈등이 폭발한다. 참고 인내하고 희생하던 그녀들이 울고, 화내고, 웃는다. 말을 시작한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폐막작 ‘상애상친’은 과거가 결별해야 할 먼 이야기가 아님을, 미래가 미지의 영역이 아님을 세 여성의 일상을 통해 전달한다.
10일 동안의 짧지 않은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이 영화는, 마치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것처럼 가슴 따뜻한,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아련한 기억을 담고 있다.
김필남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