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이다. 한가한 주말 오후 TV 앞에서 소파에 기댄 채 가만히 코를 고시며 아빠가 졸고 계셨다. 거실 탁자 위에는 촌스러운 검은색 뿔테 안경이 펼쳐진 신문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호기심에 코 위에 걸쳐보니 돋보기안경이다. 문득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언제나 푸를 것만 같던 아빠도 이제 조금씩 시드나보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꾸벅꾸벅 졸고 계시는 아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귀밑흰머리와 눈가의 흐릿한 주름살,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돋보기 밖의 세상이 뿌옇고 어지러웠다. 안경을 벗어들고 안경알을 한참 바라보다가 있는 힘껏 입김불어 몇 번이고 알을 닦았다. 아빠가 보는 세상이 언제나 밝아지게,
“넌 아빠의 친구이자, 스승이다.”
아빠가 가끔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나이 어린 내가 어찌 아빠와 친구가 될 수 있으며, 더구나 아빠의 스승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그저 흘러가는 농담 정도로 생각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시청하는 중에 언제나 입버릇처럼 하시던 그 말씀을 또 하시기에 그 뜻이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아빠는 조그만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해주셨다.
“술은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만나 마실 것이오, 시도 이해하는 사람을 향하여 읊을 것이다.”
한학을 공부하시며 꽤 오랜 세월 한시를 쓰고 계시는 아빠답게 답변도 왠지 그럴 싸하게 하셨다.
아빠는 가끔 한시를 지으시면 나에게 그 뜻을 설명해주시며 보여주시곤 하신다. 또한 옛 시를 읽어주시며 감상하는 법을 알려주시기도 하시고, 가족여행을 갈 때면 좋아하시는 시집 한권을 챙겨 가셔서 분위기에 어울리는 시를 읊어 주시곤 하신다.
“이 세상에서 아빠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니?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나를 가장 잘 알아주니 네가 친구지. 또한 힘들거나 곤란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보았을 때 아무 망설임 없이 도움을 주는 네 모습을 보면서 아빠는 무척 부끄러웠고,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단다. 그러니 네가 아빠의 스승이지.”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사실 아빠는 한학을 공부 하셔서 옛 성현의 가르침을 통해 삶에 귀감이 될 말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 편이다. 그러나 어린 나에게 ‘인’이니‘예’니 하는 단어는 그저 고리타분한 단어로만 느껴질 뿐 마음에 잘 와 닿지를 않는다. 더구나 지루하게 일장연설을 하실 때도 많고, 썰렁한 농담을 던지고는 혼자 큰소리로 웃기도 하시고, 또 내 기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최악의 상황만 골라서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신다.
아빠 말씀처럼 친구같이 지내겠다고 하시지만 결코 긴장을 풀 수 없다. 언제 다시 친구 같은 존재가 사소한 일로 꾸중을 하시며 내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자랄수록 아빠를 점점 이해하게 되는 것은 서툴고 투박한 방식이었지만 진심으로 나를 사랑한 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아버지와 대화는 늘 유쾌하고 즐겁다.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을 언제가 들어 본적이 있다. 아빠의 DNA를 물려받아 이미 생김새는 무척 닮았고 좋아하는 음식, 영화, 음악, 심지어는 좋아하는 아이돌그룹도 비슷하다. 그리고 아빠처럼 시와 글쓰기도 좋아한다. 비 오는 날 파전에 막걸리 좋아하는 것도 아빠를 닮았다. 물론 아직은 아빠 옆에서 잔만 채워드리다 한 수저 몰래 마셔보는 게 전부지만.
아빠를 보면 난 항상 가시고기가 생각난다. 둥지를 만들고 알을 지켜내며 새끼들을 모두 내보내기까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죽어서까지 새끼들의 먹이로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가시고기처럼 지금 아빠는 모든 것을 내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