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그린 눈 내리는 거리는 내가 그린 그림 속에 있어요. 그녀는 내 그림 속에 있지요. 그녀는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려요. 그녀가 그린 그림엔 피뢰침이 있고 피뢰침 꼭대기엔 팔 없는 여자가 다리 없는 남자와 함께 거꾸로 걸려 있어요.’(‘그녀가 그린 그림들’ 중)
‘환상 시인’으로 알려진 김참(사진)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그녀는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려요’(문학동네)를 펴냈다. 김 시인은 1995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미로 여행’ ‘그림자들’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등이 있다.
첫 시집부터 일관된 그의 꿈같은 환상세계는 이번 시집에서도 변함이 없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뚜렷이 구별되지 않음을, 구별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경계가 모호한 세계에서 이미지는 무한하게 재생되거나 증식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열대의 밤을 다양하고 중층적인 관점에서 그 특성을 이미지화해 보여주는 시 ‘열대의 밤’이 그것이다.
‘검은 항아리 머리에 이고 검은 얼굴 여인들 걸어가는 열대의 밤 노란 새들 나무에 앉아 커다랗게 지저귀고 어두운 하늘에 뚱뚱한 구름 흘러가는 밤 하얀 도마뱀들 벽 타고 내려와 바구니의 망고를 갉아먹는 밤 …’(‘열대의 밤’ 중)
김 시인의 시는 일상적 현실의 논리를 벗어난 환상적 상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시인의 심리적 의식의 결을 드러내는 이미지의 선을 따라 감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린, 뿔, 거미, 구름 등이 현실을 초월한 존재로 그려진 작품도 시선을 모은다.
‘밤이면 네 머리엔 뿔이 돋는다. 화분에 핀 꽃은 시들고 하늘은 시커먼 구름으로 뒤덮인다. 밤이면 네 손가락은 점점 짧아지고 네 혀는 달팽이처럼 둥글게 말린다. … 밤이면 내 머리에 긴 뿔이 돋아난다. 밤이면 나는 불면에 시달린다.’(‘밤이면’ 중)
김경복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에서 인간은 끝없이 발생하는 욕망의 거품에 휩싸여 살고 있지만, 그 덧없는 이미지 속에서 하나의 지향점을 찾아 나서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모든 유동하는 이미지 속에 하나의 일관된 꿈, ‘뿔을 단 거인’으로 솟아 고착되고 경직된 당대의 현실을 깨뜨리고 자연의 생명력을 통해 왕성한 삶으로 나아가기를 꿈꾸는 것”이라고 평했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