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다큐 찍어 보고서 <1> 프롤로그 - ‘여섯 번’은 하지 말라고 했다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무모했다. 회사에 제안은 했지만 막상 3개월만에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 정말로 가능한지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었다. 일단 큰소리는 크게 쳤다.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곧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회사에서 최종 결정한 뒤엔 영화 연출 경험이 있는 지인들 거의 모두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하면 이 프로젝트가 가능하겠느냐고, 판은 제가 벌여놓고는 남일처럼 물었다. 질문은 하나였지만 답변은 간단하지 않았다. 수년을 들여 다큐멘터리 한 편을 작업한다는 김 감독은 즉각 손사래를 쳤다. 김 감독은 자료조사에만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들인다고 했다. 물릴 수 없는 프로젝트라는 말을 그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제 말이요, 회사가 무리한 프로젝트를 그냥 냅다 맡기더라고요. 허허, 그렇게 거짓말을 둘러대 전화를 끊고 다음 날 신경성 대장염에 걸렸다. 지역에서 다큐멘터리를 수 편 만들어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 감독이었다. 주변에 먼저 조언을 구한 뒤에 일을 추진했어야 했나. 좌변기에 앉아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된 건지 복기했지만 판세를 돌릴 수는 없었다. 일단 원하는 답변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전화를 돌렸다. 그러다 오래 전 직장 상사로 모셨던 어느 PD 한 분께 발신인의 발신 의도를 간파당했다. “이미 취재를 마친 기획기사를 원작 삼아 만드는 영화라 하니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다소간 유보적이면서도 발신인의 심리 상태를 격려하는 의미를 담은 조언이었다. 그제서야 발신인은 좌변기에서 일어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수신인이 해 준 조언을 지나치게 제 입맛대로 해석해버렸다는 점이었다. “된다 하던데요.” 부장에게 그렇게 보고하고선 스태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졸업 에세이> 제작을 시작했다.

   
지난 5월 2일 제작회의 당시. 감독(왼쪽) 오른쪽에 앉은 김명재 촬영감독이 반쯤 졸고 있다. 이때 알아봤어야 했다. 사진 = 바림 손영훈
지나 생각해보니 그때까지도 마음은 반반이었다. 해내겠다는 의지로 누구보다 뜨거워서는 부서 사람 여럿을 괴롭히다가도, 화장실만 갔다 오면 내가 아닌 다른 이유로 프로젝트가 무산되기를 슬쩍 바랐다. 그러나 어려운 시국에 지역 기업들이 뜻을 모아주어 제작비까지 모이자 발신인은 강한 전방 압박에 시달렸다. 제작비가 적지 않았다. 발신인은 뒤늦은 출구 전략을 모색했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하루 종일 공을 돌려도 책임 소재는 감독에게 있었다. 어떻게든 성과를 내어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했다. 밤잠이 줄고, 가위눌린 채 잠에서 깨어나는 날이 많았다. 엄청 효자 노릇하느라고 살이 쪽쪽 빠지는 막내를 부모님께서 내내 근심하셨다.

전략이 필요했다. 짧은 기간 안에 설명이 충분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봤다. 내레이션을 쓰면 말을 구성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보다 편리하게 이야기를 이끌 수 있었다. 하지만 내레이션을 쓰면 영화보다는 방송 다큐멘터리 성격이 짙을 것 같았고, 내레이터를 맡아 줄 1985년생 부산 출신 영화배우를 급하게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인물 인터뷰를 영화 전체에 깔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터뷰이들을 충분히 만나야 했다. 원작으로 삼은 기획기사 ‘청년 졸업 에세이 - 1985년생 김지훈·김지혜’를 출력해서는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들고 다녔다. 그 다음엔 어떤 인터뷰가 필요한지, 나열한 인터뷰 위에 어떤 내용을 덧씌울지를 결정하고 김 PD에게 인터뷰이 섭외를 주문했다. 김 PD가 섭외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기사가 제시한 담론 중 어떤 것을 먼저 보여줄지를 골라냈다. 크게 봤을 때 하나는 지역 담론, 다른 하나는 세대 담론이었다. 둘 다 영화를 관통할 핵심 키워드지만 지역 담론보다는 세대 담론에 관한 내용을 뒤쪽으로 배치하는 편이 보편적인 국내 관객들 정서를 움직이기에 좋겠다고 판단했다. 한 달 내도록 신문사 사진 데이터베이스까지 활용해 데이터 그래픽 틀을 잡고는 다시 애니메이션 구상에 매달렸다. 그렇게 세월을 다 보냈다. 첫 촬영은 스태프들이 있는 대로 조바심을 내던 5월 말이었다. 부산 영도구, 그중에서도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청년을 가장 많이 잃었다는 봉래2동에서부터 영화를 시작했다.

   
대학 1학년 때 어느 교수님 한 분이 “다섯 편까지는 찍어 봐야 자기 재능을 알 수 있다” 하셨으므로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감독(왼쪽) 너머 근로시간 준수를 요구하며 삭발한 김찬우 PD. 김명재 촬영감독의 표정도 썩 좋지 않다. 사진 = 바림 손영훈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동안 단편영화를 모두 다섯 편 찍었지만 잘해야 ‘A+’를 받았을 뿐 영화제 등에서 뚜렷한 성과를 낸 작품은 없었다. 아버지께서 아버지를 연기해주셨던 첫 작품부터, 동반 입대했던 친구가 전역하기를 기다려 찍기 시작한 이른바 ‘행복 3부작’. 그 중 친구가 단독 연출한 한 편을 뺀 두 편과 단편 다큐멘터리 한 편, 그리고 2017년 대학 동기 집을 통째로 빌려 배우와 먹고 자며 촬영한 작품까지. 매 작품 열과 성을 다했으나 다섯 편 모두 술자리에서 추억을 소환할 때만 특별히 언급됐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대학 1학년 때 어느 교수님 한 분이 “다섯 편까지는 찍어 봐야 자기 재능을 알 수 있다” 하셨으므로. 다섯 편을 특별히 나무라는 사람도 없었다며 스스로 위안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다섯 편을 찍고도 거둔 성과가 없으면 그만하라 하셨으므로. 물론 <청년 졸업 에세이>가 여섯 번째 작품이라는 점을 회사에 따로 말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여섯 번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었다.신동욱 기자 woogy0213@kookje.co.kr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불꽃축제 숙박비 2배가 기본…여전한 ‘바가지’(종합)
  2. 2[근교산&그너머] <1485> 경북 영주 ‘무섬길’
  3. 3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4. 4“북항돔 공모사업 목숨 걸고…” 전재수 시장 완수 의지 밝혀(종합)
  5. 5태종대 명물 다누비 사라지나…市, 대체 운송수단 검토
  6. 6신천지 의혹 역풍 휩싸인 김민석…계파갈등 격화(종합)
  7. 7尹 선거법 2심도 ‘당선 무효형’…형 확정 땐 국힘 397억원 반환(종합)
  8. 8전재수 시정 첫 행감…국힘, 기관장 인선 등 파상공세 예고
  9. 9조선의 궁인데…이름도 옷도 서양식 K-사극, 판타지 세계관 확장 통할까
  10. 10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5일
  1. 1신천지 의혹 역풍 휩싸인 김민석…계파갈등 격화(종합)
  2. 2전재수 시정 첫 행감…국힘, 기관장 인선 등 파상공세 예고
  3. 3“왜 사회적 지탄 대상 되려하나” 김대식, 지광에 회생 동의 촉구
  4. 4부울경 全 국회의원 회생촉구 서명…노동청, 지광 출석 요구
  5. 5與 ‘조작기소특검법’ 5일 처리 추진…국힘 “모든 안건 필버”(종합)
  6. 6국힘 “미래기금, 총선용 사금고” 민주 “세수 변동 대비 안전장치”
  7. 7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8. 8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9. 91호기 명단 유출 파일 'MOFA(외교부) 형식, 유출 경위 파악에 주력
  10. 10李 “집값 놀라울 정도로 하락…통계 제대로 알려야”
  1. 1비스텝 원장 6개월 공석 될 판…내년 사업 어쩌나
  2. 2철새도래지서 즐기는 하이엔드 커피
  3. 310월 세계 선박 발주량 반토막…韓 점유율은 22% ‘존재감’
  4. 4쿠팡 Inc 올해 누적적자 2조 육박 ‘역대 최대’(종합)
  5. 5美 의회 장악 민주, AI 규제하나…韓 반도체 업계 촉각
  6. 630대그룹 美 계열사 10년새 232% 급증
  7. 7벡스코 ‘26분 정전’ 원인은 합선…노후 전력설비 개선 추진
  8. 8“극지연구 데이터 사업화, 기업 신성장 동력으로”
  9. 9대양전기공업 배당성향 30%로…주주가치 제고
  10. 10주가지수- 2026년 11월 4일
  1. 1부산불꽃축제 숙박비 2배가 기본…여전한 ‘바가지’(종합)
  2. 2“북항돔 공모사업 목숨 걸고…” 전재수 시장 완수 의지 밝혀(종합)
  3. 3태종대 명물 다누비 사라지나…市, 대체 운송수단 검토
  4. 4尹 선거법 2심도 ‘당선 무효형’…형 확정 땐 국힘 397억원 반환(종합)
  5. 5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5일
  6. 6“양산 충렬사·현충시설 관리인, 10년 연속 특정인 선발 특혜”
  7. 7폭염에 냉방 꺼 ‘갑질 논란’ 기업, 불법 하도급 의혹 추가
  8. 8전남광주 순천대·경북 경국대 ‘지역의대’ 신설
  9. 9“제조업 AI 전환 적극적 추진…‘부산의 심장’ 활력 되찾겠다”
  10. 10기장 리조트 참사 시공사 대표 중형 구형
  1. 1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2. 2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3. 3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4. 4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5. 5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6. 6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7. 7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8. 8MLB 애틀랜타 김하성, 퀄리파잉 오퍼 못 받아
  9. 9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10. 10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장 마리 해슬리-Gymnopedies(짐노페디)
배미정-나무에 기대어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극락암 벚나무 /홍종원
곰 두 마리 /황인숙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250만 넘은 ‘치이카와’ 4주째 1위…브래드 피트 ‘하트 오브 비스트’ 2위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5일 (음 9월 26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4일 (음 9월 25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깊어가는 가을에 밤하늘 별을 읊은 이덕무의 시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가 소쇄원 단풍을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