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여행가, 국제긴급구호 요원으로 활동하며 오랫동안 젊은이들의 멘토로 손꼽힌 한비야와 네덜란드인인 그의 남편 안토니우스(이하 안톤)이 쓴 결혼생활 에세이다. 벌써 결혼 3년차를 맞았는데도 한비야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홀로 씩씩하게 오지를 누비던 모습이 강렬하게 남아서인지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비혼 여성’의 아이콘으로 남을 것만 같았다.
한비야와 안톤은 2002년 아프가니스탄 북부 헤라트의 한 긴급구호 현장에서 동료로 만났다. 두 사람은 멘토, 친구, 연인 관계를 거쳐 만난지 15년 만인 2017년 드디어 결혼했다. 60대에 결혼한 이들은 늦은 결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30대에 만나 60년 잘 사는 것도 좋지만, 60대에 만나 30년 사이 좋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남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역시 남다르다. 일단 ‘336 타임’. 1년에 3개월은 한국, 3개월은 네덜란드에서 함께 지내고, 나머지 6개월은 각자 따로 지내는 자발적인 장거리 부부다. 안톤은 은퇴한 뒤 네덜란드에 정착했고, 한비야는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강연하는 등 여전히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더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함께 정한 규칙을 엄격하게 지킨다. 수입이 비슷하고 모아놓은 자산도 비슷한 두 사람은 비용 부담도, 계획도, 집안일도 ‘반반씩’ 한다. 한 공간에 있어도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오전 10시 전에는 부정적인 대화를 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비야식을, 네덜란드에선 안톤식을 따른다. 이 모두가 결혼 초기 서로 다른 생활방식으로 인한 작고도 치열한 부부싸움을 겪은 뒤 마련한 삶의 지혜다.
결혼은 때로 평생 기대고 의지할 상대를 찾는 일로 여겨진다. 한비야는 이런 관계를 ‘외부 밧줄’이라고 표현했다. “결혼하면 남편이라는 든든한 밧줄이 생기는 줄 알았는데 정반대다. 내게 안톤은 외부 밧줄이 아니라 내 뿌리를 더욱 굵고 튼튼하게 만드는 성장촉진제였다. 결혼하니 오히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더욱 잘 보인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 결혼에 대한 철학을 잘 압축한 말이다.
‘계획’이라고 하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두 사람은 벌써 ‘2030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70대를 바라보는 부부는 장거리 비행이 어려워질 10년 후, 한국에 정착하기로 정했다. 그때를 위해 안톤은 열심히 한국어, 한국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박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