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논란 한가운데 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윌리엄 예이츠의 시를 인용해 서문에서 책을 펴낸 이유를 설명했다. 여당 지지자들 혹은 진보진영에서 ‘극우논객’ ‘변절자’로 비난받는 그는 진보가 ‘몰락했다’고 정의내리며 그 현상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같은 사건을 두고 저자와 견해가 완전히 다르거나 저자의 분석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한때 진보진영의 대표 논객이 어떤 이유로 현 정권과 진보가 몰락했다고 판단하는지 들어보려는 시도 만으로 우리 사회는 한층 성숙해질 수 있다.
진 전 교수는 지난 상반기 우리 사회를 달군 이슈를 소재로 삼아 총 30편의 글을 실었다. 채널A 모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의 검언유착 의혹,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을 둘러싼 논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갈등, 코로나19 사태 속의 집회 제한 조치 등이다. 저자는 인터넷 대안언론에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까지 합세해 진보진영에 유리한 허구의 ‘대안적 사실’을 만들어내 진실을 덮고 ‘매트릭스’ 같은 가상세계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마음의 빚이 있다”는 말로 조전 장관을 감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선 ‘통치 철학’이 부재해 ‘의전 대통령으로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현 여권과 박정희 정권을 동일 선상에 놓은 대목은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민주당 사람들은 자신들이 박정희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저 경도의 차이가 있다고 해야 할까? 유신정권의 긴급조치가 경성이라면, 현 정권의 코로나 긴급조치는 연성 독재라 할 수 있다”.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을 탄핵한 민주국가의 국민이 박정희 정부의 긴급조치 수준 탄압을 눈감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진중권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을 진보 전체의 죽음으로 봤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였는지, 성추행을 성추행으로 인지하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건 “그의 위선은 우리 세대의 위선이고, 그의 어리석음은 우리 세대의 어리석음”이라고 정의했다. 고인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준 민주당의 모습에서 그는 ‘완벽한 파국’을 봤다고 끝을 맺는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