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연소 임원이자 최고령 산모로
- ‘진짜 하이퍼리얼리즘’ 담아 호평
- 산모가 겪는 상황·감정 이해하려
- 지인 경험 바탕으로 연기 녹여내
- 실제 같던 출산장면은 다큐 참고
- “작품 계기로 엄마의 마음 알게돼
- 일·육아 병행 갈등하는 워킹맘에
- 본인 행복 중요하다 말하고싶어”
한국 드라마는 다 비슷비슷하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최근 한국 드라마가 소재나 장르의 다양화를 꾀하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기획의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을 찾고 있다. 그중 지난달 24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산후조리원’은 회사에서는 최연소 임원이지만 병원에서는 최고령 산모인 오현진의 재난 같은 출산과 산후조리원 적응기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공감을 동시에 안겨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결혼 이후 더욱 성숙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 엄지원이 있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오현진 역을 맡아 산모가 겪는 다양한 상황과 감정의 파고를 유연한 연기력으로 소화해낸 엄지원은 “동시대에 살고 있는 평범한 한 여자의 성장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내가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기쁘고, 함께 울고 웃어 주시고, 공감하며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종영 소감을 전했다. 또한 “바로 내 옆에 그리고 내 삶 속에 있는 이야기지만, 그래서 오히려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저거 내 이야기인데?’라며 좋아해 주신 것 같다”고 드라마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실제 산모처럼 보이기 위해 체중을 늘리는 것은 물론 민낯 출연도 마다하지 않은 엄지원에게서 ‘산후조리원’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출산에 관한 ‘하이퍼 리얼리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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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4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초보 엄마가 된 ‘워킹맘’ 현진 역을 맡아 ‘역대급 연기’라는 평가를 받은 엄지원. 아직 임신과 출산의 경험이 없으면서도 임산부의 모습을 리얼하게 연기했으며, 또한 워킹맘의 고충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
전국 평균 4.2%, 최고 5.6%의 시청률로 종영한 ‘산후조리원’은 8부작으로 비교적 짧은 미니시리즈였지만 현진의 출산 장면을 담은 1회부터 ‘찐 출산 격정 누아르’라는 별명을 얻으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현진이 세레니티 조리원에 입성하면서 벌어지는 파란만장한 산후조리 현장은 실제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디테일과 리얼함이 살아있었다. 지금까지 그 어느 드라마에서도 집중적으로 다룬 적 없었던 출산과 산후조리에 대해 모든 것을 솔직하고 재치 있게 그려 시청자들에게 ‘현실 고증이 미친 드라마’ ‘이것이 진짜 하이퍼 리얼리즘이다’는 평을 받았다. 대본을 집필한 김지수 작가의 실제 경험담이 녹아 있어서 가능했다. 엄지원은 “촬영하면서 실제 출산 경험이 있으신 분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진짜 산모 같았다’ ‘출산했을 때가 생각난다’ ‘출산 때 내가 느낀 감정을 똑같이 표현해 줘서 고맙다’ 등의 반응을 보내줘서 좋았다”며 많은 공감을 해준 시청자들에게 감사했다.
많은 사람이 2014년 결혼한 엄지원이 엄마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출산 경험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산모처럼 보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대본에 ‘현진이 불편해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인다’는 지문이 있었다. 지문 그대로 불편한 듯 연기할 수 있었지만, 경험 있는 지인들에게 어디가 불편하고 아픈 건지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가장 힘들었던 출산 장면은 다큐멘터리를 참고했다”는 엄지원은 산모가 되기 위해 4㎏을 찌웠다.
극중 현진은 출산을 통해 한순간에 최연소 상무에서 최고령 산모로 사회적 위치가 변한다. 항상 당당하고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이었지만 일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로 바뀌면서 인간으로서 성장하게 된다. 또한 육아 휴직과 복직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현실의 벽도 경험한다. 드라마에서는 현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주지 않는 열린 결말로 마친다. 이에 대해 엄지원은 “내가 만약 엄마가 된다면 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들에게 극중 장혜진 선배님(산후조리원 원장 역)의 대사인 ‘좋은 엄마가 완벽한 게 아니다. 이기적인 게 아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며 “내가 행복해야 행복한 에너지를 줄 수 있듯 본인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산후조리원’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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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에서는 최연소 임원, 병원에서는 최고령 산모 현진(엄지원 분)이 재난 같은 출산과 산후조리원 적응기를 거치며 조리원 동기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그린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tvN 제공 |
‘산후조리원’에는 최고령 산모 엄지원을 중심으로 전업주부이자 베테랑 산모 박하선(조은정 역), 주관이 뚜렷한 어린 산모 최리(이루다 역), 조리원 소식을 모두 아는 산모계의 TMI 마스터 임화영(박윤지 역)을 비롯해 엄지원의 남편 역 윤박과 산후조리원 원장 장혜진 등이 찰진 호흡을 보여준다. 엄지원은 이들에 대해 “각자 다른 매력과 장점이 있었다. 장혜진 선배님은 소년 같은 털털함과 개구쟁이 같은 면이 있고, 박하선 씨는 육아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배우들에게 ‘잘한다’ ‘예쁘다’ 등 기분 좋은 칭찬을 잘한다. 최리 씨는 너무 사랑스럽고 순수하고 재능이 있는 친구다. 임화영 씨는 내공이 있는 좋은 배우고, 좋은 사람이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어 “늘 촬영장에 가면 여자친구들끼리 수다 떠는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촬영하기 전 출산과 육아 경험이 있는 배우들과 그렇지 않은 배우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은 지금의 나의 이야기, 내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하자는 결론을 내고 촬영에 임했다. 대화를 통해 방향을 찾아가고 고민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고 멋진 연기 앙상블의 이유를 밝혔다.
엄지원은 딱풀이 역의 실제 아기와 촬영을 했다. “딱풀이의 표정 연기와 리액션은 상을 받아도 될 정도였다. 실제 조리원에 있는 아이들은 목도 못 가누는 진짜 신생아다. 그래서 딱풀이가 그런 아기처럼 보이게 하려고 촬영팀이 고생을 많이 했다. 딱풀이가 촬영 중반부턴 옹알이를 하기 시작했는데, 드라마 설정에 맞는 옹알이를 때마침 해서 현장을 재미있게 만들어줬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주체적 캐릭터를 연기해온 20년 차 배우 엄지원
‘산후조리원’으로 출산과 산후조리의 경험을 가진 엄지원이 현실에서 엄마가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녀는 “내가 엄마가 된다면 처음이지만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고, 경험했던 사람처럼 느껴질 것 같다. 실제로 경험해 보진 못했지만 육체적인 고통을 제외한 감정적인 면에서 두 번째 출산을 하는 것처럼 덜 낯설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산후조리원’의 연기를 실제처럼 했다는 뜻일 터다.
그간 드라마와 영화에서 검사, 기자 등 전문직이나 주체성이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그래서 여성 팬이 많은 배우이기도 하다. ‘산후조리원’에서는 이전과 결이 조금 다르지만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연기했다. 그녀는 “작품을 선택할 땐 내가 하고 싶은가 하고 싶지 않은가가 제일 중요하다. 여성 캐릭터가 극을 끌어나가는 이야기들이 생긴 게 정말 몇 년 되지 않았다. 그 안에서 조금은 다른 것, 주체적인 것을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늘 새롭고 재미있는 장르에 대한 갈증이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방향이 맞는 작품을 만나면 하려고 한다”고 작품과 캐릭터 선택의 철학을 밝혔다.
올해 연기 생활 20년을 맞은 엄지원. 이제는 자신의 연기에 만족할 법도 하지만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첫째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잘했지?’ ‘이번에 진짜 잘했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아본 적이 없다. 늘 최선을 다하지만 만족할 만한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온 게 아닌가 싶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이런 욕심이 좋은 연기자로 롱런하는 비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