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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젊은이의 양지’ 신수원 감독

헬조선 만들기에 가담한 죄 … 기성세대가 청춘들에게 고하는 반성

  • 이원 기자 latehoep@kookje.co.kr
  •  |   입력 : 2020-12-22 19:50:50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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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구의역 정비직원 사망
- 이번 영화 시나리오 집필 시발점
- 콜센터 10대 실습생 죽음 그려

- 성인기저귀 차는 근무환경 충격
- 경쟁사회 만든 기득권층 죄책감
- 젊은세대 현실 분노·절망 담아

- 피렌체한국영화제 수상 등 호평
- IPTV·디지털극장서 관람 가능

올해에는 코로나19로 개봉한 영화들이 관객과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그중 가장 크게 아쉬움을 남긴 영화라면 지난 10월 말에 개봉했으나 흥행성적은 기대에 못 미친 신수원 감독의 ‘젊은이의 양지’를 꼽겠다.

김호정 윤찬영 정하담 주연의 ‘젊은이의 양지’는 카드 연체금을 받으러 갔다가 사라진 후 변사체로 발견된 19세의 콜센터 실습생 준과 콜센터 센터장 세연을 통해 경쟁 시대에 사는 각 세대의 모습을 반추하는 영화다. IPTV와 디지털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영화 ‘순환선’ ‘명왕성’ ‘마돈나’ ‘유리정원(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등을 연출하며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온 신 감독은 ‘젊은이의 양지’에 관해 “무한한 경쟁과 돈에 몰린 세대에게 보내는 따뜻한 사과와 위로”라고 말했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젊은이의 양지’는 이탈리아 피렌체한국영화제 관객상, 부산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체코 프라하국제영화제, 홍콩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마음이 필요한 요즘, 너무 현실적이어서 아프지만 그 안에 따뜻한 위로가 느껴지는 ‘젊은이의 양지’에 관해 신 감독과 얘기를 나눴다.

■우리 각 세대의 자화상

   
영화 ‘순환선’ ‘명왕성’ ‘마돈나’ ‘유리정원’ 등을 연출하며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온 신수원 감독. 그는 새 영화 ’젊은이의 양지‘에 대해 “무한한 경쟁과 돈에 몰린 세대에게 보내는 따뜻한 사과와 위로”라고 말했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신 감독은 ‘젊은이의 양지’를 연출하면서 ‘좋은 어른이 되지 못해도 생각하는 어른이 되자’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사고나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본부의 김용균 씨 사망사고, 그리고 최근 벌어진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코로나19로 알려진 콜센터의 열악한 근로조건 등은 너무 마음이 아픈 현실이었다. ‘젊은이의 양지’의 시발점도 바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였다. “단편영화 ‘순환선’을 촬영할 때 구의역 촬영도 했었다. 19세의 어린 친구가 지하철에 치여 죽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힘들었다. 가방 속에 컵라면과 공구 스패너가 같이 있는 사진이 너무 아팠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을 했던 것이다. 그 잔상이 잊히지 않았다.”

자신의 영화 ‘명왕성’에서도 19세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뤄봤지만, 실제 사건을 영화로 가져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19세 실습생들의 죽음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던 중 콜센터 여직원 자살 사건에 대한 것도 있어서 이를 연관시켜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주인공을 젊은 세대로 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제 나이와 가까운 기성세대 중에 평범하면서도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인물을 구상했다.”

그래서 기성세대 세연(김호정)을 중심으로 젊은 세대 준(윤찬영)과 취준생인 세연의 딸 미래(정하담)가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 홀로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어떻게든 직장에서 버텨야 하는 50대와 자신의 꿈보다 취직을 위해 성인 기저귀를 차고 신용카드 콜센터 실습생으로 일해야 하는 10대, 전쟁같은 취준 생활을 하는 20대를 대표하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기성세대의 부채 의식

   
올해 놓치면 안 되는 영화 ‘젊은이의 양지’는 카드 연체금을 받으러 갔다가 사라진 후 변사체로 발견된 실습생 준(윤찬영·사진 오른쪽)과 콜센터 계약직 센터장 세연(김호정)을 통해 경쟁 시대에 살고 있는 10대와 20대, 50대의 자화상을 반추하는 영화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중간관리자 세연은 힘들게 일하는 콜센터 실습생들과 소통하는 듯 하지만 그도 파리 목숨의 직장인일 뿐이다. 그는 준이에게 연체금을 직접 가서 받아오라는, 해서는 안 될 지시를 내린다. 대학 시절 야학도 하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세연이지만 현실을 살아야 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 대학 시절 진보적 친구들이 보수적 기성세대로 많이 바뀌고 기득권을 가진 존재가 되어 버렸다. 세연은 아파트 한 채 마련하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인데 자기도 모르게 젊은 세대에게 가해자가 돼 버렸다. 어떤 분들은 이 영화를 ‘세연의 음지’라며 세연이를 왜 괴롭히는지 항의하기도 한다.” 50대 초반인 신 감독에겐 젊은 세대에게 ‘헬조선’이라 불리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부채 의식이 있을 수도 있다. 많은 기성세대가 비슷한 죄책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좋았던 것은 어린 친구들의 고민에 대해서 다가가려고 노력한 점이다. 예를 들어 취준생을 만나면서 그들 안에 절망과 분노가 같이 있는데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1950년대 기성 제도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 영국의 전후세대 젊은 작가들을 지칭하던 ‘앵그리 영맨’이 바로 지금의 취준생들에게 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각 세대를 연기한 배우들

‘젊은이의 양지’는 영화에 담긴 메시지 못지않게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맛도 만만치 않다. 낯설 수 있지만 독립영화계에서는 유명한 김호정 윤찬영 정하담이 그 주인공이다. 먼저 기성세대의 모습을 보여준 세연 역의 김호정은 올해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는 ‘프랑스 여자’에서 주연을 맡아 절정의 연기를 선보였다. 신 감독과는 ‘마돈나’에서 포주 역할로 출연한 인연이 있다. “김호정 배우는 제가 좋아하는 얼굴을 지녔다. ‘마돈나’ 때 포주 역할을 하겠느냐고 제안해서 만났는데 잠깐 나오는 역할인데도 불구하고 열정적이었다. 세연이란 인물을 생각했을 때 카리스마가 있었으면 좋겠기에 그를 떠올렸다.”

‘젊은이의 양지’ 촬영 당시 실제 19세였던 윤찬영은 이동은 감독의 임수정 주연 영화 ‘당신의 부탁’에 출연해 충무로에 눈도장을 찍은 배우다. 특히 어린 나이에도 세밀한 표정 연기가 일품이다. “준이 역은 진짜 19세 배우가 연기했으면 했는데 그 나이 또래 배우가 별로 없더라. 마침 ‘당신의 부탁’을 봤는데 윤찬영이 그 나이더라. 수능 입시 준비를 하면서 촬영했는데,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의 두려움을 간직한 얼굴이 무척 좋았다.” 윤찬영은 준과 다른 삶을 살고 있어서 촬영 현장에서 질문을 많이 했다. “생각이 깊은 점은 준이와 닮았다. 말을 할 때 한 템포씩 띄어서 한다. 촬영 전에 이야기를 많이 했고,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했다. 특히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에서는 몇 번이고 계속 촬영해도 지치질 않더라. 감동받았다.” 철거촌 장면을 촬영할 때 신 감독은 특이한 경험을 했다. “실제 철거촌의 한 집을 세팅해서 촬영했는데, 세팅 다음날 가보니 실제 그 집에서 한 분이 연탄 자살을 해서 막아 놨더라. 그래서 촬영은 제한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는데 묘한 느낌을 받았다.”

‘스틸 플라워’ ‘재꽃’ ‘항거: 유관순 이야기’ 등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독립영화계 스타 정하담은 취준생 미래 역을 맡아 또 한 번 진정성 있는 인물을 연기했다. “‘스틸 플라워’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재꽃’도 좋았다. 특히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 웃음으로 무마하는 정하담의 모습이 좋았는데, 우리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신 감독의 차기작은 ‘기생충’의 이정은이 주연을 맡은 ‘오마주’다. 지난 10월에 촬영을 모두 마친 ‘오마주’는 1960년대 활동했던 여성 감독을 모티브로, 잃어버린 필름의 한 장면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현실적인 소재와 연출로 공감을 불러일으킨 신 감독이기에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진다. 이원 기자 latehoep@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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