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의 아이콘서 한물 간 배우 역할
- 2015년 첫 제안 받았지만 거절
- 우스꽝스러운 役 아내 신애라도 반대
- 4년 뒤 ‘극한직업’ 제작자 재섭외 요청
- 고정된 이미지 탈피 위해 고심끝 출연
- “20대 시절 ‘사랑을 그대품…’ 작품 행운
- 50대 중반 새로운 연기 도전하고파”
유명인의 실명을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한 영화가 간혹 나온다. 이런 경우 인물의 일생을 그리거나 그를 통해 한 시대를 조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새해 첫날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영화 ‘차인표’는 이와는 궤를 달리하는 새롭고 독특한 코미디 작품이다. 실제 차인표가 출연해 대중이 자신에 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코미디 소재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안에는 차인표가 배우로 살아오면서 실제로 느꼈던 부분이 담겨있어 진정성도 담보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극장 개봉 시기를 잡지 못하다가 결국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차인표’는 과거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대스타에 올랐으나 현재는 아줌마 팬만 알아주는 배우 차인표가 어쩌다 여고 체육관 건물에서 샤워를 하다가 매몰되면서 배우로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다. 한 마디로 ‘차인표의, 차인표에 의한, 차인표를 위한 영화’로, 그의 과거와 현재,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종 웃음을 선사한다. 이런 참신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김동규 감독은 “차인표 배우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나리오부터 쓴 상황이라 본인의 동의가 가장 중요했는데, 다행히도 영화 작업을 허락해 주셔서 연출하게 됐다”고 했다. 그렇다면 차인표는 어떤 생각으로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됐을까? “2015년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거절했다”는 차인표에게 영화 ‘차인표’와 배우 차인표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차인표’에 출연한 차인표
아마 대부분의 국민은 ‘차인표’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누구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1994년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색소폰 연주, 손가락 흔들기, 분노의 양치질, 상반신 노출 샤워 등의 명장면을 남기며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이후 드라마에 함께 출연한 신애라와 결혼을 했으며, ‘별은 내 가슴에’ ‘왕초’를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이후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전과 같은 인기를 얻진 못했다. 그는 “처음 영화 ‘차인표’ 제의가 들어온 것은 2015년이었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 일을 계획하고 있던 터라 극 중 차인표가 처한 설정이 저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신애라 씨는 샤워하다가 옷을 안 입은 채로 갇혀 있고, 우스꽝스럽게 구출되는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으냐며 왜 하고 싶은지 생각하라고 하더라”며 처음 ‘차인표’를 거절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나 두 번째 제안이 있었다. “2019년이 됐을 때 일은 하고 싶은데 작품이 들어오지 않았다. 또 ‘차인표’의 내용처럼 드라마 섭외가 들어왔다가 나만 빠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마치 ‘차인표’의 시나리오가 나의 미래를 예견한 것처럼 4년 동안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러던 중 ‘극한직업’을 제작했던 김성환 대표가 다시 섭외를 해왔다. 실명을 제목으로 하는 것이 부담일 수 있겠지만 실험적이고 좋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결국 부담감을 무릅쓰기로 한 차인표는 “이 작품을 하면서 나에게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면 깨고 싶다”는 생각으로 영화 출연을 결정했다.
■차인표, 자신의 이미지에 맞서다
 |
| 과거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대스타에 올랐으나 현재는 아줌마 팬만 알아주는 배우 차인표가 어쩌다 여고 체육관 건물에 매몰되면서 배우로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 ‘차인표’. 넷플릭스 제공 |
지금까지 출연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젠틀함, 강인함, 정의감, 바른 생활, 가정적 이미지를 만든 차인표는 “대중의 기호에 맞게 인내하는 동안 발전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았다. 변화하지 않고 안정된 상태로 있었고, 일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을 깨고 싶었다. 그런데 혼자 깰 방법도 모르겠고, 작품으로 깨야 하는데 작품이 들어오지 않더라”며 배우로서 가졌던 고민을 밝혔다. 그리고 그의 다음 한 마디에 그 고민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다. “‘차인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매몰돼 있던 차인표의 손가락이 잘리는 장면이다.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그 장면을 좋아해 주시면 좋겠다.” 그의 이 한 마디는 지난 26년간 그를 따라다닌 손가락 흔들기에 대한 부담감을 표현한다. 그는 샤워장에서 손가락을 흔들고 머리 감는 장면이 촬영할 때 가장 민망했다고 하지만, 자신의 시그니처 제스처를 희화화한 이 장면은 배우 차인표에게 덮여 있던 하나의 껍질을 과감하게 벗어던지는 순간이었다.
 |
| 영화 ‘차인표’ 스틸컷. |
물론 ‘차인표’의 차인표는 실제 차인표와 100% 똑같은 성격을 지닌 인물이 아니며, 따라서 실제와 상상을 오가는 가운데 혹시 대중이 자신에 대해 오해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김 감독이 오랫동안 저를 멀리서 관찰하면서 차인표는 이런 사람일 것이라고 주관적으로 생각했고, ‘차인표’의 시나리오는 그의 주관과 대중들이 느끼는 이미지를 더해서 객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만든 시나리오에 대해서 이건 아니고 저건 맞는다고 말해서 고치는 것은 김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나리오에 대해서 크게 반대를 하거나 수정하지 않았다”고 ‘차인표’는 ‘영화’임을 강조했다. 시나리오에 대해서 부연하자면 단 한 가지 수정한 것이 있다, 극 중 차인표가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실제로 자신이 그런 오해를 받은 적이 있어서 그 장면만 수정했다.
■차인표에게 배우란?
“혹시 ‘차인표’로 저를 모르는 젊은층까지 예전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고 차인표는 말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차인표’를 본 대중은 스스로를 희화화한 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배우로서 다시 보게 됐기 때문이다. “젊은 분들이 ‘차인표’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고 기쁘다. 이제는 저를 떠났다고 생각한 옛날 팬들도 연락을 많이 주신다. ‘찐팬’이라면서 오래 기다렸다는 말을 들으면 미안한 마음이다. 어떤 남자 팬이 코미디 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보고 나서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것 같다며 고맙다고 하더라. 제가 이 영화에 출연한 의도를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서 좋았다.”
 |
‘차인표’는 차인표에게 배우로서 새로운 길을 걷게 되는 모멘텀이 되고,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앞으로 재미난 작품을 하고 싶고 계속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계속해서 스타로 대중의 관심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소소한 기쁨 있고 일의 보람이 중요해진 나이”라고 배우 인생 2막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그리고 “배우는 제 직업인데 그렇게 잘하지 못하는 직업이다. 연기는 더 열심히 잘하고 싶은, 갈 길이 먼 것”이라는 너무도 솔직한 고백과 함께 “제가 경쟁하고 싶은 것은 어제의 나다. 그래서 연기의 스펙트럼도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진솔한 바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사랑을 그대 품안에’ 때 저는 스물일곱 살이었고, 무명에서 벼락스타가 됐다. 또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행운이었다. 그리고 그 행운을 잘 누린 대가로 그 이미지가 20여 년간 남아서 내 삶의 어떤 부분을 구속했다”고 과거를 돌아보고 “이제 나이가 55세인데, 배우로서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을 뛰는 상황이다. 그동안 감사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찾아온 영화가 ‘차인표’다. 이전의 이미지를 버리고 연기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각인된 차인표의 이미지를 깨고 다시 배우 차인표로 후반전을 시작하는 그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