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곳의, 詩와 그곳 <5> 김해경 시인의 ‘교통부 로터리’





교통부 로터리







　 - 김해경





따개비 같은 생을 지고 봉예가 간다 완도에서 돈 벌러 온 열

다섯 봉예, 문현동 산번지 자취방에서 시린 새벽밥 한 덩이 먹

고 제 삶보다 위태로운 썩은 다리 지나 범일동 화랑염직 거친

담벼락쯤 오면 문득 솟아오른 구름다리를 만난다 잠깐의 구름

위에서 깨어나 보면 매캐한 소음으로 웅크리고 있는 로터리를

만나고 로터리 지나 신암 골짜기 사람들 속에 묻히다 보면 어

느새 삼화고무 깎아지른 벼랑에 서 있다 컨베이어가 쉴새없이

돌고 찌는 열기 속에 런닝구는 자꾸 젖고 본드의 환각에 작업

반장 목소리는 저승사자가 된다 지린내 나는 변소 두어 번, 햇

살이 구릉대는 미싱 위를 지날 때쯤 야근조의 한숨소리 공장을

뒤덮고 다행인지 야근에서 빠진 귀갓길엔 로터리 지나 구름다

리 아래 벌겋게 버무려진 돼지껍데기가 꿈틀대는데



다음 공일날 남진이가 니사이틀 하러 온다는디 ―

보림극장 포갑씨 겁나게 비싸다는디 ―

고것을 한번 볼라몬 야근을 맺번을 더 해야 쓰까 ―



열다섯 봉예 발길질에, 화랑염직 담벼락 아래 패랭이꽃 쓰

디쓰게 웃는다



　 시집 ‘메리네 연탄가게’에서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시의 배경이 되는 ‘교통부 로터리’는 지금도 존재한다.

　부산 범곡 교차로 일대를 일컫던 옛 지명으로 1950년대 임시정부가 부산에 있을 때, 국가의 교통 업무를 관장하던 교통부가 이곳에 자리하여 ‘교통부‘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1970년~80년대 부산은 전 세계 신발산업의 메카였다. 교통부 주변은 국제고무, 삼화고무 등 신발공장과 ‘화랑염직’ 염색공장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노동자들이 있었다.

　값싼 노동력이 경쟁력이던 시절, 시골 출신의 청춘들이 영화 ‘국제시장’처럼 동생들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부산의 노동 시장으로 몰려왔다. ‘매캐한 소음’과 ‘찌는 열기’와 ‘본드의 환각’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 사흘 도리로 철야 근무를 했던, 그들의 대부분은 ‘봉예’와 같은 ‘공순이’였다. 오랜만의 ‘야근에서 빠진 귀갓길’ 포장마차의 ‘돼지 껍데기’조차 눈요기뿐이었을 시급 480원의 시다.

　근처에 있던 삼일극장, 삼성극장 보림극장 등 두 편 영화를 동시상영 하는 삼류극장들, 서민들 그리고 노동에 지친 젊은이들은 ‘고것을 한번’ 보기 위해 한 달에 두 번의 휴일을 사용했을 것이다. 소외되고 낮은 곳의 삶에 유독 햇살처럼 따스한 눈빛을 반짝이는 김해경 시인에 의해 기록된 그 시절. 청춘들의 아픈 사연을 안고 흘러간 ‘교통부 로터리’. 완도에서 상경한 열다섯 소녀 ‘봉예’는 지금쯤 장성한 딸 아들을 둔 중년의 삶을 살고 있겠지….

　겨울비가 봄비처럼 내리는 교통부 로터리에서 새 건물이 일어서고 있는 보림극장 뒷모습을 추억하고 있자니 안창마을에서 내려온 버스가 신암 방향으로 천천히 활처럼 휘어졌다김곳 시인

	옛 교통부로터리인 범곡 교차로에 있던 옛 보림극장. 국제신문DB

	김 곳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