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껍데기는 가라’로 데뷔
- 지난해 ‘영도 도깨비’ 작품까지
- 현실의 문제, 안무로 풀어내며
- 치열하게 연구하는 지역 예술가
- 부모님께 얻은 땅 두 뙈기로
- 3년째 ‘농사 짓는 춤꾼’ 생활
- “욕심 버리고 채움·비움 반복
- 작물 키우며 선한 영향력 배워
- 올해 복합문화공간 오픈이 꿈”
숨바꼭질할 때 꼭꼭 숨어 찾을 길 없는 친구를 살려주기로 마음먹은 술래는 외쳤다. “춤추고 나오면 살려준다.” 춤추며 나가서 ‘깨똥’ 하면 진짜 살려줬다. 왜 ‘춤추고 나가면’ 살려줬을까? 춤만큼 살아있음을 생생히 보여주는 것도 드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부산의 중요한 춤 예술가 박연정(39·이팝댄스컴퍼니 대표)을 인터뷰했다. 춤꾼·안무가로 여전히 맹렬한 박연정은 뜻밖의 근황을 들려줬다. “농사지은 지 올해로 3년째인데, 참 큰 변화를 제게 줍니다. 근데 정말 힘들기는 해요…. 공연하다가도 밭일 가고.”(웃음) 농사짓는 춤꾼? 농사도 춤도 살리는 일이다. 박연정과 춤과 땅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농사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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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정 이팝댄스컴퍼니 대표가 부산 영도구 봉래동 물양장의 ‘영도 도깨비’ 촬영 현장에서 영도 특유의 풍경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부모님께서 30여 년째 하루 딱 60인분만 내는 식당을 하세요. 더 좋은 재료를 쓰려고 손수 작물을 기르다가 부산 기장에 3300㎡(약 1000평) 농장을 가꾸게 되셨죠.” 2016년, 여러 장르를 융합한 화제작 ‘똥’을 안무·총괄할 때부터 짬짬이 그 농장에 나가 일했다. 어머니가 일할 때 쓰던 농사용·휴대형 앉은뱅이 의자를 보고는 ‘똥’에 중요한 소품으로 쓰기도 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저를 부르더니 말씀하셨어요. 딸아, 너는 예술가이고 예술가는 돈이 없으니 밭 두 뙈기를 떼 주겠다. 스스로 농사짓고 우리가 서로 도우면 작물을 팔 수도 있고 여러모로 좋지 않겠느냐.” 그렇게 일주일에 사흘 꼬박꼬박 밭에 나가 농사지은 지 3년째다.
“지난가을 김장을 800포기 해서 땅에 묻었고, 고구마 감자 양파 마늘 쪽파 파가 다 잘 됐어요. 옥수수는 한 번 따면 끝이니까 서운하고, 들깨 참깨는 기름을 짜요. 지난여름엔 큰 비로 고생했죠.” 그는 “춤출 때 쓰는 근육과 농사할 때 쓰는 근육이 달라 진짜 힘들긴 해서 밭일하다 할머니 되는 느낌”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뿌듯하고, 살아있음을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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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정 대표가 부산 기장의 밭에서 ‘앉은뱅이 의자’를 엉덩이에 차고 농사일을 하는 모습.박연정댄스컴퍼니 제공 |
“사람이 착해진다는 말을 실감해요.” 밭일하며 생긴 변화를 묻자 그가 내놓은 대답이다. “자연은 욕심부린다고 안 될 일을 되게 해주지도 않고, 비움과 채움의 순환을 보여주고, 음식 귀한 줄 알게 해주고, 주위를 생각하게 해 주더라고요.”
박연정은 동아대 무용학과 대학원에 다니던 2005년 창작 춤 ‘껍데기는 가라’로 안무가로 데뷔했다. 변기와 전신거울을 무대에 놓고 여성의 거식증을 형상화해 현대인의 강박을 깊숙이 찔렀다. 이 작품을 관람했다. 그 뒤 박연정 작품을 챙겨 보게 됐다. 2011년 안무작 ‘이팝나무’는 쌀의 한살이를 그렸다. 농부의 정성과 고생 속에 쌀이 밥이 되는 과정, 그 소중한 밥이 상에 올랐다가 이내 ‘음식쓰레기’가 되어 버려지는 모습을 담아 밥의 귀함과 소모품처럼 내쳐지는 청년의 현실을 함께 담았다.
당시 ‘이팝나무’에 관해 “근래 본 춤 작품 중 단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했던 무대 장악력”(국제신문 2011년 7월 29일 자 17면 보도)이라고 에둘러 썼는데, 10년 만에 고백하자면 그때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 작품 최고다”였다. 신진 시절 박연정은 섣부르게 추상화하거나 예쁜 척하며 타협하지 않고, 오늘·여기·우리 이야기를 펼치며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
■이팝댄스컴퍼니의 맹렬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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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료 만화가가 그려준 ‘춤추는 농부’ 박연정 대표. |
2013년 ‘박연정무용단’(2016년 이팝댄스컴퍼니로 이름을 바꿈) 창단을 앞뒤로 그의 작품세계는 변화한다. ‘망구’ 연작을 시작했다. 2012년 국립부산국악원 주최 ‘한국 춤 젊은 안무가전’에 ‘망구, 여든한 살의 여행’이 선정되고 최고 평가를 받은 뒤로 ‘망구’ 연작은 제5편까지 이어진다. 젊음이 무르익고 기량이 피어나는 한창 30대 여성 안무가가 하필 탈춤 미얄 과장에 나오는 80살 먹은 할미가 돼 춤추는 ‘망구’를 밀고 나간 건 어떤 뜻이었을까? 내면에 ‘할미’와 할머니에 관한 그리움이 새겨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망구’ 연작은 이팝댄스컴퍼니가 ‘불퇴전’의 활동을 펼칠 밑거름이 됐다. 창작단막극제 ‘나는 연출이다’ 예술상과 관객 인기상 ‘거울못’, 부산국제무용제 AK21 우수상 ‘바람길’, 청년연출가 선정작으로 많은 장르를 융합한 문제작 ‘똥’, SCF 서울국제안무가페스티벌 선정작 ‘길’, 감천문화마을 거리예술 ‘옥상길 따라’, 부산신진예술페스티벌 ‘똥: 방안의 코끼리’…. ‘박연정 팀’은 호평과 비판 속에서도 쉴 새 없이 공연했다.
■최근작 ‘영도 도깨비’
‘이팝’의 최근 작품은 지난해 10월 시작해 지난달 마무리한 ‘영도 도깨비’다. 영도문화도시센터 ‘절영마프로젝트’ 참여 작품으로 박연정 이민선 이혜민(이상 춤), 김상은(전자바이올린) 김상지(전자첼로) 최진석(타악)이 영도 동삼동 장승공원, 영도등대, 봉래동 물양장, 중리 해녀촌, 청학동 부산항대교 아래, 산제당 등을 누비며 ‘문화도시 영도’의 속살·신명·마음을 춤·퍼포먼스·연주에 담아 영상으로 구현했다. 2월 말께 유튜브 등으로 ‘영도 도깨비’를 볼 수 있을 듯한데, 또 어떻게 생생한 기운을 폭발시켰을까?
‘이팝’은 2018~2019년 2년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신나는 예술여행’에 선정돼 방방곡곡 다니며 공연했다. “주로 마을회관 경로당 요양병원 사회복지관에 가서 어르신 관객을 모시고 소리(정가), 춤(할미 춤 등), 연주(전자바이올린·전자첼로·타악 등), 설치미술로 현실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우리 전통이 숨 쉬는 공연을 했다”고 박연정은 설명했다. “왕복 7시간 운전하기도 한 힘든 일정이었지만, 거동이 안 되는 할머니가 눈을 깜빡이며 호응하고, 정가를 들은 어르신들이 떼창(광주였다)해주시고, 좋은 선물 받았다고 눈물 흘리며 손잡아줄 때 힘이 났어요.” 그때 동영상을 보면,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부럽지 않다.
■복합문화공간 열겠다는 목표
살뜰하고, 정 많고, 넉넉했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그의 활동을 관통한다. 농사는 또 다른 인연도 선사했다. “대학 선배이자, 미국에서 조셉 필라테스 직계인 롤리타 산 미구엘에게서 필라테스를 배운 박성미 강사(PMMP 회원)께 농산물을 배송하러 갔는데, 당장 필라테스를 하자고 권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필라테스를 익히면서 그간 춤만 추느라 몸을 얼마나 혹사했고, 제대로 가꾸지 못했는지 절감했다. 그는 “작물을 가꾸다 보니 ‘나도 좋은 영향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며 “상반기에 복합문화공간을 열고 현장 예술가와 교류하고 서로 북돋는 일을 할 계획”이라고 2021년 희망을 말했다. 선임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