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봉권의 문화 동행 <7> 장애인단체와 함께 한 정익진 시인의 7개월

고단한 삶에 스민 예술을 찾아 7개월 여정 … 그렇게 우린 詩人이 된다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시창작강사로 활동하는 중견시인
-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위촉으로
- 지난해 문예창작 아카데미 진행

- 장애인 외 가족·활동가도 참여
- 영화 수업 듣고 직접 작시까지
- 수강생 80% 종강 때까지 완주
- 17명 시로 ‘따뜻한…’ 작품집 내

- 중증장애 남편 보살피던 수강생
- “학창시절 돌아간 듯 설렘 느껴”

“절대로 어마어마하지 않은 척, 사실은 항상 압도적인 무언가를 선사하는 미국의 ‘영화 시인’ 아니면 ‘시인 영화감독’ 짐 자무쉬가 이번에 또 다른 걸작 ‘패터슨’을 만들어내면서 우리, 특히 예술가연하는 인간들에게, 혹은 지식인인 척하는 속물들에게 이것만큼은 제대로 알라며 명징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 일상에서 예술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이다. 혹은 우리 일상 속에 얼마나 많은 위대한 예술이 숨어 있는가이다.”

이 글은 정익진 시인이 ‘강의 첫날’인 지난해 6월 19일 수강생에게 제공한 강의자료집에 담겨 있다.

여기서 말한 ‘강의’란 부산문화재단이 시행한 ‘2020년 예술인 파견지원사업’에 ㈔부산장애인총연합회(부산장총·회장 조창용)가 응모해 선정되면서 마련한 ‘문예창작 아카데미’다.

부산장총은 아카데미의 강사로 시단의 중견이자 영화광이며 다양한 문학 현장에서 시 창작 강의를 성실히 펼쳐온 정익진 시인을 위촉했다. 말하자면, 이렇게 문화 동행을 위한 1단계 준비가 갖춰졌다.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전현숙 사무처장과 수강생 조선자 씨, 강사 정익진 시인(왼쪽부터)이 지난 10일 부산 중구 사십계단으로 나들이 나와 지난해 6월부터 7개월간 이어진 문예창작 아카데미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철통 방역 속 시 강좌

정 시인이 첫날 강의에서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시를 쓰는 버스운전사, 그러니까 평범한 우리 이웃이 예술을 즐기는 이야기다)을 들고 와 ‘우리 일상 속 예술’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시를 통한 문화 동행’ 준비는 2단계로 격상됐다. 이 강좌의 수강생이자 진행 실무를 도맡은 부산장총 전현숙 사무처장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수강생은 부산장총에 속한 장애인과 가족·활동지원인, 부산장총 건물에 입주한 19개 장애인 관련 단체 실무자…모두 평범한 시민이었어요.”

지난해 6월 19일 시작해 12월 24일까지 7개월 동안 28강이 이뤄졌다. 듣는 사람도 완주하기 쉽지 않아 중도 작파하는 경우가 많고, 하는 사람도 내공 없으면 끌고 가기 어렵다는 바로 그 ‘장기 강의’다. 그런데 결과가 꽤 좋았다. “출석률이 꾸준히 높아 놀랐죠. 사람들 가슴 속에 숨은 문화 욕구가 참 컸구나 싶었습니다.”

전 사무처장은 “부산장총 건물(부산 동구 초량동)에 있는 아주 큰 방을 배정하고, 2인용 책상에 한 사람만 앉게 하고, 거리를 띄우고, 마스크 쓰고, 다른 방역 조처도 이행해야 했다”고 떠올렸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수강생도 챙겨야 했다.

■일상 속 예술, 삶 속의 시

   
정익진 시인
강좌란 게,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알아서 굴러간다고 여기기 쉽다. 안 그렇다. 강사와 수강생 사이 호흡이 안 맞으면 중도탈락률이 올라간다. 장기 강좌는 더 그렇다. 여기서는 강사의 준비와 마음가짐이 관건이다. 전 사무처장은 “최초 수강생의 80%가 종강 시점까지 남았다”고 했다. 높은 비율이다. 정익진 시인에게 그 비결을 물을 차례다. “매번 세 시간짜리 강의를 했죠. 처음부터 대뜸 ‘다음 시간에 시 한 편씩 써오세요’ 하면 다들 부담이 클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제 육성만으로 끌고 가면, 재미도 효과도 적을 게 분명했고요.”

수강생은 장애인과 그 가족·활동지원인, 장애인단체 관계자들 그리고 평범한 시민이었다. 사느라 고단했을 이들에게 정 시인은 삶이 먼저이고, 시는 나중이니 시 앞에서 너무 긴장하거나 주눅 들지 말라고 속삭였다. “우리 일상 속에, 삶 속에 시는 스며 있죠. 그렇게 스며 있고 숨어 있는 시 한 구절을 발견하자고 했습니다.” 첫 두 달은 ‘워밍업’을 했다. 영화 미술 가요 팝송 K팝처럼 일상에서 만나는 문화를 시 강의에 끌어들였다.

■고마워요 ‘패터슨’ ‘동주’

   
㈔부산장애인총연합회가 펴낸 문예창작 아카데미 작품집 ‘따뜻한 눈빛으로’.
수강생 조선자 씨는 “정 시인이 강의 때마다 소개하고 해설한 영화를 접하면서 깊은 여운이 마음에 남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패터슨’ ‘동주’ ’잠수종과 나비’ ‘오베라는 남자’ ‘스틸 라이프’ ‘지니어스’ ‘아마데우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래비티’…. 정 시인은 예술과 예술가를 담은 영화, 장애를 이겨낸 영화, 고단한 일상 속의 공감과 감동을 담은 영화를 골랐다. 이렇게 수강생의 긴장을 풀고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문학집배원’ 서비스를 활용해 시의 세계로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게 도왔다.

시기가 무르익자, 정 시인은 수강생에게 “이제 시를 써 오시면 좋겠다. 바쁘면 안 써도 되고 형편이 되는 분은 시도해보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시를 써 왔고, 정 시인은 그 시를 강의자료집에 싣기도 하고 함께 손질하기도 했다.

영화 ‘패터슨’에서 패터슨(버스 운전을 하면서 시 쓰기를 즐기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조용히 일상을 응시하면서 삶 속에서 예술적인 무언가를 성취하는”(정 시인의 강의자료집) 과정은 그렇게 7개월 동안 이어졌다.

■시를 쓰기 시작하다

수강생의 시가 점점 모였다. 시를 어렵게만 생각하던 평범한 시민이 어느새 ‘패터슨’처럼 시를 쓰기 시작한 셈이다. 그즈음 중증장애가 있는 남편을 보살피며 병원 물리치료실을 자주 드나들면서도 이 강좌를 꾸준히 들은 수강생이 전 사무처장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참 죄송합니다. 남편을 병원에 혼자 물리치료 받게 하여 두고 와서 어쩔 수 없이 시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참 재미나고 다시금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있는 새로운 설렘으로…오늘 마치는 시간까지 함께하지 못한 점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문화 동행의 힘 느끼다

상상해본다. 바삐 돌아가는 일상 속에 짬을 내 시 강의를 듣고 학창 시절로 돌아가 설렘을 느끼는 사람의 표정을. 예술은 힘이 세다. 수강생의 시는 지난해 12월 ‘문예창작 아카데미 작품집-따뜻한 눈빛으로’라는 제목의 비매품 시집으로 출간했다. 17명이 시를 실었다. 작품 배열 순서는 수강생 이름 가나다순이다.

그래서 시집 표지를 넘기자마자 처음으로 만나는 시는 권인경 수강생의 작품이다. 아래와 같다.


“다양한 시간들이 드러누워

버거운 무게감에 아픔과 고통을 견뎌내고 있다

경쾌한 음률 난타의 향연이 벌어지는 동안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속으로 삭여

너의 등에 새겨진 무수한 상처를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가끔 살이 베이고 찔리는 동안 여러 종류의 냄새를 보고

타인의 식탐과 즐거움을 위해서

나를 내던져야 하는 최대한의 배려이다

때로는 버겁기도 하고 가벼울 수도 있지만

한마디 불평, 불만을 하지 않고 아직도 묵언수행 중인

너에게 나는 찬사를 보낸다”


   
이 시 제목은 ‘도마’이다. 소박하고 진실한 느낌이다. 지면 제한으로 다른 수강생의 작품을 인용하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이 말은 하고 싶다. 평범한 우리 삶 속에 예술은 스며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가꾸는 문화 동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거기서 21세기 예술의 활로가 비로소 열릴 것이다.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전재수 “생곡 무산 땐 에코델타에 소각장 불가피”
  2. 2센텀2 분수령 풍산 부지보상 본격화…1조 관측
  3. 3‘부산검찰청’ 떼고 ‘공소청’ 간판
  4. 4한달간 부산은 축제도시…‘페스티벌 시월’ 시작
  5. 5김해공항과 ‘50년 동행’ 부산은행…영업점 단독 응찰
  6. 6“부캉이 왜 쫓아내나”vs“먹이활동 안 해 폐사 우려”
  7. 7HJ중공업 7900TEU급 ‘가닛’ 명명식…중대형 컨선 14척 인도
  8. 8“부캉이 테마공원 만들자”…동구는 조형물 설치 검토
  9. 9軍·유엔사 “군사분계선 이남 지뢰매설, 北 정전협정 위반”(종합)
  10. 10센텀2 배후지 ‘트리븐 센텀’ 뜬다
  1. 1전재수 “생곡 무산 땐 에코델타에 소각장 불가피”
  2. 2軍·유엔사 “군사분계선 이남 지뢰매설, 北 정전협정 위반”(종합)
  3. 3국정원 “우크라가 北포로 송환 비공개 먼저 요청”(종합)
  4. 4‘김종서함’ 울산 진수식 찾은 이재명 대통령 “자주국방이 주권”
  5. 5여야 “軍, 북한에 강력 대응” 촉구
  6. 6北지뢰 1발 추가 발견…대북 방송 재개 등 상응조치 촉각(종합)
  7. 7“통합 논의 항만公 정부 지분, 지자체로 넘겨야”
  8. 8새 광역단체장 재산 1위 김상욱 50억…전재수 6억(종합)
  9. 9[속보] 김여정, ‘DMZ 북한 지뢰’ 발표 전면부인…“서울의 자작광대극”
  10. 10예상보다 무뎠던 검증 칼날…TP원장 후보 기술고도화 초점
  1. 1센텀2 분수령 풍산 부지보상 본격화…1조 관측
  2. 2한달간 부산은 축제도시…‘페스티벌 시월’ 시작
  3. 3김해공항과 ‘50년 동행’ 부산은행…영업점 단독 응찰
  4. 4“부캉이 왜 쫓아내나”vs“먹이활동 안 해 폐사 우려”
  5. 5HJ중공업 7900TEU급 ‘가닛’ 명명식…중대형 컨선 14척 인도
  6. 6“부캉이 테마공원 만들자”…동구는 조형물 설치 검토
  7. 7센텀2 배후지 ‘트리븐 센텀’ 뜬다
  8. 8해운 대기업 부산 이전 효과 내려면…“산업 생태계 구축돼야”
  9. 9반도체 호황에…올 국세수입 478조 역대 최대 예측(종합)
  10. 10삼영이엔씨, 회생계획 인가…3자배정 100억 유증
  1. 1‘부산검찰청’ 떼고 ‘공소청’ 간판
  2. 2전재수 전 보좌진 4명 ‘증거인멸’ 유죄(종합)
  3. 3[한 손 뉴스] 푸바오의 쌍둥이 동생들, 올 연말 중국으로 떠난다(종합)
  4. 4朴시정 선거악재 우려 ‘생곡 용역’ 중단…백지화 소문 키워
  5. 5“110억 투입 부산 의료버스, 플랫폼업체에 예산 1/3 지급”
  6. 6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1일
  7. 74년 방치 창원 짚트랙, 새 체험시설 만든다
  8. 8바리케이드 걷힌 소녀상…2년여 만에 시민 품으로(종합)
  9. 9“비영리법인 설립, 법 기준 세워야”
  10. 10창녕 2세 아들 숨지게 한 父 징역 17년
  1. 1돌아온 금빛 주역들, 프로야구 막판 순위·타이틀 경쟁
  2. 2중원 황인범·투톱 변화…승리 축포 쏠까
  3. 3해볼 만하다…女축구, 8년 만의 AG 메달 도전
  4. 4역시 안세영…AG 2번째 ‘금빛포효’(종합)
  5. 5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중국에 역전승 거두고 결승 진출
  6. 6공격에 쏟아붓다가 골문 열린 모레노호
  7. 79회 4실점 진땀…롯데, 키움에 가까스로 승리
  8. 8일본 대회운영 왜 이러나…한국 육상 남자 400m 계주, 판정 논란 딛고 동메달 지켰다
  9. 9고성군, 통영시 거제시와 손잡고 2029년 도민체전 공동개최
  10. 10한동희 시즌 23호 홈런 '쾅'…롯데, 키움에 4-2 역전승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日 70년史부터 ‘올나잇’ 상영회까지…애니 세계로 초대
미리보는 제31회 BIFF
연상호 ‘실낙원’ 홍상수 ‘눈 둘 데가 없네’ 등 한자리에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인간 빈자리 차지한 반려 로봇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자현-꾸지 않는 꿈
장승택-ayered Painting P60-11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빨래 /심여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일 (음 8월 21일)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30일 (음 8월 20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할아버지·아버지·본인·아들까지 정쟁으로 죽은 김제겸의 글
아침 산안개를 읊은 조선 전기의 문신 월헌 정수강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