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나무

    　 - 유병근


　기울어진 나무는 기울어진 쪽으로

　해지는 소리를 보고 있다

　이 꽃나무와 저 꽃나무 사이

　기울어지는 그림자의 빛깔을 만지고 있다

　기울어지다가 잠깐

　지는 해의 틈새를 받치고 있다

　기울어짐과 기울어짐의 각도에 대하여

　절하다가 고개를 드는 이목구비

　어슬한 얼굴 너머로 지는 해가 기울고 있다

　제비는 오지 않고 복사꽃 붉은 봄이

　기울어진 어깨를 쓰다듬고 있다



　어쩌면 한갓지다





　 시집, ‘어쩌면 한갓지다’에서

	화가 이중섭의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복사꽃’은 복숭아나무의 꽃이다.

　중국 동진 말의 시인 도연명은 ‘도화원기’에서 복사꽃 숲에 들어갔던 어부가 발견한 마을을 ‘무릉도원’이라 부르며 낙원으로 묘사하였고, 나관중은 그 빛깔의 상서로움을 의식하여 소설 ‘삼국지’ 첫머리 배경으로 삼았다. 꽃은 4, 5월에 잎보다 먼저 백색 또는 담홍색으로 핀다.

　나희덕 시인은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라는 시에서 ‘흰 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고 그 색깔의 신비로움을 예찬한 바 있다. 선조들은 그 나무의 과실인 복숭아를 행복과 부귀를 가져다준다고 믿어서 여러 민화에도 자주 그려졌다.

　봄이 시작된다고 하는 ‘입춘’이 벌써 지나고 머잖아 ‘춘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봄의 행진은 춘분(春分) 무렵부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음력 2월, 양력 3월 21일경. 태양은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고 지구상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농부는 이 춘분을 전후로 흙을 일구어 씨 뿌릴 준비를 한다. 또한 춘분은 연지(燕至)라고도 하는데 봄의 전령사인 제비가 돌아오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꽃샘추위 속에 복숭아 산지인 경북 청도군 시설하우스에 복사꽃이 지천을 밝히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자연의 사계 중 절정의 계절이 봄이듯, 인간 삶에서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화양연화(花樣年華)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인은 ‘복사꽃나무’를 바라보며 기울어지고 있는 방향에 꽂힌 것일까? 시인의 시점은 일반적인 관점을 초월하여 ‘기울어진 쪽’으로 ‘해지는 소리를 보’는 감각적 사유에 들어계신다. ‘꽃나무 사이’ ‘기울어지는 그림자의 빛깔을’ 만질 수 있고 나아가 ‘기울어지다가 잠깐 지는 해의 틈새를 받치고 있’는 ‘기울어짐의 각도’까지 알아챌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면 부족함이 없는 천상 시인 아닌가, 다시 경건해진다. 어떤 일이건 이토록 기울어짐에 이르도록 심혈을 기울여 절하다 ‘고개’ 들었을 때 보게 되는 ‘이목구비’는 눈부시게 선명할 것이다.

　비록 빛이 어둑해지고 ‘해가 기울고’ ‘제비는 오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지금은 한갓진 곳에 서 계실 ‘기울어진 어깨를’ ‘복사꽃 붉은 봄이’ 향기롭게 ‘쓰다듬’어 줄 날이 지금, 오고 있다. 김곳 시인

	김곳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