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대한 신神



　 - 김순아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드는 편의점, 거기서 내가 만났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 그 중에는 자식을 죽여 방

안에 몇 년째 방치해 놓고 방향제를 사러 나온 아버지도 있을

테고, 부모 유산을 탐하여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버지를 휠체

어에 태워 근처 법무사사무소에 가 유언공증을 받고 나온 큰아

들도 있을 테고, 혼자 아이를 낳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목이 말

라 우유를 사러 온 여학생, 게임기자판을 두들기다 심심하여 지

나가는 또래 아이에게 삥을 뜯고 그 돈으로 컵라면을 사러 온

남학생, 바람난 아내를 뒷조사하다 속이 아파 소화제를 사러 온

남편, 몇 년째 취업에 실패하여 부모 눈치 살피다 담배를 사러

온 총각, 강제로 명퇴당한 실직자, 무명시인, 심지어 맞은편 절

에서 사람으로 위장하고 소주를 사러 온 부처조차 있을지 모른

다. 그러나 24시간 열린 편의점은 그 모든 존재를 다 받아준다.

참으로 관대한 신神이다.



　 시집, ‘슬픈 늑대’에서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관대하다’의 뜻은 ‘마음이 넓어, 친절을 베풀거나 남을 헤아리는 아량이 크다.’이다.

　그러나 권력자가 자신의 관대함을 강조할 때는 ‘시혜의식’을 동반한 오만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시의 제목 ‘관대한 신神’은 이면도로까지 촘촘히 진출하여 24시간 ‘호모 컨슈머리쿠스’들을 받아내는 편의점을 은유한다. 서비스와 상품이 돈으로 교환되는 아담하고 깨끗한 시장터. 시인은 ‘만났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을 동네 한복판에 자리 잡고 공공체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구멍가게, 연쇄점, 동네 슈퍼와 달리 서로에게 무관심해진 사회에 등장하여 곳곳에 배치된 편의점을 묘사한다.

　시는 서로를 ‘방치’하며 소외에 시달리면서 자본주의가 심어놓은 욕망을 ‘탐하’는 사람들에게 비판의 시선을 던지기도 하고 ‘취업에 실패’하거나 강제 퇴직의 미화법인 ‘명예퇴직’한 잉여 인간들과 그 잉여 인간의 가장 슬픈 대명사인 ‘무명시인’에 대한 연민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이 시집의 해설을 썼던 정진경은 “갑·을 관계의 명령어나 경쟁적 질서로 인한 현대인의 무관심은 역사의 진화와 함께 상속되어온 ‘아비투스(habitus)’의 한 양상이며 경쟁이 가속화될수록 인간에 대한 무관심은 증폭된다.”고 썼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한파의 영하 날씨에 내복 차림의 어린아이가 편의점에서 연이어 발견된 사례가 있었다. 이 아이들은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방치되었고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편의점을 찾아든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는 편의점을 ‘24시간 열’려 있는 관대한 신神‘의 ‘존재’로 보이게도 한다. 그러나 2000개가 넘는 상품 배치나(잘 팔리는 물건이나 이윤이 많이 나는 상품은 눈높이에, 그렇지 않은 제품은 제일 밑에, 충동구매를 하고 싶은 물건은 계산대 옆에 놓는) 통유리 시설과 함께 들어가고 싶은 실내 공간으로 만드는 LED 조명의 조절 등 쇼핑 심리학적으로 전략화된 공간일 뿐이다.

　백석의 연인으로 유명한 자야(김영한) 선생의 요정 대원각이 길상사라는 절로 거듭난 것처럼 편의점이 ’절‘이 될 수는 없겠지만, 모든 인(人)이 천(天)이듯이 때론 사악하고 때론 불쌍한, 불완전하고 ‘온전치 못한’ ‘부처’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드는’ 곳. 20세기 구멍가게의 평상에 앉아 마을 사람들과 ‘소주’를 기울여 본 사람들은 이곳을 어떻게 느낄까? 적어도 제목은 바뀌어야 할 것이다. ‘관대한 神’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관대하게 보이는 神’이라고.김곳 시인

	김곳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