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준호 감독 ‘마더’로 얼굴 알린 그녀
- 윤재호 감독 작품으로 첫 주연 데뷔
- 탈북민 복서로 남한사회 적응기 그려
- 지난해 BIFF ‘올해의 배우상’ 영예
- “13회차로 모든 촬영 끝내야했던 일정
- 이북 사투리·복싱 연습 고생 많았죠”
안재홍 최우식 전여빈 구교환 이주영 최희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현재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는 배우로, 모두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이들은 뛰어난 연기로 BIFF를 사로잡았고, 이후 충무로의 반짝이는 스타가 됐다. 그리고 지난해 또 한 명의 배우가 BIFF에서 반짝거렸다. 바로 영화 ‘파이터’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임성미가 그 주인공이다.
‘뷰티풀 데이즈’ ‘마담 B’ 등을 연출한 윤재호 감독의 신작인 ‘파이터’(개봉 18일)는 남한에서 식당의 허드렛일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탈북민 진아가 복싱을 시작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를 다뤘다. 제25회 BIFF에서 올해의 배우상과 함께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도 수상했으며, 지난 3월 초에 개최된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제너레이션 14플러스 경쟁 부문에 초청돼 언론과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임성미는 복싱을 통해 삶의 동력을 얻게 되는 탈북민 진아 역을 맡아 ‘진짜’ 같은 연기를 보여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출신으로 연극 영화 드라마에서 내공을 쌓아온 14년 차 배우 임성미를 만나 투박하지만 진심을 다해 연기한 ‘파이터’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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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이터’에서 복싱을 통해 삶의 동력을 얻게 되는 북한이탈주민 진아 역을 맡은 임성미. 인디스토리 제공 |
■‘파이터’를 만나 진아가 되다
윤 감독은 “주인공에게 모든 것을 걸고 만든 영화가 ‘파이터’다. 임성미는 재능이 풍부하고, 대단한 연기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만큼 주인공의 비중이 큰 영화였는데, 잘 안 알려진 배우 임성미에게서 뭘 봤던 걸까? 둘의 첫 만남은 2019년 초여름에 있었다. “소속사에서 시나리오를 줘서 읽어보니 무척 깔끔했으며, 진아라는 인물에 무척 끌려서 너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윤 감독님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임성미의 모습에 끌린 윤 감독은 당일 출연 제의를 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처음 만났을 때 강한 힘을 느꼈다”고 했는데, 아마 진아 역할을 잘 해내겠다는 임성미의 의지를 본 것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으로 임성미가 캐스팅되자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그에게는 북한 사투리와 복싱을 배워야 하는 숙제가 던져졌다. 먼저 북한 사투리는 극 중 진아에게 방을 소개하는 부동산 매니저 역의 이문빈이 도움을 줬다. 실제 연변 출신 배우이자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를 만날 때마다 다섯 시간씩 대사 하나하나의 억양을 배웠다. “연변 말의 미세한 느낌을 캐치하고 싶어서 시나리오에 억양 표시를 하면서 배웠다. 또 녹음을 해서 집에서 계속 듣고, 잠자면서도 들어서 몸에 배게 했다.” 북한 사투리가 너무 리얼해서 영화를 본 관객들 중에는 그를 실제 연변 출신 배우로 알기도 한다. 북한 사투리와 인연이 있었던지 ‘파이터’ 촬영 이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북한의 밀수 화장품 판매업자 장 마담 역을 맡았다. 하지만 연변 사투리가 아닌 평양 사투리를 써야 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파이터’ 억양으로 대사를 했는데 북한 사투리를 담당해 주시던 분이 ‘니 어디서 그 말 배웠니’ 지적하더라.(웃음)”
복싱은 한 달 반 정도 연습했다. 거의 매일 2시간 넘게 체육관에서 코치와 함께 훈련했고 집에서도 계속해서 연습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가드가 벌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교정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실제 선수들은 아령을 들고 연습을 한다고 해서 집에서는 글러브 대신 아령을 들고 연습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를 했지만 ‘파이터’에서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것이 복싱 장면이다. “복싱을 준비하는 과정이 좀 더 여유로웠으면 어땠을까 싶다. 배우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지점이 있는데 복싱의 기술적인 부분 등에서 그냥 넘어간 느낌이 있어 아쉽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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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탈북민 진아가 복싱을 시작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이야기의 영화 ‘파이터’. |
제작 예산이 적은 독립영화 특성상 ‘파이터’는 프리 프로덕션 기간과 촬영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장편 영화로서는 매우 짧은 13회 차로 모든 촬영을 마쳤다. “짧은 시간 내에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소화해야 해서 여유가 없었다. 심지어 윤 감독님과 세 번째 만나는 날 크랭크인을 했다.” 촬영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도 취했다. “촬영 전에 윤 감독님과 미리 합의한 것은 콘티 없이 촬영하고, 모니터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촬영장에서 그때그때 상의를 해가면서 촬영하는 것은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고, 중요한 장면이 아니면 모니터링을 하지 않아서 속도감 있게 촬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북한 사투리와 복싱이 외적 연기라면 탈북민으로서 복싱을 통해 남한 사회에 적응하면서 점점 성장해가는 모습은 내적 연기였다. 특히 진아는 가족을 두고 먼저 탈북해 남한에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갈등을 겪는 인물이기 때문에 감정 변화를 세밀하게 보여줘야 했다. 예를 들어 첫 복싱 시합에서 다운됐을 때 이를 지켜보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후 그대로 누워버리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윤 감독님이 그것은 ‘진아가 할 수 있는 작은 복수’라고 했다. 걱정돼서 시합장에 온 어머니에게 딸이 이렇게 패배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복수하는 것이다. 그 말이 확 와 닿았고, 바로 다시 연기했다.” 또 어머니 문제로 갈등하던 진아가 체육관에서 관장, 코치와 함께 술을 마시다 오열하는 장면은 감정적으로 가장 폭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촬영 전에 윤 감독님이 그 부분이 진아의 클라이맥스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감정적으로 밀도가 높았던 것 같아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BIFF의 기억
2020년은 임성미에게 잊지 못할 한 해였다.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BIFF에 초청받아 자신의 첫 주연 영화로 관객과 만났기 때문이다. “BIFF는 처음 참석하는 것이어서 너무 설레고 기뻤다. 코로나19 때문에 관객은 적었고, 이전과 다른 분위기였다고 했지만 이렇게라도 관객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처음 BIFF에서 스크린으로 ‘파이터’를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 그때까지만 해도 진아의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 그랬다.” 무엇보다 BIFF는 그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올해의 배우상을 안기며 감격의 순간을 선사했다. 올해의 배우상 심사평을 보면 임성미의 연기를 “고요한 집중력으로 한 호흡도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캐릭터를) 구현했다”고 언급했다. 그만큼 장면마다 밀도 있는 연기를 보여준 것이다. “시상식 당일 짐을 싸서 비행기 타러 가는데 수상하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게다가 윤 감독님도 수상한다고 하더라. 연기상은 데뷔하고 처음이라서 그만두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봉준호 감독의 ‘마더’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연기를 해왔지만 배우로 빛을 보지 못했던 그이기에 그 기쁨은 더했을 것이다. “그동안 게스트하우스 청소 만둣집 치킨집 녹즙 배달 등 다양한 알바를 했다. 의도적으로 경험을 쌓으려고 했던 것도 있었다. 이제 엄마 아빠에게 면이 서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틀 동안 마냥 좋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친구들을 만날 수 없어서 집에서 혼자 춤을 췄다.”
2010년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800㎞를 걸으며 삶에 대한 자신감과 인간애를 가졌고, 뉴욕에서 무용 수업을 받으며 춤에도 빠져봤던 임성미. 그는 다양한 경험과 체험, 그리고 연기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이제 배우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고 있다.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