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스 트롯’에 출연한 류원정이 ‘여로’의 주제가를 불렀다. 원곡은 이미자의 노래였다. 이미자가 곱디 고운 목소리로 부른 노래를 젊은 가수가 하는 것을 들으니 새삼 흑백 드라마 ‘여로’가 떠올랐다.
1962년 개국한 KBS는 후발 주자인 TBC와 MBC가 자극적이고 통속적인 드라마로 시청률을 올리자 고심한다. 게다가 1970년 TBC의 ‘아씨’가 일일연속극 최고 인기를 누리자 KBS는 자존심 회복을 위해 정면대결을 택한다. 바로 1972년 ‘여로(旅路)’다. ‘여로’는 시청률 70%를 넘을 만큼 인기를 끌었고, 스튜디오를 벗어나 야외 녹화를 처음 시도한 작품이기도 했다.
1980년대 ‘인간시장’과 1990년대 ‘모래시계’가 그랬듯 ‘여로’가 방송되는 시간에는 길거리가 한산했고 저녁상 차리던 주부들은 넋을 잃고 보다가 밥을 태우기 일쑤였다. ‘여로’ 덕분에 TV 보급률이 올라갔다는 통계까지 있을까. ‘여로’의 영구 역을 맡은 장욱제는 당시 100 대 1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KBS 공채 4기 출신으로, ‘여로’ 한 편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분이 역의 태현실 역시 결혼 이후 재기에 성공한다.
내 기억 속에 최초로 저장된 흑백 드라마의 편린은 TBC ‘달동네’지만, ‘여로’는 자라면서 끊임없이 부모님과 언니들에게 들었던 드라마이다. ‘여로’는 연출자 이남섭이 극본까지 썼는데, 아이들이 “땍띠(색시)야! 밥 줘” 하는 장면을 따라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 정서에 유해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분이가 혹독한 시집살이를 희생으로 감내하는 순종적 여인상으로 그려진 점은 못내 아쉽다.
‘여로’의 의미는 일제강점기부터 6·25, 부산 피란에 이르는 격동의 시기를 개척하는 한국 여인의 일대기를 다룬 점에 있다. 지능은 모자라지만 아이처럼 순진한 남편을 극진하게 위하는 분이의 사랑을 통해 우리는 질곡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 누이, 아내, 어머니를 만났다.
문득 배우 장욱제의 근황이 궁금해 찾아보니 2000년까지 부산의 한 면세점 대표로 있다가 사업가로 변신한 뒤 은퇴했다. 그는 ‘여로’ 속 순정남 영구로 영원히 기억된다. ‘여로’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만으로 우리를 감동시켰던, 다시 못 만날 우리의 순정 시대를 소환한다.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