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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시대적 불화와 갈등, 옳은 선택이란 뭘까…정약전과 창대라는 인물 속에 투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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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번째 사극이자 2번째 흑백영화
- 이번에도 사건보다 인물에 초점
- 자산어보 서문에 창대 관련 언급
- 이번 작품 시나리오 쓰게 된 계기

- 200년 전 인물들의 가치관 통해
- 오늘날 개인주의 해법 찾으려 해

- 또 흑백영화 만들게 된 이유요?
- 세련미는 더하고 제작비는 줄여
- 인물 집중도 높이는 장점도 있죠

‘황산벌’ ‘왕의 남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사도’ 등의 사극을 연출하며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큰 울림을 준 이준익 감독이 다시 한 번 조선시대 학자 정약전의 삶을 돌아보는 ‘자산어보’를 만들었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자산어보는 코로나19 4차 유행의 경고등이 켜진 가운데에서도 지난 12일까지 26만3595명의 관객을 모으며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 감독의 여섯 번째 사극이자 ‘동주’에 이은 두 번째의 흑백 영화 자산어보는 순조 1년, 신유박해로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이 그곳에서 만난 청년 어부 창대와 함께 바다 생물에 관한 저서 자산어보를 집필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그동안 역사 속 사건보다 인물에 더 관심을 보여온 이 감독은 이번에도 잘 알려진 정약전과 함께 창대라는 인물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를 준다. 또한 동주에서 서정적인 흑백 영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그는 이번에는 수묵화 같은 아름다운 흑백 영상으로 스크린을 수놓았다. 여기에 설경구 변요한 이정은 등 연기파 배우를 캐스팅해 연출과 연기의 멋진 앙상블을 이뤄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가 더 궁금해지는 자산어보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이 감독을 직접 만났다.

■왜 정약전과 창대인가

흑백 사극 영화 ‘자산어보’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 그는 사건이 아닌 사람에 집중하는 사극을 연출했으며, 세련된 흑백 영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조선 후기의 실학자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정약용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감독은 그의 형 정약전을 끌어냈다. 우리에게는 흑산도 근해의 해양 생물에 관해 기록한 자산어보로 알려진 그가 이 감독의 관심을 끈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작은 동학이었다. “사극을 여러 편 찍으면서 조선의 근대성을 어딘가에서 찾아내고 싶었다. 정치사나 왕조사로 찾지 않고 개인사로 찾다 보니 그 씨앗은 동학의 창시자인 최수운이었다. 그 앞에는 서학 북학이 있더라. 그러다가 천주교 박해의 신호탄인 신유박해에 이어 ‘백서 사건’의 황사영에게 꽂혀서 시나리오를 쓰다가 덮었고, ‘사도’ ‘박열’을 먼저 연출했다. 그러다가 다시 그 시대를 돌아보면서 주목한 것이 정약전이었다.”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인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3형제가 의금부에 끌려갔다. 정약종은 순교하고 정약전 정약용은 유배를 당한다. 이 감독은 그중 흑산도로 유배당한 정약전에 눈길이 갔던 것이다.

“자산어보의 서문에 보면 창대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정약전 정약용 창대를 축으로 시나리오를 쓰면 조선시대의 단면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자세히 표현되진 않지만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을 집필한 정약용과 민중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해양 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 그리고 어부이지만 성리학을 공부해 뭍으로 나가 성공하려는 청년 창대가 영화의 세 축을 이루고 정약전은 그 중심축이 된다. “‘자산어보’는 정약용과 정약전이 추구하는 가치관의 대립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 차이 속에서 창대란 인물이 어떻게 자기 삶의 방향을 잡느냐, 그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200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이라고 다른가. 현대사회의 개인주의는 과거의 국가주의나 집단주의에 묶여있지 않기에 개인주의의 현대성을 자산어보 속 정약전이라는 인물을 통해 찾아가려 했다.”

■컬러보다 세련된 흑백의 아름다움

흑산도 부근의 도초도 비금도 자은도 등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를 하고 있는 이준익 감독(왼쪽 아래)과 정약전 역의 설경구(오른쪽), 창대 역의 변요한.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윤동주의 삶을 그린 동주를 흑백으로 촬영한 이 감독은 당시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흑백영화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시대극을 흑백으로 촬영하면 컬러보다 촬영지의 선택에 있어 조금 더 자유롭고, 조명이나 미술에도 신경을 조금 덜 써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자산어보도 비슷한 이유로 흑백을 선택했다. “자산어보는 상업적이지 않은 영화다. 일반 상업영화처럼 사극을 촬영하면 제작비가 최소 100억 원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망해도 적게 망하자는 생각에 흑백을 택했다.”

하지만 사실 흑백을 선택한 근본적인 이유는 미학적인 고려다. “동주에서 발견한 미학을 공격적으로 적용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흑백이 세련되고 특별하다는 것을 느꼈고, 가능성을 본 것이다.” 동주는 스물여덟 살에 세상을 떠난 시인 윤동주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흑백의 심도를 통해 인물의 정서를 표현했다. 밝음에는 일제강점기라는 어둠의 깊이가 느껴지고, 어둠에는 젊은 시인의 강인함과 싱싱함이 드러난다. 반면 만인 평등, 실용을 주창한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어떨까? “어둠보단 밝음이, 흑보다는 백이 많이 차지한다. 모든 인간은, 개인은 시대와의 불화를 겪고 있다. 삶은 그래도 재미있고 아름답게 이어가는 모습이기에 흑보다는 백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된 것 같다.”

동주는 제작비가 5억 원이었고, 자산어보는 그래도 40억 원이 넘는다. 그래서 자산어보는 실제 흑산도 부근의 도초도 비금도 자은도 등의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앵글을 광활하게 펼칠 수 있었다. “흑백이 와이드 장면을 잡기에 유리하다. 텅 빈 하늘과 백사장에 사람 하나가 점으로 있는 와이드 앵글 촬영을 해도 된다. 밤에 주상절리에서 정약전이 술을 마실 때 압도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인물이 작아도 인물이 나올 수 있다.” 흑백에서는 인물이 점으로 그려져도 관객들은 다른 색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인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인물의 얼굴과 모습이 다 그려진다는 것이다. 자산어보에서는 흑백 영화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컬러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만드는 세련된 영화다. “물론 이것은 촬영감독의 몫이었다. 이의태 촬영감독이 그런 흑백의 장점을 구현했기 때문에 칭찬과 공을 가져가야 한다.” 영화의 팀워크를 강조하고, 협업에 의한 촬영 현장을 강조하는 이 감독다운 겸손의 말이다.

■설경구와 이정은 커플

자산어보를 보고 많은 관객이 설경구와 이정은이 ‘적역 캐스팅’이라고 말한다. 정약전 역의 설경구는 첫 사극임에도 아주 잘 어울렸고, 흑산도에 사는 가거댁 역의 이정은은 설경구와 은근한 로맨스를 보여주며 찰떡 호흡을 맞췄다. “시나리오를 쓸 때 배우를 생각하지 않고 열어놓는다. 시나리오가 언제 완성될지 모르는데 원했던 배우의 스케줄이 안 맞으면 실망감만 크지 않겠는가. 그런데 자산어보 시나리오가 완성됐을 때 설경구가 시나리오를 달라고 하더라. 영화를 하기로 하고 테스트 촬영 때 의상과 분장을 모두 하고 나왔는데 설경구가 하나도 없더라. 바로 정약전이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이 있었으니까 하겠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설경구가 정약전으로 캐스팅되자 이후 캐스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주요 배역을 한 명 정하면 그와 함께 다른 배역을 의논하면서 캐스팅하는 편이다. 설경구가 ‘가거댁으로 정은이 어때요?’라고 했고, 변요한도 제안했다.” 설경구는 대학시절부터 친했던 이정은 외에 영화 ‘감시자들’에 함께 출연한 변요한을 추천했고, 이 감독은 이들을 반겼다.

이들 외에도 정약용 역의 류승룡을 비롯해 조우진 강기영 등 수많은 우정 출연 배우들이 영화에 힘을 보탰다. “그 또한 설경구가 ‘잠깐 나온 역할이라도 관객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배우가 맡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이유는 소재가 상업적이지 않으니 아는 배우가 나오면 마음에 빨리 와 닿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결국 거절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자기가 돋보이지 않는 역할임에도 이런 선택을 한 우정 출연 배우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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