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누나… 누나아~.” 장티푸스에 걸려 고열로 실신해 가마니 위에 쓰러진 누나를 애타게 불러대던 까까머리 영구. 유행병이 창궐했던 전쟁 직후 ‘뚝방’ 옆 밤나무에 묶여있던 누나를 극진히 간호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 장면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당시 바가지를 얹고 자른 듯 똑 떨어지는 단발 ‘간난이 머리’가 대유행했다. 1970년대 ‘여로’의 영구를 잇는 ‘코찔찔이’에 앞니 빠진 ‘간난이’ 속 영구는 국민 동생이 됐다.
‘간난이’의 인기는 상상초월이었다. 당시 ‘조선왕조 오백년’‘제1공화국’ 등의 인기를 바탕으로 드라마 왕국에 올라선 MBC의 파죽지세는 ‘간난이’에서 절정을 이뤘다. 방영 2주 만에 받아 든 시청률 성적표는 65%. ‘간난이’는고석만 PD(전 EBS 사장)와 이재우 작가가 의기투합해 20일 만에 기획했다. 충청도 시골마을, 전쟁고아가 된 간난이와 영구가 할머니와 살아가는 모습은 그렇게 시청자를 울리고 웃기며, 조금은 먹고 살 만해진 80년대로 접어든 베이비 붐 세대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다독였다.
‘간난이’가 65% 넘는 시청률을 올리며 국민 드라마로 사랑받은 이유는 두 아역배우의 심금을 울린 연기 덕분도 있었지만, 그해 벌어진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중의 집단기억과 만났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 신정권은 대대적인 이산가족 찾기 미디어 이벤트를 벌였다. 내 어린 시절, 맞벌이 부모님이 돌아오면 오늘은 어떤 가족이 서로를 찾았고 감동적인 사연이 뭐였는지, 엄마 아빠께 중계해주는 게 일과였다.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된 이산가족 찾기는 5개월 만에 1만여 가족의 상봉을 이뤄낸 뒤 막을 내렸다. KBS ‘이산가족 찾기’와 MBC ‘간난이’를 돌려 보면서 리얼리티와 판타지, 논픽션과 픽션을 오간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애타게 불렀고, 흩어져있던 우리 DNA를 찾아냈다. 그해 많은 사람은 가족을 찾았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영구를 미국에 입양보낼 수 밖에 없었다.
‘간난이’ 이후 38년이 흘렀다. 속절없이 세월은 흐르건만, 배고픔과는 이별한 이 시대에 기억도 가물가물한 ‘간난이 ’드라마가 문득 떠올라 우리가 짊어졌던 그 이름 가난, 누이 같던 그 얼굴 간난이를 나즈막이 불러본다.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