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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04> 정인 소설가의 소설집 ‘누군가 아픈 밤’

폐지창고서 키운 문인의 꿈…고단함에 몸부림치는 삶 어루만져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1-04-18 19:44:59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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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지사업장 살던 중1때 첫 소설
- 2000년 43세 주부로 늦은 등단
- “소설 쓰기로 내 삶과 존재 증명”
- 연민으로 타인 아픔 보듬는 신작

크고 작은 일로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어떤 일은 삶 전체를 흔들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고 사연이 있다. 일일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지 않을 뿐이다. 누구나 비슷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정인 소설가의 신작 소설집 ‘누군가 아픈 밤’을 보았을 때 “지금 이 순간 내가 아프거나, 누군가 아프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고 있기에 그 아픔이 비록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해도 우리는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누군가 아픈 밤’을 읽는 동안, 삶은 참으로 애달프고 슬프다는 걸 느꼈다. 아플 때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람의 위로만한 약은 없다. 정인 소설가를 부산 구서동 금정산둘레길에서 만났다.

■읽을거리가 가득한 폐지창고에서 보낸 소녀시절

   
최근 소설집 ‘누군가 아픈 밤’을 펴낸 정인 소설가. 금정산 둘레길 구서동 구간에서 만났다. 그는 이곳 부산 구서동에서 16년째 살고 있다.
금정산 둘레길 자락에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만났다. 푸른 잎이 무성한 숲을 보면서 흙을 밟는 동안 마음이 편해졌다. 공기가 맑고 청량해서 잠시 마스크를 들추고 깊은 호흡을 해보았다. 속이 시원해지면서 ‘이런 게 숨 쉬는 거구나’ 싶었다. 정인은 구서동에서 16년째 살고 있다.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아침마다 이 길을 걸었어요. 산책도 하고, 생각도 하고…. 이 길이 좋아 이 동네를 못 떠나고 있지요.” 둘레길을 걷는 동안 띄엄띄엄 주민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도 일상의 스트레스를 잠시 내려놓고 비로소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고마운 길이다.

정인은 1958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2000년 계간 ‘21세기 문학상’ 신인상, 제7회 ‘한국소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집 ‘당신의 저녁’ ‘그 여자가 사는 곳’ ‘만남의 방식’ ‘누군가 아픈 밤’을 냈다. 제9회 부산작가상, 제18회 부산소설문학상, 제2회 노근리평화상(문학 부문), 제8회 백신애문학상을 받았다.

정인은 43세에 등단했다. “대학에서 국어교육학을 전공하면서 소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지만, 결혼을 하고 주부로 살면서 글 쓸 시간이 없었어요. ‘이대로는 안돼’라는 목마름이 온 몸을 쿡쿡 아프게 찔러왔죠. 그러다 소설학당을 알게 됐고, 다시 소설을 잡았습니다. 소설을 쓰는 일이 제 존재와 삶의 증명방법입니다. 나이가 더 들어 힘이 빠지기 전에 마음껏 써야죠. 지금은 장편소설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등단은 늦었지만, 그는 첫 소설을 중학교 1학년 때 썼다. “소녀 시절, 집에 늘 사람들이 많았어요. 아버지 사업장에 우리 가족이 살았거든요. 아버지께선 폐지를 모아 제지업체에 공급하는 일을 했는데, 트럭 3대를 모는 젊은 아재들과 일하는 사람이 북적거렸죠.” 작은 자기 공간 하나 없이 일하는 언니와 부엌방에서 함께 지냈지만, 그에게는 보물이 가득한 장소가 따로 있었다. 폐지를 쌓아놓은 창고였다. “창고에는 신문 잡지 만화 소설…. 읽을거리 천지였지요.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어요.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죠. 시 시조 반공표어 대회에서 상도 수차례 받았어요. 점점 긴 글을 쓰는데 익숙해져서 중1때 소설을 썼어요.”

그 소설 제목이 ‘슬픈 해후’이다. “아재들이 폐지를 가득 실은 트럭을 몰고 타지로 갔다가 밤늦게 돌아와 수돗가에서 푸득푸득 세수를 하는 소리를 듣곤 했지요. 저들은 왜 집을 떠나왔을까,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슬픈 해후’는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도시에서 일하며 돈을 모아 마침내 집으로 간 남자가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 무덤 앞에서 슬퍼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을 원고지 70매 분량으로 썼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당시 국어선생님도 놀랬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이걸 정말 네가 썼어?”라고 물었단다. ‘슬픈 해후’는 그 해 학교 교지에 실렸다.

■연민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삶

   
누군가 아픈 밤- 정인 /호밀밭
‘슬픈 해후’는 어쩌면 현재 정인 작품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슬프고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연민을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연민의 마음으로 사람들의 삶을 생각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유한성을 가지고 있기에 슬프고, 불안한 존재이니까요. 제 소설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집 ‘누군가 아픈 밤’에는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보았음직한 불안하고 슬픈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화마’는 집에 불이 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슈퍼마켓 운영이 어려워진 남편이 보험금을 노리고 화재를 유발한 것으로 의심되는데, 그 과정에서 아내가 느끼는 불안과 실망을 담았다. ‘누군가 아픈 밤’에는 자식들에게 버림받고서도 내내 자식을 기다리는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가, ‘소리의 함정’에는 층간소음으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아무 곳에도 없는’에는 아버지가 살뜰히 아낀 집이 팔려 원룸으로 변해버린 후 완벽하게 사라진 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식의 시간’에는 한국인 아버지 베트남, 어머니를 둔 혼혈여성과 재일교포 남성이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슬픔이 그려진다. ‘꽃 중에 꽃’은 평생 작은댁으로 핍박을 당하면서도 제 자리를 지킨 할머니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에 당한 능욕을 속으로 삭히며 죽어가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는 타인의 아픈 삶을 보면서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고, 그 상처가 남긴 흔적을 쓰다듬는다.

   
정인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언제나 삶의 아픈 곳에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소설집 ‘작가의 말’에서 그 마음을 이렇게 썼다. “우리의 삶은 대체로 고단하다. 화려해 보이는 삶의 뒷모습이 알고 보면 슬픔투성이일 수도 있다. 타인의 생에 대해 함부로 정의할 수 없는 이유이다. 곳곳에 지뢰처럼 숨어 있는 복병들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 생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마음으로 쓴 소설에는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이 있다. 삶이 애달프고 슬프지만, 살아갈 힘이 나는 것도 바로 그 연민이 있어서이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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