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화면 헤치며 살며시 다가와 은빛의 환상 심어준 그녀는 나만의 작은 요정’.
나른하고 몽환적인 도입부 음악이 귓가에 생생한 ‘샴푸의 요정’은 1988년 MBC 베스트셀러 극장에 소개된 단편 드라마였다. 당시 베스트셀러 극장은 드라마 작가를 꿈꾸던 이들의 등용문이었고 송지나 주찬옥 노희경 김순옥 같은 대작가들도 거쳐갔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출신 주찬옥 작가가 집필한 ‘샴푸의 요정’은 당시 초콜릿 CF 한편으로 최고 청춘스타로 등극한 채시라와 신인이었던 홍학표가 출연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온라인 탑골공원과 옛날 방송콘텐츠를 소환하는 ‘해피타임 명작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 1순위로 꼽히기도 한다.
CF 속 스타를 사랑해 광고회사에 취직한 ‘성공한 덕후(성덕)’인 주인공이 스토커를 무스 거품으로 퇴치하는 장면은 너무 엉성해 웃음을 주지만, 결국 채시라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꿈의 드라마였다고 할까. ‘샴푸의 요정’을 시작으로 방송 3사는 ‘질투’ ‘느낌’ 같은 트렌디 드라마의 포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샴푸의 요정’이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데는 드라마 배경 음악이 한몫한다. 뒷날 ‘황인뢰-주찬옥 콤비’를 이뤄 ‘여자 시리즈’ 히트작을 남긴 황인뢰 PD는 동아기획의 밴드 ‘빛과 소금’ 장기호에게 배경음악을 의뢰했고, 드라마 OST 역사상 가장 생명력이 긴 명곡이 탄생한다. 장기호 한경훈 박성식으로 이뤄진 ‘빛과 소금’은 김현식과 전태관 김종진의 ‘봄여름가을겨울’과 교류하며 세련된 음악을 추구했다.
황인뢰 PD의 요청에 가이드 곡을 만들어 전달했더니 이를 들은 황 PD가 ‘빛과소금’이 직접 불러주면 좋겠다고 해 갑자기 녹음하게 된 사연이 있다. 지금 들어도 가사·멜로디가 세련됐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최고 실력자들이 만든 노래 ‘샴푸의 요정’은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았다. 이승철 김진표 딕펑스 화사 정기고가 이 노래를 커버곡으로 불렀고 최근엔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새로운 감각으로 편곡해 불렀다. 한 드라마와 드라마 음악이 30년 넘도록 사랑받는다는 것. 이를 비단 복고 열풍으로만 해석해야 할까? 상상력과 시대를 앞서간 감각의 힘이 지금도 느껴진다.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