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침탈과 6·25전쟁 등 겪으며
- 한민족 만남·이별 애환의 장소로
- 가요사에 부산역 테마곡 많지만
-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가장 적합
- 시대 변천에 가사 바꿔 부르기도
벌써 몇 번째 제안인지 모른다. 부산역 광장에 노래비를 세우자고 필자는 틈만 나면 주장해왔다. 부산이 어떤 곳인가? 19세기 개항 이래로 항도 부산의 변화과정은 이 땅의 파란곡절 많은 근현대사와 그 맥을 고스란히 함께 한다. 한반도에서 일본과 가장 가까이 있어 제국주의 침탈의 세찬 파도가 먼저 밀어닥친 곳도 부산이었다. 식민지 압제를 견뎌내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 무려 100만 명이 밀어닥쳤던 곳도 부산이었다. 그 거친 파도를 부산은 모두 껴안아 주었다. 엄청난 역사적 시련을 모두 이겨내고 오늘의 번영을 이룩하기까지 부산은 얼마나 안으로 속울음 삼키며 어금니 깨물어 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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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역 광장의 1950년대(왼쪽)와 최근 모습. 필자는 이 광장에 부산역 노래비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신문DB |
이 땅에 대중가요가 자리 잡은 이래로 한국가요사 전체에서 부산 테마 노래는 차고도 넘쳤다. 그만큼 노래 재료가 되는 사연과 두께가 풍부했다는 이야기다. 가장 많이 쏟아졌던 시기는 6.25전쟁과 피란시기였다. 이후로 지금까지도 부산 테마 노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지난 시기 부산 테마 노래들이 슬픔과 고통을 주제로 한 것이라면 최근의 부산 테마 노래들은 발전과 번영의 약동하는 기운까지 담고 있어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한 시대의 고난을 너끈히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다는 징표이다.
이제 현단계에서 우리가 시급히 실천해야 할 과제는 지난 시절 부산 테마 노래 가운데서 가장 심금을 울렸던 민족의 노래 하나를 골라 부산역 광장에 기념 노래비를 세우는 일이다. 왜 하필 부산역인가? 그것은 참으로 많은 사람이 오고간 만남과 이별의 장소이자 공간이었고, 이곳을 배경으로 부산근현대사의 형성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별의 부산정거장과 ‘노가바’
부산역을 테마로 한 노래들도 많지만 그 가운데서 불후의 절창 하나를 꼽는다면 단연코 필자는 ‘이별의 부산정거장’ 한 곡을 추천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이 노래 한 곡에 부산정서의 어제와 오늘이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에 밀리고 쫓겨 생존을 위해 내려온 막다른 터전이 부산역이었고, 거기 석삼년 동안 심신을 의탁하다가 부산에 대한 지극한 감사와 미련의 눈물을 뿌리며 떠난 곳도 부산역이었다. 이른바 ‘가요황제’로 불리던 가수 남인수가 이 노래를 발표했는데 가수는 무대공연에서 앙코르 요청이 있을 때마다 오로지 이 곡만 단골메뉴로 불렀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에~’란 대목에서 ‘경상도 사~투리에~’로 소절의 중간을 길게 빼어 악곡의 긴장효과를 고조시키는 방법으로 관중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이 노래는 또한 ‘노가바’, 즉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방법으로 많이 애창됐다. 가요팬들은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 곡을 최고의 곡목으로 선택했다. 필자가 조사한 이 노래의 노가바 버전은 무려 스무 가지 종류가 넘는다. 그 내용들은 시대별로 분류가 되는데, 1960년대식 노가바로 부른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주로 가정파탄과 부부이별, 혹은 경제의 불안정 과 관련된 내용이 많았다. 삶의 안정을 이루기가 어려웠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970년대 노가바로는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과 풍자, 사회적 약자의 탄식과 절망, 불성실한 자녀에 대한 불만 토로, 가정규범의 붕괴와 가족해체현상, 외국어 남용과 사대주의적 태도에 대한 비판 및 풍자가 주류를 이루었다. 1980년대 노가바는 이 노래 음률의 단순 즐김이나 그러한 양식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의 노가바로는 노동자의 인권유린과 차별, 농촌이주민의 빈곤과 설움 따위로 표현되기도 했다. 2000년대로 접어들어 이 노래의 노가바 가사는 서울로 면접 보러가는 취준생(취업준비생)의 탄식과 좌절심리를 나타내기도 했다. 2010년대의 노가바는 노년기세대의 낙천적 삶을 다룬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노가바는 이 정도로 대중의 집중적 사랑과 관심을 줄기차게 받으면서 지속적으로 시대적 특성과 변화의 내용을 담아왔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경과와 사실은 부산역 광장에 이 노래를 새긴 노래비가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갖게 한다. 혹자는 가수 남인수의 일제말 행적을 거론하며 그 부당함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편협한 단견이라 하겠다. 그들은 남인수가 분단 초기에 발표한 노래들, 이를테면 ‘흘겨본 삼팔선’, ‘가거라 삼팔선’, ‘남아일생’,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여수야화’, ‘휴전선 엘레지’ 등의 가요작품에 반영된 민족통일과 분단극복에 대한 염원과 충정을 가슴에 따스히 껴안고 담아주기를 바란다.
■수없이 많은 부산역 테마 히트곡
여기서 전국의 기차역에 세워진 노래비의 현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경북 안동역의 ‘안동역에서’(진성), 북한강 수변 백양리 강촌역의 ‘강촌에 살고 싶네’(나훈아), 대구시 고모역의 ‘고모역’(박해수), 민통선 가까운 장단역의 ‘잃어버린 30년’(설운도), 강원도 정선 구절리역의 ‘아우라지’(정공채), 대전역 광장의 ‘대전블루스’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이 노래비들은 모두 그곳 지역 주민들, 가요팬들의 깊은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자부심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가요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산 테마 노래가 발표된 부산에서 기차역에 노래비 하나 없다는 사실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문화적 빈곤성을 의미한다. 외지에서 철따라 부산을 찾는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부산역 광장에 내려서 처음으로 대면할 수 있는 부산의 뜻 깊은 상징물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때마침 새로운 부산시장도 선출되었고, 새로운 행정에 대한 시민의 기대도 자못 크다고 할 터인데 이번에도 노래비 건립의 갈망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차제에 적절한 위치를 선정해서 ‘이별의 부산정거장’ 노래비를 부산역 광장에 건립하게 되기를 필자는 충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부산역 테마로 발표된 곡목들을 살펴보면 ‘눈물의 경부선’(남일연), ‘이별의 부산정거장’(남인수), ‘달리는 완행열차’(남인수), ‘울리는 경부선’(남인수), ‘이별의 종열차’(남인수), ‘원한의 북행열차’(정향), ‘부산역 이별’(방운아), ‘비오는 부산역’(김수동), ‘남행열차’(남상규), ‘울리는 야간열차’(반야월), ‘눈물의 구포다리’(이갑돈), ‘떠나가는 경부선’(이상열), ‘부산역 이별’(장고), ‘밤 깊은 부산역’(안세건), ‘이별 없는 부산정거장’(현숙) 등을 먼저 손꼽을 수 있다. 검색하면 훨씬 더 많은 아카이브가 추가될 것이다. 이 가운데서 우리는 부산역 테마 노래의 으뜸으로 전혀 망설임 없이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최고의 절창이라 규정하고자 한다. 이 노래는 모든 부산역 테마 노래를 한 자리에 모으고 총괄하는 압권(壓卷)이라 하겠다. 부산역 광장에 노래비를 세우자.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