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6년 젊은 생물학자가 펴낸 책
- 다윈과 달리 DNA로 진화론 분석
- 끝없는 복제와 전달의 과정 통해
- 불멸하는 유전자에 관한 이야기
- 의인화한 책 제목 오해 부르기도
- 인간의 번식 본능 이기적이지만
- 교육을 통해 이타적인 행동 가능
- 제2 자기복제자 ‘밈’은 문화 관여
- BTS 신드롬 세계로 퍼트리기도
유전자를 통해 세상을 보면 어떨까 하는 질문에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80)가 답했다. 우리는 어느새 유전자란 단어에 익숙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면 아는 게 동난다. 저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유전자가 인간을 움직이게 할 뿐만 아니라 이기적이라고까지 표현했는데 그 의미는 뭘까. 인간은 꼼짝없이 이렇게 작은 유전자에 통제당하는 존재인가. 이런 의문을 밝혀주는, 오래되지 않은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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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NA 이중 나선 구조는 세 가지 유형을 보인다. 왼쪽부터 A, B, Z형. |
얘기는 생명이 출현한 인류 고향, 고대 바다에서 시작한다. 40여억 년 전 지구 지표면에 생성된 원시 바닷속을 몇몇 원자가 떠다녔다. 그 원자들이 결합·복제하면서 생성된 유기물이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생명체 기원은 찰스 다윈(1809~1882)이 설명했다. 종(種)이라는 개체가 자연선택으로 적자생존한다는 이론을 담은 ‘종의 기원’(1859)은 당시 찬사와 조롱을 동시에 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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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색체에 실타래처럼 감긴 DNA를 확대한 모습. 4가지 염기(A-T, G-C)가 짝을 이룬 이중 나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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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년 뒤 1976년 비슷한 일이 생겼다. 찬사가 더 많았다. 35세 생물학자가 펴낸 대중 과학도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신다윈주의였다. 다윈은 종(개체) 단위로 진화론을 살폈지만, 도킨스는 세포 속 분자 사슬인 유전자(DNA)를 파고든 점이 달랐다.
도킨스는 인간은 맹목적인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이기적 생존 기계라 했다. 냉혹한 내용인지라 대중 눈치가 보였다. 책 제목을 정할 때 고심한 이유다. ‘불멸의 유전자’ ‘이타적인 운반자’ ‘이기적 유전자’ ‘협력적 유전자’가 후보작이었다. 출판사는 저자와 달리 ‘이기적’이란 센 단어를 골랐다.
유전자를 의인화한 책 제목은 오해를 불렀다. 유전자가 의식을 가진 존재로 여길 틈을 주었기 때문. 인간 몸속 1015개 세포에 떠다니는 유전자가 의식을 가졌다니, 세상에! →유전자가 이기적이니 인간도 마찬가지란 얘기네→그런데 이기심 없는 사람도 있잖아? 도킨스는 진화론상 ‘이기적’이란 단어를 “자신을 유지하려는, 이익·이로움을 좇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유전자는 세포 속에서 자연선택돼 살아남는다. 이타적이거나 경쟁에 진 유전자는 사라진다. 유전자=자기 복제자, 개체(인간)=운반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올랐다. 사전은 이기적이란 뜻으로 ‘(유전자 또는 유전물질에 대하여) 표현형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으나 사라지지 않고 퍼지는 경향’을 추가했다.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 이타적이기도 한 이유가 11장 ‘인간은 무엇인가’에 나온다. 알고 보면 간단하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이타 행동을 하는 게 가능하다는 설명. 유전자에 반기를 들기도 한다. 피임이 좋은 예다. 자손을 퍼뜨리라는 유전자 메시지를 거부하는 게 피임이니까. 이는 인간만이 가진 특징이다.
또 인간은 유전자와 밈이란 두 종류 자기복제자를 가졌다고 도킨스는 주장했다. 인간은 문화를 생산하는 개체인데 그 문화는 유전자처럼 ‘전달하고 모방하면서 자기복제’하는 속성을 지녔다. 제2 자기 복제자. ‘밈(Meme)’이라고 불렀다. 모방이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 어근인 ‘미멤(Mimene)’을 ‘Gene(유전자)’처럼 단음절 단어인 밈으로 줄였다. 가령, 신앙·사상·표어가 밈이다. 트로트 같은 유행가, 청년이 선호하는 음료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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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의 기원’ 발표 이후 찰스 다윈은 유인원으로 희화화되기도 했다. 1871년 삽화. |
밈은 인간 뇌에 복사되고 세대를 거쳐 전달된다. 음악 그룹 BTS가 발표한 노래 ‘다이너마이트’는 강력한 밈. 세계 각국에 사는 아미가 전달자다. BTS나 아미는 언젠가 죽겠지만 ‘다이너마이트’는 밈으로 지구가 존재하는 한 온전히 전승된다는 얘기. “인간 진화에 유전자만 간여한다면 인류 미래는 볼 게 없을 겁니다. 다행히 인간은 밈이란 제2 자기 복제자를 통해 진화하는 미래를 기대합니다.” 도킨스는 인간론과 유전자학이 손잡은 생명철학을 폈다.
6장 ‘유전자의 행동 방식’은 유전자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개체일수록 서로 이타적으로 대한다. 유전자 진화론상 외삼촌이 친삼촌보다 조카를 더 아낀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삼촌-조카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비율이 삼촌-조카 그것보다 높아서이다.
부모가 자식을 열성을 다해 돌보는(도킨스식으로 말하면 자식 생존 확률을 높이려는 노력) 이유도 마찬가지다. 부모 유전자 보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부모와 자식 간 정을 남다르게 묘사한다.
이 책은 살갑지 않다. 출간 초기에 흔했던 사례가 있다. 특히 젊은 독자들이 읽은 뒤 인생(인간)에 허무감을 느껴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킨스는 ‘유전자는 불멸이지만 그걸 담은 인간은 유한한 존재니 어쩌랴’는 식이다. ‘인간은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 사막에 부는 모래바람’ 운운할 때는 딱 염세 철학자다. 유구한 유전자에 견줘 인생은 찰나니까 그렇다. 사실 인류는 유전자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데 익숙지 않다. 도킨스는 냉정하다. “기계는 수명을 다하면 폐기되죠?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인간은 자의가 아니라 유전자 기준으로 자연선택돼 생존하니까요.”
그는 과학에서 도덕·정치가 분리되길 원한다. 하지만 그 인간 유한론을 듣다 보면 역설을 만난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유전자를 가진 인간은 하찮은 게 아니라 그래서 오히려 고귀한 존재라는 생각. ‘유전자는 길고(사실상 죽지 않고) 인생은 짧은’바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 아니나 다를까, 진화생물학을 전공한 이 ‘도덕 선생님’은 이랬다. “인간이 가진 생물학적 본성은 이기적입니다. 자식들에게 이타주의와 관대함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죠.” 이기적 인간을 교육하지 않으면 정말로 그렇게 된다나.
도킨스는 유전자 설명을 종합 정리하며 얘기를 마무리 짓는다. 첫째. 유전자는 장수, 다산성, 복제 정확성이란 3대 속성을 띤다. 인간은 오래 살아봤자 100여 년이지만, 유전자는 일단 만들어지면 무수한 세대 전달을 거쳐 1억 년은 살아남는다. 무한 복제, 거의 불멸. 둘째, 복제는 정확하면서도 ‘오류’를 동반한다. 이런 돌연변이 유전자가 생기면 배(胚)가 달라지고 개체는 전에 없던 행동을 한다. 생명체는 그 속에서 지금까지 생존해온 유전자가 프로그램한 기계라는 주장이 확인된다. 셋째, 유전자 자체는 뭘 목적 삼지 않는 무심한 존재다. 여기서 도킨스는 ‘인종 편견’에 일침을 놓았다. “자기와 신체상 닮지 않은 개체를 배척하는, 혈연 선택을 거쳐 진화해온 경향이 비이성적으로 일반화한 결과라 봅니다.”
저자는 유전자학에 기초한 인간은 기생자 유전자가 합체된 진화 결과물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A 유전자와 공생관계인 B 유전자가 기생하다가 어느 순간 한 몸으로 합쳐졌다는 데 전문성을 띤 이론. 클린턴 리처드 도킨스는 현역 영국 진화생물학자이자 대중 과학 저자다. 저서 ‘확장된 표현형’(1982년)을 스스로 가장 높이 평가한다. 이 책에서 유전자 표현형은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도구인데 그 효과가 다른 생명체 신경계 속까지 파고드는 ‘긴 팔’을 가진다고 역설했다. 자연 선택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저서 ‘눈먼 시계공(1986년)’까지 역작 3권을 냈다. 신앙을 문화 자기 복제자인 밈으로 간주할 정도로 철저한 무신론자. ‘만들어진 신’(2006년)은 창조론을 비판한 책. 영국 성공회 대주교에 대들기(2012년), 이슬람 폄하 발언 지지(2015년), 우생학을 지지하는 주장(2020년 2월) 같은 구설도 꾸준히 생산하는 유전자를 가졌다.
그가 주관하는 강연회에 가면 이기적 유전자나 확장된 표현형은 우주 어떤 장소에 존재하는 생명체에게도 적용되는 생명관이라고 역설하는 목소리를 듣게 될 터이다.
서평가·세상관찰자
◇ 용어로 본 진화 생물학
저자는 유전자 진화 이론을 쉽게 풀어 설명하려 애썼다.
▷근연도(近緣度 Relatedness): 두 혈연자가 1개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을 나타내는 지표. 부모와 자식 간은 1/2. 형제자매 1/4, 조부-손자 1/4, 사촌 간 1/16. 촌수가 멀어질수록 혈연도 감소가 수치로 확인된다.
▷브루스 효과(Bruce Effect) :암컷 새가 제2 수컷 새와 살게 됐다. 이때 암컷이 이전 수컷의 새끼를 가졌을 경우 유산되는 현상. 브루스는 발견자 이름. 새 수컷이 분비하는 화학물질이 유산을 유발한다고 알려졌다. 유전자 진화론상 암수 모두 생존에 유리.
▷바이로이드(Viroid): 플라스미드. DNA 조각으로 박테리아 세포에 많다. 두세 유전자로 구성돼 숙주 염색체에 끼어들어 변이(질병)를 유발한다. 도킨스는 반란 유전자라 했다.
▷ESS(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진화상 안정된 전략이자 생존에 가장 유리한 방식. 매파(맹렬히 싸우느냐) 비둘기파(싸움을 자제하느냐) 중 택일해 성공률을 최대로 높이는 게 ESS. 지도자에 꼭 필요하다.
▷안정 다형(安定 多型 Stable Polymorphism):유전학상으로는 한 개체 내 매파 유전자와 비둘기파 유전자 비율이 유전자 풀 안에서 안정을 유지하는 상태 즉 ESS를 이룬 상황. 인류는 안정 다형을 얻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의태(擬態 Mimicry):흉내 내기. 다른 개체(물체)를 흉내 내서 이익을 취하는 생존법. 가령 곤충 배자바구미는 새똥을 닮아 포식자 눈을 속인다.
이밖에 시스트론(Cistrion) 역위(Inverion) 토큰(Token) 치사유전자(Lethal Gene) 같은 용어도 알아둠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