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북구 예술가팀 대표 맡아
- 정부 공공미술 프로젝트 참여
- 코로나로 어려운 예술인 도와
- 20대 신예부터 80대 원로까지
- 지역작가 발굴해 미술품 섭외
- 가정이나 일터 원하는 곳 대여
- 참여작가 35인 미술인회 결성
- 전시회 열고 주민교실도 개설
- 구포역사 옹벽 입체부조 설치
우리 일상에 예술은 어떻게 스며드는가? ‘조봉권의 문화 동행’이 사냥꾼이라면, 이 주제는 추적 1순위다.
최근 부산 북구의 주민센터(행정복지센터), 육아종합지원센터, 구청 로비와 여러 사무실에 미술품 60점이 한 점 한 점 내걸렸다. 가정 두 곳도 포함된다. 지난 6일 미술 기획자 김미희(51) 씨 안내로 몇 군데 돌아봤다. 북구청 로비에는 1941년생 원로 김인환 화백의 ‘역사의 풍경’(145.5×112.1㎝)이 등불처럼 공간을 밝히고 있다.
“부산 출생으로 북구 금곡동 주민이기도 한 김인환 선생은 홍익대 서양화과와 프랑스 파리 아카데미 그랑슈메르에서 공부했고, 1969년 혁 동인, 1998년 부산시립미술관 개관전 등에 참여했으며, 지난해 금곡동에 있는 공간 소두에서 화업 60주년 전시를 열었습니다. 부산시립미술관이 재조명해야 할 작가로 저는 봅니다.” 김미희 씨가 옆에서 옹골지게 설명한다. 로비에서는 차경복(77) 작가의 따뜻하고 독특한 그림 ‘봄날은 간다’와 ‘둥지’도 구청 방문객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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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큐레이터’ 김미희 씨가 부산 북구청 로비에 ‘대여’ 방식으로 전시한 김인환 화백의 ‘역사의 풍경’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kimsh@kookje.co.kr |
■ 일터에 생기 보태는 렌탈 예술품
북구육아종합지원센터로 갔다. 밝고 깨끗한 이 공간의 복도에는 1995년생 이은정 작가의 발랄한 그림 ‘차이 없는 구별’(162.2×357.6㎝)이 먼저 눈길을 잡는다. 이곳에는 김정희(60) 작가의 격조가 흐르는 시화 ‘자목련 블루스’를 비롯해 작품 8점이 생기를 보탠다. 손장희 센터장은 “이렇게 그림을 렌탈(대여)해 건 뒤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손장희 센터장의 설명 가운데 ‘렌탈’이라는, 지역 예술계에서는 약간 낯선 말을 만난다. 어떤 일이 펼쳐지고 있는 걸까? 이를 알아보려면 문화체육관광부가 하고 있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동네 미술’을 살펴야 한다. 문체부는 지난해 여름 ‘2020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동네 미술’ 사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에 놓인 예술인을 지원하고자, 전국 228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총사업비 948억 원을 들여 시행하는 공공 미술 프로젝트다. 예술인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민의 예술·문화 향유 기회를 늘리는 ‘예술 뉴딜’이다. 정부의 코로나 대응 3차 추경예산을 통해 확정된 사업이며, 부산에서는 16개 구·군이 참여해 각 평균 4억 원 예산을 쓸 수 있다.
참여 팀은 함께할 예술가 35명 이상을 모집해(대표 및 행정 각 1인 별도) 작품설치형을 비롯해 ▷문화적 공간 조성 및 전시형 ▷거리 편의시설 조성 등 도시재생형 ▷주민 참여 공동체 프로그램형 ▷사진 다큐멘터리 등 지역기록형 ▷다수 유형 복합추진형에서 선택한다.
■ 지역 상황에 맞는 방향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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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아(가운데) 작가가 주민을 위한 수채화 실기 수업을 하고 있다.
부산 북구 공공미술 작가팀 제공 |
김미희 씨는 부산 북구 예술가팀 대표를 맡아, 선정 절차에 응모해,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우리동네 미술’에 참여하게 됐다. “제 경우는 북구가 주체가 돼 참여 작가를 먼저 모집한 뒤에 기획자로 결합한 형태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래서 일단 참여 작가 구성과 특징부터 잘 살펴야 했다. “북구에 살거나 북구에 작업실이 있는 작가가 많고, 1941년생 80대 원로부터 1997년생 20대 신예까지 연령대가 다양해 20·30대 10명 40·50대 15명 60·70·80대 10명을 모집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회화 분야 작가입니다.” 이런 ‘현실’을 바탕으로 ‘다수 유형 복합추진형’으로 유형을 잡았다. ‘작가주의에 치우치지 않겠다’ ‘공감과 공통감을 중시하겠다’는 원칙도 세웠다. 이를 거쳐 ▷주민 실기 ▷작품 대여(렌탈) ▷창작 전시 ▷설치로 이뤄진 세부 프로그램을 추출했다.
다른 지자체는 대체로 랜드마크 성격의 조형물 창작·설치가 많은데, 북구는 주민 참여형이나 주민-작가 교류형의 비중이 한결 커 보인다. 이는 참여 작가가 모두 회화 분야인 점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공공미술은 방식이 다양하므로 꼭 조형물 설치 중심일 필요는 없다는 기획자 김미희 씨의 생각이 반영된 듯했다. 게다가 북구 팀이 조형물 창작·설치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주민 참여나 주민-작가 교류를 기본에 놓고 공공미술 작업을 펼친다는 것은 한 가지 절대 조건을 필요로 했다. 바로 ‘기획자가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 구체적으로 원활하게 연결하는 것’이다. 기획자 김미희 씨가 ‘우리동네 큐레이터’로 거듭난 순간이다.
■ 발바닥 땀나도록 다니며 연결하다
“참여 작가 35명의 작품을 모으고, 주민·기관의 신청을 받아 1년 정도 대여해, 미술을 삶터에서 좀 더 가깝게 느끼게 돕고, 작가에게 유무형 도움도 주자는 게 작품 대여 사업 취지입니다.” 그는 “작품 대여 신청이 들어오면 현장부터 일일이 방문했다”고 말했다. “덕천3동 행정복지센터에 중진 류명렬 작가의 100호짜리 소나무 그림이 잘 어울릴 것으로 판단했는데, 적당한 공간이 더 많이 보여 3점을 걸었고, 만덕3동에는 4점을 대여했죠.” 그렇게 60점이 주민 곁으로 갔다.
주민 실기 프로그램(아트클래스)을 마련하고, 전시회를 준비하려면 모이고 만나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탓에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작가들 작업공간이나 집으로 일일이 조심조심 찾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밤에 작가의 아파트 앞에서 만나 이야기하기도 했다. 북구의 작가와 작업 판도가 차곡차곡 파악됐고, 작가들과 공감대도 형성됐다. “주민을 위해 8회(회당 2시간 이상)짜리 실기수업을 요청하자 작가 19명이 강사로 나섰고 주민 53명이 수강했는데, 코로나19로 신청인을 다 수용하지는 못했어요.”
참여 작가들은 지난 2월 24일부터 3주간 도시철도 구포역사 내 감동진갤러리에서, 수강생들은 같은 날부터 2주간 북구 문화예술플랫폼 내 만세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젊은 참여작가 김정아 허수빈 씨는 “북구에서 작업하면서 동료 작가와 만나 교류하고 주민과 함께 호흡한 점이 참 좋았다”고 말했다. 전시회장에서 참여 작가 35인은 “이번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해 작업의 숨통을 튼 것을 계기로 북구미술인회를 창립해 오는 9월 창립전을 열겠다”고 밝혔다. 어떤 ‘연결’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 공공미술, 찬찬히 평가되길
현재 북구 예술가팀은 도시철도 구포역사 아래 옛 구포다리 가는 길 옹벽에 중진 조영재 작가의 이미지를 활용한 40m 길이 입체부조를 설치하는 작업과 철도 구포역 육교 광장에 신진 이은정 작가의 아트벤치 4개와 디자인 작품을 이달 말까지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순탄치 않은 과정이었다. 김미희 씨는 “이 사업에 응모해 심사를 받을 때 구포역 육교 광장에 조형물을 만들 경우, 이곳 노숙인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검토해보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애초 이를 수용할 여건이 되지 못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심사 과정에서 ‘왜 주(主)작가와 보조작가 구분이 뚜렷하지 않는가’ 하는 지적이 몇 번 나왔다. 그는 이 지적 또한 단호히 거부했다고 한다. “‘우리는 보조작가 없습니다. 모두 주작가입니다’고 답했죠. 저는 이 표현을 예술인 개인에 관한 존중의 문제로 받아들였거든요” 그런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본 정명희 북구청장이 지난 2월 말 전시회를 보고 난 뒤 이런 말을 했다고 김미희 씨는 떠올렸다. “이런 게 공공미술이 할 일 아니겠어요?” ‘우리동네 큐레이터’가 할 일은 여전히 많은 것 같다.
이와 관련해 현재 부산 등 전국에서 펼쳐지는 많은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관해 너무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다양한 각도에서 살피고 평가할 필요가 있겠다.
선임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