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항쟁 가해자 겸 피해자로
- 아들을 위해 복수하는 이야기
- 저예산 영화 노 개런티로 출연
- 이정국 감독 캐스팅 부탁하자
- 시나리오 좋아 하루 만에 승낙
- 광주시민 촬영장·밥 제공하고
- 주요장면 직접 출연 마다 안해
국민배우 안성기가 4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반성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바로 5·18 민주화운동 41주년을 앞두고 개봉한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를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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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에서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고, 그때를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반성 없이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하기로 한 오채근 역을 맡은 안성기. 그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오채근을 연기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엣나인필름제공 |
‘아들의 이름으로’는 데뷔작 ‘부활의 노래’(1990)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장편 극영화에서 최초로 다뤘던 이정국 감독의 작품으로,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오채근이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성 없는 자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안성기는 5월 광주 때문에 현재에도 괴로워하며, 반성 없이 호의호식하는 당시 계엄군의 책임자들에게 복수하려는 오채근 역을 맡았다. 저예산 영화라 노 개런티로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투자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최근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만난 안성기는 “‘아들의 이름으로’는 지난해에 개봉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1년을 늦춰 개봉하게 됐다. 이렇게 관객과 만난다는 것이 기쁘고, 상당히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고 영화 개봉 소감을 전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자신이 주연을 맡은 영화 ‘종이꽃’ 개봉 즈음에 건강이 좋지 않아 홍보 일정에 모두 불참했지만 이제는 건강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영화가 지닌 의미도 좋았고, 영화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시나리오여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며 “아직까지도 1980년 5·18에 대한 아픔이 남아있기 때문에 관객분들에게도 큰 울림을 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한 안성기에게 ‘아들의 이름으로’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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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
‘아들의 이름으로’는 5·18 민주화운동을 최초로 다룬 장편 영화 ‘부활의 노래(1990)로 데뷔한 이정국 감독이 40여 년이 지나 지금의 관점으로 5·18을 바라보는 영화를 그리고자 연출한 영화다. 적은 예산으로 제작하려고 했기 때문에 소위 급이 있는 기성 배우를 캐스팅할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 누군가의 제안으로 안성기에게 연락을 하고 이메일로 시나리오를 보냈다. “이 감독이 보내온 시나리오를 봤는데, 아주 느낌이 좋았다. 사건이 워낙 무겁고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오채근이라는 인물을 쭉 따라가다 보니 드라마틱했다.” 시나리오를 읽은 안성기는 다음날 이 감독에게 연락했고, 그렇게 의기투합하게 됐다.
안성기는 5월 광주에 대한 영화에 이미 출연한 바가 있다.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2007)에서 퇴역 장교로 진압군에 맞서 시민군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맡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와는 결이 다른 인물을 맡게 됐다. “‘화려한 휴가’ 때 박흥수라는 인물은 캐릭터가 단순했다. 그런데 이번 오채근은 복잡한 인물이다. 가해자로서 미안한 마음, 죄스러운 마음, 반성하는 마음이 있다. 반면 피해자로서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연기하는데 힘들었다.” 오채근의 캐릭터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는 5월 광주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존에 5월 광주를 다뤘던 ‘꽃잎’ ‘26년’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등 피해자 관점에서 5·18을 바라보는 영화들과는 차별점이 있다. 마지막에 오채근이 복수를 앞두고 고백을 하면서 모든 감정을 쏟는 장면은 영화의 주제인 ‘반성’과 ‘용서’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따뜻하고 즐거웠던 촬영 현장
‘아들의 이름으로’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작품으로, 광주시와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영화답게 모든 면에서 광주 시민들과 함께 만들었다. 특히 광주 시민들은 촬영 장소를 무상으로 제공하는가 하면 배우와 스태프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고, 필요하면 직접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서울의 식당으로 나오지만 촬영은 광주의 한 식당에서 촬영했다. 그곳 식당 주인 역할을 실제 주인이 하셨다.” 원래는 연극배우가 맡았던 역할이었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곤혹스럽던 차에 실제 식당 주인이 흔쾌히 출연을 승낙해 준 것이다. 이외에도 현지 시민들이 영화 속 평범한 시민의 모습 그대로 출연해 주었다. “그분들은 아마추어지만 사실적이고 진실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적으로도 도움이 됐다.”
안성기에게 ‘아들의 이름으로’의 촬영 현장은 특별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철인들’(1982),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에서 함께 출연한 적이 있는 박근형과 30년 만에 다시 연기 호흡을 맞췄다. 박근형은 5월 광주의 책임자 중 한 명이자 오채근의 복수 대상인 박기준 역을 맡았다. “‘철인들’에서는 같이 주연을 맡아서 촬영을 했었다. 오래간만에 박근형 선배님과 촬영을 하니까 좋았다. 늘 나이 어린 후배들과 하다가 기댈 곳이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영화배우 생활을 하면서 처음 경험한 것이 있다. 모든 배우들이 의상을 각자 마련했고, 분장도 알아서 한 것이다. “배우에게 중요한 분장이나 의상 팀이 따로 없었다. 피가 나는 장면이 있었는데, 아무도 소품 피를 어떻게 칠하는지 모르더라. 그래서 내가 직접 칠했다.” 저예산 영화라 촬영 현장이 열악하고 진행이 매끄럽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영화가 지닌 진정성을 믿으며 힘을 합쳐 한 편의 영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한편 안성기는 영화 ‘실미도’(2003)에서 탄탄한 상반신을 노출해 꽤 오래 회자됐는데, 이번에도 영화 초반에 그에 못지않은 상반신을 보여줘 화제가 될 듯하다. “‘실미도’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가끔 웃통을 보여준다(웃음). 오채근은 뭔가 운동량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노출을 한 것이다. 운동을 늘 해왔기 때문에 특별히 준비한 것은 없다.” 게다가 고등학생과 젊은이를 상대로 꽤 난이도가 있는 액션 연기도 펼쳤다. 특히 허리띠를 도구로 사용한 액션이 인상적이다. “애초 시나리오에 허리띠가 나왔다. 이 감독을 처음 만난 날 허리띠를 풀어서 때리는 시범을 보이더라. 영화적으로 그 부분이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반성과 용서의 영화
1980년 5월 당시 안성기는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때는 매스컴을 정부와 군부가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광주 밖으로 5·18 광주의 참상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나라에서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것만 알았다. 광주에서 무슨 일이 났다는 것만 알았다. 한참 후에 해외서 들어오는 자료를 보며 내가 알고 있던 5·18 광주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41년이 지났지만 5·18 광주의 책임자들은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고 있으며, 그 고통은 아직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5·18 광주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지만 광주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단 5·18 광주 책임자뿐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 나올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픔과 고통이 남아있다. 우리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며, 화해하는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 국민 배우 안성기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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