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륜호수 발원지 찾아 나서니
- 부모님께 잘못한 것만 생각나
- 저마다 정원서 온갖 꽃 키워
- 부모는 ‘자식’ 학자는 ‘학문’
- 잎만 무성한 내 詩 만개할까
- 물은 장애물 만나야 소리 얻어
- 진퇴양난 순간 물처럼 흐르길
녹음방초 우거진 오월, 산문 밖 어린 연두가 녹색으로 철이 들어갔다. 어버이날 찾아간 두 번째 ‘시 둘레길’은 부모님 은혜를 헤아려보는 여행길이었다. 내리사랑의 근원을 찾듯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읊조리며 오륜호수의 발원지를 찾아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오륜호수는 부산 금정구 회동수원지 일부를 일컫는 별칭이다. 숲은 영혼들로 두근거렸다. 푸른 잎사귀들이 온 산을 번쩍 들어올렸다. 산이 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옮겨가지 않는 것도 나무뿌리의 사랑이 깊기 때문이다. 흙은 겨울 내내 짠 초록 카디건을 나무들에게 입히느라 분주했다. 일필휘지. 초록 물감을 푹 찍은 햇빛의 붓끝이 명암을 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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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록이 온 산으로 번지는 5월, 숲은 연두를 벗고 짙은 푸른색 옷으로 갈아 입고 있었다. 어버이날인 지난 8일 찾아간 부산 기장군 철마면 소산길의 무인 카페 ‘풍경속으로’ 모습이다. |
■ 소산마을 이팝꽃 속으로
회동수원지, 오륜호수 물의 시원은 ‘소두방산’ 아래 소산벌이다. 소산벌을 출발한 물은 곰내계곡을 거쳐, 철마 장전천을 굽이돌아 금정구 선동 상현마을로 흘러든다. 나는 그 물의 시원을 찾아 철마 쪽으로 차를 몰았다. 추파 오기영 선생 ‘장전구곡가’ 시비(기장군 철마면 장전리)를 지나 소산마을(기장군 철마면 웅천리)로 갔다.
동구 밖까지 마중 나온 이팝나무가 고슬고슬한 고봉 이밥 한 상을 차려내었다. 이밥 냄새에 글썽 차오른 눈물이 눈두둑을 넘쳤다. 좀 더 형편이 나아지면 그때 하리라 미룬 효도, 부모님은 기다려주시지 않았다. 부모님께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만 생각났다. 저 먼 산에서 들려오는 새 울음조차 ‘슬퍼, 슬퍼’로 들렸다. 보릿고개에 쉰둥이로 태어난 나는 젖배를 곯았다. 이집 저집 젖동냥으로 자랐다. 밥만 보면 허겁지겁 식탐이 많아진 것도 젖배를 곯은 탓이다. 마른 젖을 빨던 나는 엄마의 등골을 다 빼먹은 불효자식이었다. 등골을 내어준 어머니가 무논에 논고동 빈 껍질로 둥둥 떠다녔다. 오늘은 하얀 이팝꽃으로 핀 어머니가 차려주신 고봉 이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자 둥근 낮달이 남산만 해진 내 배를 흐뭇하게 쓰다듬었다.
■ 무인 카페의 우물과 ‘자화상’
소산마을 위 소두방재에 이르자, 무인 카페 ‘풍경속으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타샤 투더(동화작가·그림작가)의 책 ‘타샤의 정원’을 보았다. 20여 년간 그곳을 꽃대궐로 가꾼 주인장에게서 타샤 투더의 자연주의 삶이 보였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 정원은 물리적 세계일 수도, 정신적 세계일 수도 있다. 저마다의 정원에서 기르는 꽃들은 무엇일까? 부모에게 꽃은 자식, 학자에게 꽃은 학문, 도공에게 꽃은 도자기, 나의 꽃은 시이다.
나의 정원은 퇴비가 부족하여 시 꽃은 피우지 못하고 잎만 무성하다. 이곳 온갖 꽃은 주인장 발자국 소리와 우물물을 먹고 자란다. 자라지 않는 내 시도 ‘풍경속으로’의 우물물을 마시면 한 뼘 더 클 수 있을까? 이 우물은 산의 맑은 눈동자를 닮았다. 두레박으로 퍼 올린 애송시 한 수를 우물가 노란 수선화에게 들려주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 홀로 찾아가선 /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 가을이 있습니다 //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 가엾어집니다 /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 그대로 있습니다 //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 그리워집니다 //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윤동주 ‘자화상’ 전문)
시인 윤동주는 우물을 통해 삶과 내면을 본다. 나는 그 우물에서 사람거울을 찾았다. 내가 찾은 사람거울은 윤동주의 하늘거울, 만해의 칼날거울, 정지용의 호수거울, 백석의 바람벽거울, 권정생의 땅거울, 서정춘의 대나무거울, 강은교의 물거울, 최승자의 무덤거울이다. 내가 슬플 때 아무도 모르게 꺼내 보는 사람거울이 내 시의 흠결을 적나라하게 짚어주었다.
■ 홍연폭포, ‘우리가 물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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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홍연폭포. |
아래로 흐르는 물을 보며 부모님의 내리사랑을 생각했다. 물은 장애물을 만나면 제 몸을 때려서 물소리를 얻는다. 물은 내려놓아서 더 큰 세상과 만난다. 시냇물은 강을 만나고 강물은 흘러서 바다에 이른다. 홍연폭포(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에서 흘러든 홍류소류지의 물은 천수답 곡식을 키운다. 사람 손을 탄 홍연폭포는 100여 년 전 무지개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 시비(詩碑)에 적힌 한시 두 편은 당시 홍연폭포의 장관을 짐작게 했다.
“…碧玉登湫龍寃在(벽옥등추용원재) 푸른빛 옥색 나는 맑은 웅덩이는 용이 숨어있는 것 같고 / 白雲高頂鶴疑來 (백운고정학의래) 흰 구름 높이 머문 산마루에는 학이 날고 있는 모습이라”(1894년 이 지역으로 온 현감 손경현의 한시·부분)
“…碧澗潺湲鳴洞口(벽간잔원명동구) 졸졸 흐르는 푸른 산골짜기 물은 골마다 울리고 / 孤亭蕭濾立雲邊(고정소여입운변) / 산뜻하고 깨끗한 홀로 있는 정자는 구름 가에 우뚝하네”(1919년 철마면 3·1 운동을 주도한 용암 문용호의 한시·부분)
나는 홍연폭포를 보고 시인 오세영(79)의 시 ‘폭포’가 떠올랐다. “흐르는 물도 때로는 / 스스로 깨지기를 바란다 // 까마득한 낭떠러지 끝에서 / 처연하게 / 자신을 던지는 절망 / 사람들은 거기서 무지개를 보지만 / 내가 만드는 것은 정작 / 바닥 모를 수심(水深)이다 // 굽이치는 소(沼)처럼 / 깨지지 않고서는 / 마음 또한 깊어질 수 없다 // 봄날 / 진달래 산벚꽃의 소매를 뿌리치고 끝 모를 나락으로 / 의연하게 뛰어내리는 저/폭포의 투신”(오세영 ‘폭포’ 전문)
우리 삶도 때때로 진퇴양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물은 장애물을 만나 자기를 때려 소리를 얻는다. 절벽을 향해 몸을 던지는 물의 자세에서 수심(水心)을 얻는다. 위의 시를 통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우화등선, 내 삶의 궁극을 엿본다.
■ 물은 태를 짓지 않는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 우리가 키 큰 나무들과 함께 서서 /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 아아, 아직 처녀인 /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 그러나 지금 우리는 / 불로 만나려 한다. /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 저 불 지난 뒤에 /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 올 때는 인적 그친 /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강은교 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 전문)
홍류소류지 수심 깊은 물을 보며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를 입에 물었다. 이 시는 수수방원지기(水隨方圓之器)의 본성을 말해준다. 물은 스스로 태를 짓지 않고 그릇에 따라 형상을 달리할 뿐 제 본성을 바꾸지는 않는다. 물은 온도에 따라 얼음이 되었다가 수증기가 되었다가 다시 물로 돌아온다. 가장 아래로 낮아져서 가장 높이 오른다. 우리도 물처럼 흐르고 흐르기를.
시민기자·시인 annajsn@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