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최고의 인생 드라마를 꼽는다면? ‘모래시계’‘사랑이 뭐길래’ 등이 떠오르지만, 나로선 ‘서울의 달’이 아닐까 싶다. 1986년부터 9년 가까이 장수한 ‘한 지붕 세 가족’이 종영할 즈음 시청률 40%를 넘기며 사랑받은 ‘서울의 달’. 두 드라마가 비슷한 느낌이 난 이유는 같은 작가(김운경)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서울 뚝배기’ ‘옥이 이모’ ‘파랑새는 있다’ 같은 변두리 소시민 이야기를 쓴 김운경 작가의 ‘서울의 달’은 후배 작가 주찬옥 송지나 등 지금도 많은 작가가 인생작으로 꼽는다. 선배 작가 김수현도 김운경의 ‘유나의 거리’(2014)를 본 뒤 선하고 맑은 인물을 통해 가치관을 일관되게 펼치는 작품세계를 칭찬했다.
‘서울의 달’의 성공은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 덕분이다. 캐스팅 땐 최민식과 한석규의 역할이 반대였지만, 김운경 작가가 역할을 바꿨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시골 청년 춘섭(최민식)의 눈 감으면 코 베가는 고달픈 서울살이는 눈물 없인 볼 수 없었고, 바르고 성실한 이미지를 벗어던진 한석규는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욕망 속으로 빠져든 홍식을 찰떡같이 표현했다.
조연은 더 풍성했다. 백구두에 양복을 좌악 빼입고 한물간 춤 선생 제비로 나온 김용건이 있었고, 그의 수제자 김영배의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는 최고 유행어였다. ‘대사빨’의 최고봉이던 미술선생님 백윤식과 윤미라 커플의 꽁냥꽁냥 연애도 재미있었다.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가 좋아했던 이 드라마 덕분에 주말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본방 사수를 했고, 한석규가 홍진희 일당에 잡혀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느닷없는 마지막 장면에서 슬픈 결말에 대성통곡했던 기억도 난다.
달동네를 배경으로 펼쳐진 인간군상의 서글픔은 ‘결국 인생은 맘먹은 것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것’이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교훈을 안겼다. 더불어 덧없는 인생사와 홍식-영숙(채시라)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보며 내 20대 가을은 그렇게 흘러갔다. 촬영지였던 옥수동은 이제, 달동네는 흔적도 없고 서울서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가 됐지만, 드라마 주제가 첫 소절처럼 ‘아무래도 돌아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모든 건 다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