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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다형의 시 둘레길 <3> 6월, 유엔(UN)기념공원

평화 지켜낸 4만896개 별이 내린 곳, 아름다워 더 슬프구나

  • 전다형 시민기자
  •  |   입력 : 2021-06-10 20:17:42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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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16개국 전사자 묘역
- 아픔 잊은 채 고요하고 푸르러

- 지팡이 짚은 노신사 참배 모습
- 살아남은 자 슬픔 떠올리게 해

- 그들의 귀중한 목숨 진 자리에
- 남북 진정한 평화의 꽃 피우길

호국보훈의 달 6월. 삶과 죽음, 전쟁과 평화라는 양날의 검을 쥐고 유엔(UN)기념공원(부산 남구 대연동)으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흐를 것만 같은 파란 하늘 아래, 잘 다듬은 잔디와 활짝 핀 꽃들에 둘러싸인 묘역은 역설적이게도 6·25 참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봄바람을 잡아탄 16개국,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뉴질랜드 룩셈부르크 필리핀 태국 호주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그리스 터키의 국기가 유치환의 ‘깃발’을 떠올리게 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아! 누구인가?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유치환, ‘깃발’ 전문)

‘깃발’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유엔기념공원에 가득 찼다. 머나먼 타국의 평화를 위해 참전한 그들의 아픈 영혼이 드높이 휘날렸다. 터질 것 같은 소리의 공명, 포성의 현장을 방불케 팽팽한 긴장감에 꼴깍꼴깍 침을 삼켰다. 슬픔을 여민 솔기가 투둑, 터질 것 같았다. 한껏, 물 먹은 습자지 같은 그리움의 피륙을 ‘이념’의 푯대 끝에 높이 건, 그들의 세계로 올라갔다. 함께 나부낀 시간, 백만 톤 슬픔이 내게로 건너왔다. 깃발이 저마다 제 바람(希望)으로 펄럭였다. 길게 목을 뽑아 올린 ‘깃발’이 고국으로 휘날렸다. 16개국 국기는 다 말하지 않고도 다 말했다.
   
한 노신사가 지팡이를 짚고 유엔기념공원에 찾아와 비석 속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호명하듯 바라보고 있다.
■한국전쟁 전사자, 불멸을 살다

2300여 유엔군 전사자가 잠든 이곳에는 대한민국 전사자 34명도 함께 계신다. 지팡이 짚은 노신사가 우리나라 전사자들 비석에 새겨진 이름 하나하나를 눈빛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전우일까? 형제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나는 어미의 심정으로 그 비석을 어루만졌다. ‘꼭 살아서 돌아오겠다’는 맹세와 ‘꼭 살아서 돌아오라’는 어미의 간절한 기도가 만져졌다.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했던가? 가슴 저 밑바닥에서 두꺼운 슬픔이 솟았다.

파랗던 허공이 금세 울컥, 울먹거렸다. 어딘가로 몰려가던 새털구름이 묘역으로 몰려왔다. 공원을 기르는 숲이 새장을 열었다. 제 몸 불살라 영원을 사는 2300마리 피닉스가 묘비를 빠져나와 날아올랐다. 이들이 부르는 구슬픈 노래에 내 마음이 새파랗게 베였던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떠올리며 “당신의 이름은 불멸”이라 외쳤다.

“당신들의 이름은 불멸입니다. / 차거운 총열의 그 모진 소름을 / 내내 온몸으로 받아 안으면서도 / 끝까지 내려놓지 못했던 / 당신들의 이름은 불멸입니다. //(…)/ 가쁜 숨 잦아들던 그 순간까지도 / 내 나라다, 내 땅이다! / 움켜쥔 흙에 속삭였던 당신 위에 / 빛의 무리가 넘쳐나고 / 희망의 함성이 쩌렁거립니다. //(… )/ 당신들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 이 땅의 주인입니다.”(노호성, ‘당신들의 이름은 불멸입니다’ 일부)

■ 삶과 죽음의 경계, 도은트 수로

   
17세 어린 나이에 전사한 호주 병사 도은트를 기려 이름을 붙인 도은트 수로.
형 대신 참전했던 최연소 전사자(17세, JP Dount 1951. 11. 06 전사)를 추모하고자, 그의 이름을 딴 ‘도은트 수로(水路)’는 유엔기념공원 상징구역과 주 묘역의 경계에 있다. 나는 비단잉어가 유유히 헤엄치는 도은트 수로에서 삶과 죽음의 세계를 두고, 죄를 씻는 요단강을 보았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 (…)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 (…) 모든 유혈(流血)은 꿈같이 가고 / 지금은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 (…) /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믿음이 없는 얼굴이 마주 향한 / 항시 어둠 속에서 꼭 한번은 /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 박봉우, ‘휴전선’ 일부)

도은트 수로는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경계를 상징하는 듯했다. 죽은 자가 천국으로 들어가고자 요단강물로 죄를 씻듯, 나도 무릎 꿇고 손을 씻었다. 수로의 맑은 물이 흘러 흘러 38선까지 닿기를, 스미고 젖어 굳게 닫힌 이념의 벽이 풀썩 주저앉기를. 차안과 피안,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의 경계인 도은트 수로를 뒤로하고 그리운 피붙이, 그리운 고향길, 이산의 슬픔을 생각하며 ‘무명용사의 길’을 따라 ‘추모명비’로 갔다.

■ 4만896개의 별을 새기다

우주의 하나 됨을 뜻하는 원형수반을 병풍처럼 둘러싼 추모명비에는 4만896명 전사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원형수반 위에 솟은 봉화대 불꽃은 24시간 꺼지지 않고 불멸과 평화를 염원한다. 추모명비 입구 벽면에 새겨진 이해인 수녀의 헌시 일부(“우리는 가슴에 님들의 이름을 사랑으로 새깁니다”)가 눈에 밟혔다. 두 팔 벌려 추모명비를 끌어안았다. 후두둑 반짝이는 4만896개 별들이 내 가슴으로 쏟아졌다. 그 수많은 별이 총총 내 마음속 못 자국으로 깊게 박혔다. 가슴에 박힌 못 등을 오래 쓰다듬었다. 손끝에 짚이는 그들의 뾰족한 공포와 쓰라린 아픔이 내 심장을 찔렀다. 차가운 추모명비에 뜨거운 내 심장을 얹고 ‘이 사랑 절대 잊지 않겠다’ 는 맹세! 탁본을 떴다.

“모른 척 돌아서 가면 / 가시밭길 걷지 않아도 되었으련만 / 당신은 어찌하여 / 푸른 목숨 잘라내는 그 길을 택하셨습니까 // 시린 새벽 공기 가르며 / 무사귀환을 빌었던 / 주름 깊은 어머니의 아들이었는데 / 바람소리에도 행여 님일까 / 문지방 황급히 넘던 / 눈물 많은 아내의 남편이었는데 / 기억하지 못할 얼굴 / 어린 자식 가슴에 새기고 / 홀연히 떠나버린 아들의 아버지이었는데 / 무슨 일로 당신은 소식이 없으십니까 //(…)/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 / 파도처럼 높았던 함성 / 가만히 눈감아도 보이고 / 귀 막아도 천둥처럼 들려옵니다. // (…)/ 세월이 흘러가면 / 잊어지는 일 많다 하지만 / 당신이 걸어가신 그 길은 / 우리들 가슴 속에 별이 되어 /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유현숙 ‘넋은 별이 되고’ 일부)

■ 평화의 봄은

“봄은 /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 오지 않는다 // 너그럽고 /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 제주에서 두만까지 / 우리가 디딘 /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 이제 올 /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 우리들 가슴속에서 / 움트리라. // 움터서, /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 녹여 버리겠지.”(신동엽 ‘봄은’ 전문)

   
전쟁은 선량한 사람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 산 자의 욕망을 채운다. 우리는 피로 싸운 그들의 선량한 목숨을 기억해야 한다. 따뜻한 햇살이 옷을 벗기듯,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 사랑을 거느리는 평화는 전쟁을 섬기지 않는다. 평화로 전쟁을 이겨야 한다. 꽃 진 자리에 열매 맺듯, 그들 목숨 진 자리에 평화 열매가 맺혔다. 그러나 봄은 절반만 왔다. 위대한 자연은 폐허에 봄을 파종했다. 평화는 미움의 쇠붙이를 녹이고, 분단의 아픔을 초록으로 감싸 안으리라. 그들의 목숨과 바꾼 평화가 한라에서 백두까지 온전한 봄으로 오길.

전다형 시민기자·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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